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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May 20. 2020

결국, 나는 임신 후 외로워졌다.

언젠가 이 외로움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올까

 어느 날 일을 하다, 정말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외로움이 턱 끝까지 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며 이 감정을 덜어내려고 카카오톡을 켰고, 나는 한참을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결국, 나도 임신 후에 외로워지고 말았다.




 물론 나는 남편도 있고, 아기도 있고, 친언니도 둘이나 있다. 하지만 그날 느낀 외로움은 남편이나 언니들로는 충족되지 않는 외로움이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여자 친구끼리는 결혼 후 멀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말이 따분했고, 싫었다. 일부 사람들끼리 일어나는 일을 집단으로 묶어 보는 것이 싫었다.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을 이행하기 위해 나는 나만의 관심사를 친구들에게 잘 말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미혼인 친구가 물어보지 않으면 결혼준비나 결혼생활, 임신과 출산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남편과 언니와 해도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보니 어떤 친구에게는 7개월에 임신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아직 내 아이의 성별을 모르는 친구도 있다. 내가 나서서 임신 사실과 성별을 알리기 민망하달까.
 물론 나는 임신이나 결혼 관련 이야기로 밤을 새울 수 있다.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고, 결혼생활 에피소드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저 떠벌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느 순간 좋은 감정은 나 혼자 기록하고, 나쁜 감정은 그대로 혼자서 흘러가게 두는 편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29살 초에 결혼해서 고향을 떠나 남편이 있는 도시로 이사를 왔다. 나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게 아니라 생각했는데, 주변 친구들 3명만 결혼했고 나머지는 결혼계획이 없는 걸 보면 일찍 결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잘 가, 집에 가서 연락해!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의 인사에, 나도 저런 적이 있었구나 하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도 친구들과 종일 붙어있으면서도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던지 문자로 자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문자 개수를 다 사용해서 문자 무제한인 언니 핸드폰을 빌려 친구와 문자를 나눌 정도로 정말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네이트온을 통해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카카오톡이 생기고서는 잠자는 것도 잊은 채 밤새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던 나도 20대 중반이 되자 친구들과 하는 대화가 줄어들었다. 다음날 입을 옷부터, 먹을 음식, 썸남에게 답장할 내용까지 이야기 나누던 친구들과는 더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알아서도 옷을 챙겨 입고, 먹을 음식은 알아서 먹거나 만나서 정했으며, 썸남에게는 알아서 답장을 했다. 매일 나누던 대화는 점점 줄어들어 어느새 만날 약속을 정할때만 활발하게 이야기하고, 평소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화가 없어졌다. 누군가의 이별이나 새로운 연애가 시작될 때 대화는 활발해졌다가 또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하나둘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대화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서로의 공감대는 줄어들고, 공유하는 시간과 이야기는 줄어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카카오톡이 귀찮아졌다. 회사에서는 활발히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퇴근하는 순간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내 답장은 점점 느려졌고, 대화하는 친구가 줄어들었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결혼 전에는 친구와 연락을 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았는데, 임신 후에는 친구들과 연락을 잘 하지 않는 것에 외로워졌다. 남편과는 연애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온종일 카톡을 하고, 언니와도 거의 매일 카톡을 한다. 결혼 전과 변한 건 내가 고향을 떠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것밖에 없는데, 정말 사무치게 외로웠다. 코로나로 친구들을 못 본 지 4개월이 되어가서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그전에도 4개월 만에 친구를 만났었다. 출산 후에 더 외로워질 거라는 마음에서일까? 아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못해서일까? 잘 모르겠다.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를 분석해보았다.


1. 나의 고민과 맞닿아있는 친구가 없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가 없다. 결혼한 친구의 수가 적다 보니, 임신한 친구도 최근에야 생겼다. 그런데 결혼을 한 내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기점으로 퇴사를 하다 보니, 출산 후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나와는 고민의 결이 달랐다. 오히려 친구들을 보면 아기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된다. (내가 주변 사람의 영향을 잘 받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다.)


2. 지역변경, 취업, 임신, 코로나19로 친구를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


 임신 전에는 지역이 달라도 한 달에 한 번은 친구를 만났었는데, 취업과 임신, 코로나19 확산으로 친구를 못 본 지 정말 오래되었다. 외출도 잘못하고 친구도 못 만나니 더 외로워진 것 같다.


3. 같은 지역에 친구가 한 명도 없기에 출산 후 더더욱 친구를 못 만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가 1시간 거리기 때문에, 운전을 못 하는 나는 정말 친구를 보기가 힘들다. 임신 전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른 지역에 가기가 힘들었는데, 아이가 있으면 정말 어려울 것 같다.


4. 관심사를 나눌 친구가 없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임신, 아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다. 임신한 친구는 극초기여서 이야기를 몇 번 못 나눠봤고, 미혼인 친구들에게 임신 이야기는 물어보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글쓰기 관련해서 이야기할 친구가 없다는 게 슬프다. 가끔 글 이야기가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예전 모임 분께 연락했는데, 조금 민망했다.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1. 블로그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외로울 때마다 블로그를 활용하기로 했다. 비슷한 주수 혹은 같은 지역의 임산부를 이웃으로 잔뜩 추가해놓고, 임신 관련 글을 올리고, 이웃들의 글에 좋아요와 댓글을 열심히 달고 있다. 원래 인터넷에서 댓글을 잘 안 남기는 편인데 블로그에는 열심히 남기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임신’이라는 공통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깝게 느껴지고 동질감이 생긴다. 긴말을 하지 않아도 공감이 되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2. 인스타그램을 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은 ‘인생 최고의 순간’만 편집하여 올리는 곳이라고 생각되어 좋아하지 않았지만, 실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창구이므로 인스타를 하기로 했다. 나도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편집하여 올린다. 친구들의 근황을 보고, 나도 내 근황을 올린다.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길게 나누지 않아도 짧고 원할 때 친구와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의 계정을 잔뜩 추가해놓았다. 그 사람들과 소통하진 않아도 관심사의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욕구가 충족된다.


