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달콤한 말
결혼할 때도 느꼈지만, 임신하니 결혼, 임산부, 아기라는 말이 붙으면 가격이 급등하고 자칫하면 호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준비할 때는 '인생의 단 한 번'이라는 달콤한 말에 현혹이 되었다면, 임산부가 되어서는 '소중한 내 아기에게' '건강한' '유기농의' '돌아오지 않는 임신 시기' 등등의 말이 유혹적이다. 보이지 않는 아기다 보니 임신 기간 내내 아기가 건강할지, 문제가 없을지 걱정이 많이 되는데, 그런 임산부의 심리를 건드리는 마케팅이 활발하다.
임산부, 아기 프리미엄
임신하고 나니 무언가를 먹거나 할 때 애매하면 '임산부+×××'이라고 검색해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광고를 접하게 된다.
일례로 임신하고 변비가 생겨서 유산균을 사려고 했는데, 일반 유산균은 '임산부, 수유부는 의사와 상담하세요'란 말이 있었다. 찝찝함에 임산부용 유산균을 알아보게 되었다. 30일분에 만 원대인 일반인용(?) 유산균과는 달리, 임산부용은 30일분에 5만 원부터 '시작'한다. 현란한 상품 페이지와 유혹적인 말에 결제 페이지까지 갔다가, 언니가 임신 기간 동안 일반 유산균을 복용했고 조카도 건강한 걸 깨닫고는 일반 유산균을 샀다. 마케팅인 걸 알지만 기왕이면 좋은 걸 먹고 건강한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나는 며칠 후 변비가 없어졌고, 유산균을 따로 안 먹고 있다. 임산부용 유산균을 샀으면 후회할 뻔했다)
또 갑자기 어깨를 비롯한 온몸이 쑤셔서 마사지를 받으려고 '임산부 마사지'로 검색하자, 1회에 기본 15만 원이라는 비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원래 마사지를 받는 걸 좋아해서 임신 전에도 가끔 받았었는데, 그때는 3~5만 원 대에도 받을 수 있었다. 임산부는 일반인과 몸이 다르니 조심해야 해서 그런 거겠지, 하고 이해는 되었지만 그래도 임산부가 붙었다는 이유로 몇 배의 비용이 청구되는 것 같아 슬펐다. 이것도 핑크택스의 일종일까.
많은 물품에 ‘임산부 전용’이 있다. 어떤 임산부는 샴푸부터 바디워시, 치약 등 몸에 닿는 것이라면 모두 임산부용을 쓰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임신 전에 쓰던 물품을 계속 쓰고도 별문제 없는 사람도 있다(아직 아기가 태어나기 전이니 태어나고 나서 후회할 수도 있지만.) 모두 개인의 선택이고 만드는 건 제조사의 마음이지만, 가끔은 꼭 이런 것까지 임산부 전용 제품을 써야 하나? 싶을 정도의 제품도 있다.
나는 바꿀 생각도 안 했던 한 제품군을, 임산부 전용 제품으로 선물 받아서 쓰고 있다. 이런 제품도 임산부용으로 나오는구나 하며 사용을 해봤는데, 이상하게도 그걸 쓰니 무언가 더 좋은 것 같고, 내 몸에 투자하는 기분이 들며, 특별히 관리하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엽산이 함유되어있다니 왠지 더 건강해질 것 같고, 입덧을 완화해준다니깐 (원래도 입덧이 없었지만) 더 좋은 것 같고, 어딘가 우리 아이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물론 나도 돈이 아주 많다면, 혹은 임산부 전용 제품이 내가 쓰던 제품과 비용 차이가 별로 안 났다면 모든 제품을 임산부용으로 샀을 것이다. 좋다는데, 안 쓰고 싶은 사람 있나요?
소비의 천국, 베이비페어
임신 초기에 베이비페어를 방문했는데, 그곳은 결혼박람회의 또 다른 버전이었다. 이런 것까지 필요한가? 싶은 정도의 것들이 매혹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소중한 우리 아기를 위해 투자하세요.’라는 말에 솔깃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나도 돈만 많다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최고로 좋은 것만 구입하고 싶다. 소중한 나의 아이가 쓸 것이기에.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이상 이런 것들에 평생 노출되겠지만, 한가지 바람은 그런걸 사지 않으면 부족한 부모로 모는 마케팅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떤 이들은 이것도 못 사주는 내가 부족한 부모인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아이를 좋아하는 내가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즐겨보지 않는 이유도 모두 엄청 커다란 집에 살고, 비싼 육아용품들이 즐비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일반 직장인보다 수입이 많고, 협찬받는 물품도 많다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 그들과 내가 다른 삶인 걸 잘 알지만 비교하게 되는 건 사람이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니, 나는 최대한 안 보려고 한다. 부디 나는 앞으로도 내 형편껏,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못 해준다 해서 괜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지만 갑자기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가장 크게 느꼈던 순간이 임산부 마사지를 찾아봤던 순간이다. 나는 그 비용이 너무 비싸서 지금은 아끼고 출산 후에나 마사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후기를 쓴 한 블로거는 일주일에 두 번씩 임산부 마사지를 받으러 간다고 쓰여 있었다. 돈이 얼마나 많길래? 하는 궁금증에 그녀의 블로그를 살펴봤는데, 임신 전에도 매주 마사지를 받으러 다녔고 집에 차가 이미 두 대가 있는데 차를 하나 더 뽑을 예정이며 명품도 쉽게 턱턱 사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정말 나의 경제력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데, 그때 밀려오는 박탈감이란…! 같은 지역의 임산부라 정보를 얻으려고 이웃 추가를 했다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궁금증에 계속 그녀의 블로그를 보며 초라함을 느끼고 있는 내가 위험하다고 느껴 황급히 이웃을 해지했다. 이제는 나처럼 회사에 다닌 채로 임신했고, 추후 복직 예정이며, 아기용품을 물려받은 것을 자랑하며 알뜰살뜰하게 사는 사람들만 이웃으로 추가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소비습관을 가진 분들을 보고 있으면 심신이 안정된다. (그리고 나도 아기용품을 물려받거나 싸게 샀다고 올리면 부럽다고들 해줘서 좋다.)
자각 못 하며 살고 있지만, 잊지 말자, 나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