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L Feb 18. 2020

문명의 세계에서 비문명의 세계로.

몸의 변화와 마음의 변화


몸의 변화


 임신을 사실을 알게 된 뒤 몸무게를 재보니 3kg이 늘어나 있었다. 고3 때도 본 적 없는 숫자를 본 나는 며칠동안 울적했다. 임신 한 달 만에 3kg이 쪘고, 그 속도로 몸무게가 증가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은 커지고 배가 점점 나와서 속옷은 맞지 않고 바지를 입을 수 없게 되었다. 턱살이 두 겹이 되고 사진 속의 나는 너무 못생겨서 사진을 찍기가 싫어졌다. 남편은 우울해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누가 봐도 마른 사람이었고, 3kg이 쪄도 저체중이었다.
 생각해보니, 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몸매관리에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다. 마른 내 몸과 뼈대를 좋아했고, 밤 10시 이후에는 거의 먹지 않았다. 칼로리 생각에 먹고 싶은 걸 내려놓은 적이 많았고 운동도 꾸준히 했다. 닭가슴살과 고구마에 심취한 적도 있었고, 웨딩촬영 전에는 다이어트 도시락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왜 착각했을까. 내가 몸무게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걸.
 내 마름이 노력하지 않고 타고난 것이라고 보이고 싶었던 걸까? 나 스스로 나를 그렇게 속이면서 지내왔다는 걸 살이 찌고야 깨달았다.
 임산부 레깅스를 사면서 상품 페이지에 ‘날씬해 보이는 레깅스!’라는 문구에 임산부에게도 날씬함을 강요하냐면서 비웃었지만, 사실 나도 임신해도 예쁘고 날씬해 보이고 싶다. 연예인들처럼 다른 곳은 다 날씬하고 배만 나왔으면 좋겠다. 임신해서 먹는 간식이-고구마, 바나나, 연두부, 견과류, 두유 등- 다이어트 식단이라며 남편에게 이야기하면서 내심 관리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인정하자. 나는 살이 찌는 게 싫다. 출산하고서 통통한 체형이 될까 봐 두렵다. 평생을 날씬하게 살아온 내 모습이 좋다.
 다행히 임신 4개월인 지금 살은 더는 급격하게 찌지 않았다. 사실 다행인지, 내가 너무 신경을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두시간에 한 번씩 뭘 먹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먹고 있는 내가 지겨울 때도 있다. 아이가 크고 있다는 증거니까 다행으로 생각해야 됨에도.
 몸무게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 하지만 너무 찌면 임신중독증이나 임신 당뇨가 될 수 있다니, 체중 관리는 평생 숙제인가보다.


충격적인 모유 수유 동영상


 남편과 임산부 교실에 참여했다. 모유 수유 동영상을 보여주는 시간이 있는데 엄청나게 충격받았다. 무서워질까 봐 출산 후기 등을 일부러 안 보고 있었는데, 출산 시의 모습(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과 이후의 모유 수유를 하는 모습을 강제로 보게 되었다.
 소감은, 문명의 세계에서 30년을 살다가 비문명의 세계로 갑자기 소환되는 느낌이었다. 분명 아름다워 보여야 하는 모유 수유의 장면이 비문명적으로 보였다. 내가 이상한 걸까. 왜 내가 다른 여성의 가슴을 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 장소에 남편들도 많았기에 더 거북하게 느껴졌다.
 남편에게 문명의 세계에서 비문명의 세계로 소환되는 느낌이어서 충격적이라고 하니 남편은 당연한 일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했다.
 그런 영상을 미리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계속 외면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건지 모르겠다. 내 생각이 너무 어린 걸까.


임신 12주 산부인과 방문


 2.5cm던 아기가 3주 만에 6.3cm가 되었다. 젤리곰 같다 해서 일명 '젤리곰'이라고 칭하던 단계에서 이제 완전한 사람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아이의 둥근 이마와 솟은 코가 보인다.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뇌와 심장, 위 등을 볼 수 있었다. 현대의학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12주쯤에는 1차 기형아 검사를 하는데, 다운증후군 검사를 하고(목울대 두께로 검사를 한다고 한다.) 피검사를 진행한다. 뽑힐 일 없던 피를 임신하고서 벌써 두 번이나 뽑았다. 겁이 많은 나인데, 이상하게도 기형아 검사는 겁이 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건강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존재했다. 4주 뒤에 하는 2차 기형아 검사까지 잘 통과했으면 좋겠다.
 초음파 속 아이는 정말 귀엽다. 9주의 초음파와 12주의 초음파를 보니 아이가 많이 커서 대견했다. 남들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내 아이의 초음파는 왜 이렇게 귀엽고 대견하기만 한지. 얼른 또 만나러 병원에 가고 싶다.


아이의 성별


 성별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지만, 임신 초반에는 내심 어떤 성별을 기대했다. 언니가 임신을 했을 때, 무슨 성별이면 좋겠냐는 질문에 어떤 성별이든 좋다는 대답이 정말 멋있어 보여서 나도 그러리라고 다짐했는데 막상 내가 임신하니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12주쯤 초음파를 보고 각도법에 따라 성별을 추측한다고 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어서, 그냥 한 달 더 참기로 했다. 이제는 성별이 무엇이든 어떠랴 하는 생각도 있고.
 보통 16주쯤에 병원에서 힌트를 준다고 한다.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되면 성별에 맞는 예쁜 옷을 사서 거실에 걸어둘 계획이다. 아, 생각만 해도 너무 기분 좋다!
 우리나라 의료법상 35주 전에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면 불법이라고 한다. 왜 그런 법이 생겼는지 이해가 되어서 슬프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아이의 성별과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뜻을 펼치고, 성별로 제약을 받지 않는 시대가 된다면 좋겠다. 나부터 남자는 이래야지, 여자는 저래야지 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지.


나의 성별


 그동안 나는 내가 여자인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임신하고나서 내가 여자인 게 좋아졌다. 임신 기간 동안 아이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좋다. 나라서 할 수 있고, 남편은 평생 할 수 없는 일. 뱃살이 있는 내 배를 싫어했는데 이제 점점 둥글어지는 내 배가 좋다. 남편에게 배를 내밀며, 자기는 아기 없지?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즐겁다. 좋아하지 않던 내 성별까지 좋아하게 해줘서 고마워, 나의 아가.


12주 초음파 사진

Copyright 2020. NULL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바꾸는 존재, 나의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