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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찮은 도전가의 탄생

나는 시골이 싫어요.


나는  '읍면리 출신'이다


- 태어난 곳-


 나는 평촌마을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어디 동도 아니고 심지어는 읍도 아니다. 마을 이름부터 '평화로운 마을'인 평촌마을인 내 고향은 시내라고 불리는 곳까지 버스로 한시간씩 걸렸다.  어릴 적에 버스에는 이 시대의 마지막까지 '안내양'이 생존해 있던 그런 곳이었다버스는 오전에 두 대오후에 두 대저녁에 두 대여섯 대가 전부인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그 마을 중에서도 '지몽골' 이라고 하는, 평촌마을에서도 더 골짜기로 한 발자국 굽어 들어간 마을에서 자랐. 왜 그런 이야기 있지 않은가강원도 어디 깊은 산속에선 6.25전쟁이 발발했어도 전쟁이 났는지도 몰랐다고우리 동네도 전쟁이 난 것을 한참 후에야 알만큼 외진 데 있는 곳이었다


- 귀한 막내아들 - 


그 이유는 아마도 하도 얄궂게 자라서 기억에 남는 사건 사고들이 제법 많아서 일 것이다. 뒷산에서 고구마를 구워먹다가 산불을 내고, 수박이 먹고 싶어 하우스 두 동을 통째로 서리를 하고,  6살 때 두살 많은 형들과 패트병으로 땟목을 만들어  진주 남강을 건너려 했던 뭐 그런 일들 말이다.  하지만, 박씨 집성촌 내  박가 막내 아들(아버지)이 딸 넷을 놓고 나이 마흔넷에 힘들게 얻은 장남이었기에 '나는 귀하게 대접 받았다.'  그렇기에 큰 몸 고생 없이, 큰 마음 고생도 없이 편하게 자라게 되었다.                 


 

- 시골생활 - 


 논에서 개구리를 잡고, 냇가에서 가제를 잡고, 한 반에 열댓명이 전부인 시골학교의 일과가 끝나면 친구들과 물고기 잡으 다니고가을에는 메뚜기잠자리도 계절 별미로서 아무렇지 않게 구워먹고 그렇게 자랐다내 친구들도동네 형들도 그랬기 때문에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 놀러간 부모님이 일하시는 논밭에서 먹는 간식은 언제나 국수 아니면 부침개였다과자는 마트 대신 공판장일이라는 곳에가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공판장에 가려면 귀신이 나온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폐가가 있는 산을 넘고, 1시간가량을 다시 또 걸어내려 했다. 아버지가 공판장 가기 전날이면죠리퐁이랑 칸쵸를 나오시나 싶어서, 누나들과 행복한 밤잠을 설치곤 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면'에서 '동'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메뚜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말도 안되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부터는 시골에서 자랐다는 것이 부끄러워 '출신'에 대해서는 말을 아예  안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어릴적부터 나는 도시로 나가고 싶었다. 아니면, 그냥 시골에서 자랐다는 놀림을 받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작은 꿈 중에 하나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마음 깊이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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