3. 오프라인 글 모임을 신청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광고를 보고 오프라인 글 모임을 신청했다. 임신 8개월에 시작해서 9개월 말에 끝나는 과정이고, 코로나19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향후 몇 년간은 오프라인 글 모임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신청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아직 시작하기까지 몇 주가 남았는데 자기소개를 어떻게 할지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다. (자기소개를 안 시키면 어떻게 하지!)


4. 이 글을 쓴다.


 한동안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그 외로움에 대해 남편과 언니에게 토로해서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덜어낼 수 없는 마음에 참지 못해 이 글을 쓴다. 이렇게 외로움을 느낀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친구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한 것 같아 위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로 써야지 분출이 된다. 지금은 여러 방법을 통해 조금은 덜 외로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 외롭다.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이런 순간들이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가 꿈에 나와서 연락했을 때, 친구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때나, 이제 이 친구는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나에게 연락하지 않구나. 날 생각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친구가 나와 빨리 대화를 끝맺으려고 하는 느낌을 받을 때, 혹은 단톡방에서 친구들이 답 없이 대화를 마칠 때. 
 외로워진다.
 내가 지나치게 소심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친구의 근황을 너무 캐물으면 친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캐묻지 않는데, 친구도 똑같은 마음으로 나의 근황을 묻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른 살의 우리는 이미 많이 커버렸고, 친구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하고 간격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회사 업무가 단순노동인 날에는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내가 너무 한가한 탓일까. 분명 회사 업무는 바쁜데 왜 자꾸 외로움이 끼어들까? 집에 가면 취미 생활을 하고 글을 쓰느라 바빠서 그런 생각이 하나도 나질 않는데.


스물다섯 이전의 나


 그러고 보면 나는 친구 관계에 별 노력을 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내성적이었기에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친구를 사귀면 깊게 사귀는 편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었고, 내게 깊은 속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한 친구는 내가 다른 친구와 친해지는 걸 싫어할 정도로 나를 좋아해서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매일 내게 연락을 주는 친구도 있었고, 친구와 약속을 잡는 일이 피곤할 정도로 친구를 많이 만났었다. 
 서른이 된 지금은 친구 비수기다. 이제 별일이 없으면 아무도 내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육아를 하기 시작하면 내게 먼저 연락을 할까? 그때는 내가 친구들의 연락이 버거울까?


남편은 왜 외로워 보이지 않을까.


 남편은 대학 친구들과 지금도 단톡에서 매일 수다를 떤다. 부럽다. 남편의 생일에는 기프티콘이 수북이 쌓였고, 나는 남편과 비교해져서 초라해질까 봐 내 생일 알람을 껐다. 남편에게 부럽다고 하자 남편은 자신도 이제 단톡에서 친구들과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위안이 되었지만, 남편은 여전히 퇴근 후에도 회사 동료들과 연락을 하고, 함께 게임을 하며 웃고 떠든다. 남편은 이직을 한번 했는데, 회사에 갈 때마다 꼭 또래의 절친을 만들어온다(나는 그 절친을 오피스 허즈번드라고 부른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직장동료와 사적인 이야기로 카톡을 나누는 게 신기하다. 주말에 함께 자고 일어나면 내 휴대폰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반면, 남편의 휴대폰에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나는 남편이 부럽다. 남편이 인싸여서 그런걸까….


사실 모두가 외로우면서 티를 내지 않는 게 아닐까?


 몇 년 전 한 친구와 이야기하며 그 친구가 인간관계에 대한 공허를 느낀다기에 놀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매주 다른 친구를 만나고, 자주 연락하는 친구도 많고, 회사 사람들과도 따로 만날 정도로 친하게 지내서 내가 볼 때는 친구가 외로울 틈이 없어 보였다. 인터넷에도 자주 나이가 드니 친구가 없어진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러면 댓글에는 나이가 들면 원래 다 그렇다는 답이 달린다. 세상 모두가 외로워하고 있지만, 그 외로움을 잘 표출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더 친구들과 연락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언젠가 친구들이 아기가 생기면 먼저 육아를 하는 내게 연락해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우리의 관심사는 너무 다르고, 고민도 다른 것 같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위안이 되는 것은 곧 내게 모든 것을 다 공유할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 남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랑스러운 존재. 그 존재는 곧 내게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도 언젠가는 내 관심을 귀찮아하는 날이 오겠지. 아직 몇십 년은 남은 일인데 벌써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 어렵다. 내 평생 친구이자 연인인 남편에게나 잘해야겠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 연락이 오지 않아도 하나도 외롭지 않아서 좋다.


 내일 나는 또 외로워질지도 모르겠다. 이건 다 내 삶이 평화롭고 위기가 없는 탓일까. 언젠가 이 외로움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올까. 세상은 정말 혼자 살아가는 것일까. 서른에도 친구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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