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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Feb 16. 2020

남편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을까?

[임신한 직장인은 워킹맘이 되나요, 전업맘이 되나요?]



8주에 쓴 글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내가 회사에서 필요한 존재일까? 어느 날은 이렇게 일하느니 퇴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백수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기에 돌아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육아휴직이 6개월밖에 안 되니 5개월이 된 아이를 두고 복직해야 한다는 게 벌써 너무 슬프고 미안하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살수록 점점 답을 정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긴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할 테니 덜 후회할만한 선택을 해야 될 텐데.


 그래도 입덧은 없고 피곤하기만 하지 아직까진 임신이 별로 힘들진 않아서 아이에게 정말 고맙다. 강한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능력 없는 엄마여서 미안해. 육아휴직이 1년이라면 더 소원이 없겠다. 출산율이 0퍼센트대라는데 일하면서 임신해보니 왜 그런지 이해가 되기도 하고. 3명은 낳고 싶었는데, 아마도 그 꿈은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맞벌이하면 아이를 맡기기가 힘들고 외벌이로는 자녀 3명 양육비에 허덕이겠지.


 학창 시절에 더 열심히 살 걸. 20대의 행동들이 30대에 결과를 만들어내는구나. 40대에는 더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해 살자.


*


 8주가 되자 점점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몸이 물먹은 듯 무겁고, 쉽게 피로해지고, 입맛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입덧이 없다는 것. 빠르면 6주부터 입덧을 시작해서 다 토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입맛은 없어도 음식이 들어가서 다행이었다. 입덧은 엄마와 자매와 비슷하다던데, 언니가 입덧이 전혀 없었기에 나도 그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매일 아이에게 오늘도 입덧 없게 해 줘서 고마워, 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임신하고 가장 큰 변화는 부정적이고 염세적이던 내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랑해, 고마워, 행복해, 라는 말을 생각하고 내뱉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출근을 할 때 버스에서 내려서 회사까지 10분을 걷는데, 그때 혼자서 아이야 사랑해,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 행복해, 라는 말을 생각하고 또 중얼거렸다. 누군가 시킨 일도 배운 일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 말들이 생각났다. 말에는 힘이 있는지 우울증이 있던 내가 꽤 긍정적으로 되었고, 별다른 우울증세 없이 좋은 기분이 유지되었다. 특히 생리 증후군이 심해 생리 전에는 무척 우울했는데, 생리를 안 하니 심한 우울증도 찾아오지 않았다. 모두 아이 덕이다. 고마워!


초기 임산부의 회사생활


 임신 기간 단축 근로제도가 있다. 임신 12주 이하와 36주 이상 근로자는 회사에 2시간 단축 근로를 신청할 수 있고 이 시기에는 회사에서 월급을 삭감 없이 지급해야 한다. 복지가 전무하다 싶은 작은 회사기에 말했다가 괜히 상처 입을까 봐 말을 꺼내지 않으려다가, 회사 규정을 보니 작년부터 해당 규정이 신설되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꺼냈다. 부장님은 흔쾌히 법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면 해야 하지 않겠냐며 다음 주부터 사용하라고 하셨다. 야호! 점점 추워져서 걱정이었는데 아이 덕에 좀 더 따뜻할 때 출퇴근하고 덜 일 하게 되었다.

 가끔 일이 바쁠 때는 원래대로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했지만 만족스러웠다. 공무원은 임신 전 기간 적용이 된다던데 부럽지만, 이거라도 어디야.


 회사에서는 임신한 나를 많이 배려해줬다. 무거운 건 들지 말라고 했고(임신 초기에 무거운 걸 들면 유산의 위험성이 있다) 산모는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건강한 간식도 많이 챙겨주셨다. 그런 배려를 받으며 처음에는 불편했다. 내가 임신으로 유난 떠는 것처럼 느껴졌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임신으로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일했지만, 업무를 하며 잠이 쏟아져서 몇 번은 졸곤 했다. 점심시간에는 꼭 엎드려 있었다. 쏟아지는 잠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정시출근 정시퇴근, 거기다 2시간 단축 근무하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야근이 많거나 서서 일하는 서비스 직종의 임산부는 얼마나 힘들지, 또 입덧이 심한 임산부는 얼마나 괴로울지, 그들에게 응원이라도 보내고 싶었다.


 임신하고 모르는 게 많고 같은 주수의 사람들의 증상을 알고 싶어 맘카페인 ‘맘스홀릭 베이비’에 자주 들어갔다. 카페에는 임신 주수별로 분류해놓은 게시판이 있는데 그 게시판에는 다양한 임산부들이 글을 올린다. 유산기가 있어 종일 누워지내야 하는 사람,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 출퇴근이 힘들어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그렇게 임신이 힘들지 않음에 위안을 느꼈다. 그래도 남편 앞에만 가면 아기가 되어 힘들어, 퇴사하고 싶어 하며 징징거렸다. 원래 남편에게는 어리광이 많기도 했고 남편이 내 힘듦을 알아줬으면 싶기도 했다. 남편은 늘 나를 토닥거려주고 귀찮은 일을 대신해줬다.


 카페 글을 보면서 위안을 느끼기도 했지만, 또 회사를 다니지 않고 집에 누워있다는 임산부가 부럽기도 했다. 종일 심심한데 뭐 하세요? 하는 글이 보이면 나는 왜 일해서 사서 고생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는 백수였기에 아직 몸이 백수 생활에 젖어있는 탓도 컸다. 내가 선택한 직장생활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을 부러워하는 게 싫고 또 유산을 걱정하는 사람들 글에 나도 마음이 졸여져서 맘카페에 점차 들어가지 않았다.


