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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Feb 17. 2020

나를 바꾸는 존재, 나의 아이.

[임신한 직장인은 워킹맘이 되나요, 전업맘이 되나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진부한 이 말밖에는 흘러넘치는 이 감정을 대체할 말이 없다. 사랑해, 아가. 보고 싶어, 아가. 본적도 없는 네가 너무 그리워.


 이뤄놓은 것 없는 내 삶에 아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겨우 8cm도 안 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이 작은 아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안심되고, 내가 조금이나마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이상한 감정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 대뇌이고 입 밖으로 꺼낸다. 고마워, 감사해, 행복해, 라는 긍정의 언어들이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계속 떠오른다. 부정적이고 염세적이었던 내게 아이가 찾아온 뒤 가장 큰 변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이렇게도 벅찬 감정인 걸 이전에는 몰랐다.


*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엄마보다 나로 살고 싶다.


 아이가 무슨 대학을 가거나 그럴듯한 직업을 얻는 걸 중요시하기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스스로 성취하고 싶다. 아직 나는 고작 서른 살일 뿐이고, 적게는 50년 길게는 70년 이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 긴 세월을 아이에게만 투자하며 살고 싶지 않다.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고, 언젠가 글로 성취를 이루고 싶다.

 지나치게 모성을 강요하고 당연한 희생을 바라는 말들에 짜증이 난다. 내가 원해서 가진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가끔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엄마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다. 광고나 드라마에서 무조건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오면 너무 싫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모성은 위대하다느니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느니 하는 말들에 진절머리가 난다. 부성은 어디에 있으며 아빠는 왜 배제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여자나 엄마이기 전에 그냥 나일 뿐이다. 성별이나 역할에 상관없이 나일 뿐.


 산부인과에서 30년 이상을 근무한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80년대에는 오히려 자연분만과 모유수유가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덜 문명화된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제왕절개를 하고 분유를 먹였다고 한다. 그런 인식이 만연해지자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그 결과 사회적 인식이 지금처럼 바뀌었다고 했다. 지금, 2020년대의 어떤 사람들은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막연히 자연분만과 모유수유가 자연적이고 더 좋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들에 목메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할 수 없는 일에 고통받지 않기를.


 임신 전에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게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냥 별일이 아니어도 아이에게 미안하다. 어쩌다 배가 부딪치면 아이가 놀랬을까 봐 미안하고, 잘 못 먹으면 영양분이 제대로 가지 않을까 봐 미안하다. 아이는 내가 지켜줘야 하고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런 걸까.


 지금의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평범하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뿐. 남들처럼만 건강하고 평범하기를 바란다. 아이가 태어나서도 이 마음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도 나중에는 아이가 특출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남편을 닮은 거니깐, 평범에서 오히려 미달하였던 것 같은 나를 닮기보단 어린 시절 재능이 많았다던 남편을 닮으면 좋겠다. 남편의 긍정적인 사고를 타고났으면, 남편의 건강함을 닮았으면, 남편의 다재다능함을 닮았으면, 남편의 목표지향적인 모습을 닮았으면, 남편의 사랑스러움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 벌써 건강하길 바라는 것보다 바라는 게 이렇게도 많았구나. 너무 많은 걸 바라지 않도록 노력할게.


 세상 그 무엇보다 너를 사랑해. 아이가 없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왜 이렇게 겁이 나는지.


 나는 항상 내가 1순위였던 사람이어서 이런 감정이 낯설다. 남자친구나 남편도 나보다 소중한 적이 없었다. 내 몸이 편한 게 최고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먼저였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서는 아이가 너무 소중해졌다. 이렇게 벌써 좋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래도 너무 집착하진 말아야지.


 아기의 태명은, 좋아하는 화가에게서 따왔다.

 태명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아이가 살아서 영광을 누린 이의 삶을 닮았으면 했다. 그리고 인생을 걸어도 좋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그 직업에서 인정받으며 살았으면 한다. 나는 가지지 못한 직업에서의 성취를 느끼며 살았으면 한다.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러고 보면 오래도록 내 인생은 고등학생 이후로 뒤틀려버렸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었던 미술을 포기한 뒤 성적에 맞춘 과에 입학해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와 직무에 종사했다. 내 아이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내가 이 회사에 애착을 가지고 떠나지 않고 싶은 이유는 무얼까? 입사하고 삼 개월은 곧 떠날 사람처럼 굴었다. 얼마 전 드디어 피씨 배경화면을 바꾸었고, 비로소 내 회사가 된 느낌이었다. 이제는 회사를 떠나고 싶지 않다. 내 자리가 지금처럼 계속 남아있으면 좋겠다.

 입사 삼 개월 동안은 괴로웠다. 내가 일하는 게 가계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일하는 게 나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육아와 집안일만 하며 살고 싶지 않다.

 어느 날 육아휴직 중인 언니가 육아가 지겹다, 고 했다. 반복되는 일상과 끝없는 굴레, 퇴근은 없는 생활. 조카가 사랑스럽지만 나는 조카와 30분만 놀아도 기진맥진해졌다. 끝없이 조카에게 반응해주고 챙겨주는 언니가 대단했다. 나는 그토록 쉽게 지치는데 지치지 않고 육아를 잘 할 수 있을까?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육아만 하다가 일을 하고 싶어지면 어쩌지.

 2살 정도까지 육아하다 재취업을 하고 싶지만 경력 단절된, 애 딸린 유부녀를 뽑아줄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외국처럼 시간제 일자리가 활성화되면 좋겠다. 아니면 주 3일, 4일 일자리라던가.

 맘카페의 워킹맘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글이 올라온다. 스펙이 어마어마한 사람이 많다. 연봉이 7,000만원인데 퇴사하고 싶어요, 라는 글에는 연봉이 너무 아깝다며 퇴사하지 말라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연봉이 2,400만원이라 아이 맡기는 비용과 월급이 비슷하다며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의 글에도 절대 그만두지 말라는 댓글이 가득 달린다. 일을 그만둔 걸 후회한다고 말하는 경험자의 말에는 무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남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 가끔 농땡이를 부린다. 상사는 출장이 잦아서 가끔 혼자 사무실에 있다. 그날 일을 다 해놓고 놀 때도 있다. 일이 많더라도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쉬엄쉬엄하면 오히려 쉬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 문득 퇴사하고 육아만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무서웠다.

 나도 할 수 있겠지. 조금 더 부지런해지면 되는 일이야.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벌써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나는 아이에게 매료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아이의 태명을 말하며 사랑해, 고마워, 행복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아이를 생각하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흐르고 아이가 없는 상상이라도 하면 금방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나로 먼저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엄마라는 이름보다 내 이름 석 자로 불리고 세상에 쓰이길 바라고 있다.


 언젠가 나는 또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겠지. 그때 내가 버틸 수 있기를 바란다


 남편이 가장의 짐을 혼자 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처럼 주부의 짊도 혼자 짊어지고 싶지 않다. 나는 집안일이 귀찮고 재주도 없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나는 조카랑 노는 게 너무 힘들지만, 남편은 너무 재밌게 잘 놀아준다. (조카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걸 보면 나보다 남편이 육아를 잘할 것 같은데 내가 덜 번다는 이유로 퇴사하고 대부분 맡아 하는 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아, 정말 모르겠다. 글로 적으면 정리가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모르겠다.

 두서없는 이번 글의 결론은, 아이가 사랑스럽지만 나를 잃고 싶지는 않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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