 회사에 적응이 덜 된 탓인지, 일하기가 싫어지는 날도 있었다. 회사는 체계 없이 일을 했고 체계가 필요한 나와 안 맞는다는 생각도 했다. 한두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야 하는 데 화장실이 먼 것도 귀찮았다. 어떨 때는 회사에 단점을 찾기 위해 입사한 사람처럼 단점만 찾기도 했다.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한 가장 큰 이유는 짧은 육아휴직 때문이었다.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3개월, 도합 6개월. 아기는 5개월부터 어린이집에 종일 있어야 한다. 아이가 걷기는커녕 기기 힘들고 뒤집기도 할까 말까 한 시기. 누워만 있는 아기를 타인에게 맡기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퇴사하고 아이를 보는 게 경제적으로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 내 몸은 몸대로 축나고 돈은 돈대로 쓰는 게 아닐까?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진 않을까? 아이가 자주 아프면 어떻게 하지? 하는 여러 가지 고민에 봉착했다. 일에 욕심이 있는 타입도 아니고, 보람을 느끼고 있지도 않고, 부장님은 출산 육아휴직을 3개월만 쓰기로 하지 않았냐며 6개월은 길다고 하지 않았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는 아이를 2살까지 가정 보육하고 싶었다. 어린이집을 가는 순간 아이가 병을 달고 산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퇴사할 수 없었던 건 부장님이 내가 오래 근무하길 바라고 있었고-전임자들이 6개월, 1년씩만 일하고 그만둬서 안정되지 못했다고 한다. 오래 일하게 하고 싶으면 잘해줄 것이지….- 이제 퇴사하면 정말 재취업은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아이가 없던 유부녀 시절에도 취업이 너무 어려웠다. 또 남편이 짧게나마 육아휴직을 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만둬버리면 이 회사는 다시는 유부녀는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런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날 믿고 채용해준 회사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버텨볼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복직 후의 계획: 남편의 육아휴직과 탄력근무


 남편의 회사 사람(남직원)2년간 육아휴직을 쓴다고 했다. 그쪽은 쌍둥이이고, 다른 지역 근무자긴 했지만, 남편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남편이 이 지역의 최초 남성 육아휴직자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회사의 이 지역 최초 육아휴직자였지만, 나는 괜찮아도 남편이 최초가 되는 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남성 육아휴직이 보편화가 되어있지 않는다는 점과 나는 퇴사해도 어떻게든 살아지겠지만, 남편이 퇴사하면 가계가 흔들리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일 테다. 남편은 6개월 정도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남편이 3개월만 육아휴직을 했으면 했다. 적은 내 월급으로 세 사람이 살아가긴 무리가 있었다. 3개월이야 육아휴직급여가 지급되지만, 그 이후는 지급되지 않는다. 아이가 5개월일 때 어린이집에 가는 것과 8개월에 가는 것은 무척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도 육아를 전담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시기가 잘 맞는다면 한 달 정도 일찍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동안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으면 싶기도 했다. 몇 년 동안 일만 하며 제대로 쉬질 못했으니깐. 그리고 남편의 복직 후에는 탄력근무제를 적용하여 남편이 7시부터 4시까지 근무를 하고 퇴근하여 아이를 케어할 계획이다.

이렇게 계획을 잡아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육아휴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제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9주, 세 번째 진료


 아이는 어느새 사람 형태가 되었다. 3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이가 쑥쑥 자란다. 입맛이 없어서 잘 먹질 못했는데 이렇게 잘 자라주니 고마운 마음뿐이다. 아이가 손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게 보여서 너무 신기했다. 2.5㎝밖에 안되는 아이가 내게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된다.


10


 “아기 태어나면 어떻게 할 거야?"

 “저 육아휴직 6개월 쓰고 ×서방이 육아휴직 3개월 쓸 거예요."

 “그건 아니다. 인사고과에 영향이 없겠니? 그리고 아빠 혼자 아기 못 봐. 엄마가 봐야지."

 우리 어머니는 진보적인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속이 답답해졌다. 어머니와의 세대 차이가 실감 나는 순간.

 언니에게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라고 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니 전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언니는 나와 상황이 다르다. 언니는 매사에 똑 부러지고, 독립적이고, 건강하고, 육아휴직이 2년이었다.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신 건 내가 걱정되셔서 그런 거겠지. 내가 유약해 보이고 몸이 약하고 육아휴직이 6개월여서 그런 거겠지. 알지만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아빠가 아이를 못 보면 대체 누가 본다는 걸까. 부모님 세대의 생각은 가끔 이해할 수 없다.


 “정말 각오가 되어있어? 아이는 누가 키워줘?”

 부장님이 내게 물었다. 사실 퇴사 고민을 하던 중이었지만, 나는

 “네, 할 수 있어요.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낼 거고, 남편이 육아휴직 3개월 쓰고 탄력근무제 사용할 거예요.”

라고 확신에 찬 척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부모 둘이서 키우는 게 어쩌면 사치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부장님은 자녀를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키워주셨다고 한다. 자매가 셋인 나도 조부모님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나는 양가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다. 양가 부모님 다 다른 지역에 사시기도 했고, 평생을 힘들게 일하고 우리를 키우시다 이제 은퇴하시고 삶을 즐기시는 중인데 육아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부모님은 볼 때마다 나이가 들어있고, 젊은 사람도 힘들다는 육아로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내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니까 내가 책임지고 싶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지금 상황으로는 남편의 회사만 도와주면 가능할 것 같긴 한데, 계획대로 된다면 좋겠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육아휴직 후 복직하여 일하다가, 정 안되면 퇴사할 생각이다. 이것도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일까. 육아휴직 후 퇴사하는 사람은 안 되고 싶은데. 상황이 잘 도와주면 좋겠다.

9주 초음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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