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L May 26. 2020

임산부, 코로나 19 확진자가 되는 줄 알았다

심장이 철렁


 연차 날, 잠에 들락날락하는 순간에 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당연히 업무 관련 전화일 줄 알고 전화를 받았는데, 의외의 말이 들렸다.

 “○○씨, 내일 출근하면 안 되겠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부장님의 설명에 잠이 화악 달아났다.

 상황은 이러했다. 부장님은 주말부부인데, 남편분이 서울에서 일한다. 그런데 남편분의 동료가 코로나 19 확진자와 같은 버스를 탔고, 현재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남편분은 마침 금요일에 연차여서 우리 지역으로 내려온 상태이고, 부장님과 자녀들과 접촉 후 주말에 그 소식을 접했다.

 “그 동료랑 말한 적도 없고, 자리도 3m 이상이어서 괜찮을 거에요. 그래도 검사 결과가 내일 중 나온다고 하니깐 일단 출근하지 마세요.”

 사실, 꿀 같은 휴일이 하루 더 추가된다고 생각하며 낮잠이 들었다.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휴대폰을 보니, 안전 안내 문자가 와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덜컹하면서, 이게 뭔가 싶었다. 남편분의 동료가 확진 판정이 난 걸까? 부랴부랴 링크를 클릭해보니 다행히 그런 내용은 아니었고, 확진자가 방문한 시설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놀란 심장을 추스르고 나니, 갑자기 잊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금요일 오후, 근무 중일 때 부장님이 갑자기 말했다.

 “이게 뭐야. 남편이 왜 회사에 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부장님 자리로 가보니, 남편분이 부장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회사로 갈게.

 알고 보니 남편분이 부장님 차를 빌리러 회사로 온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렇구나 하고 넘겼고, 부장님은 얼마 뒤 나갔다 오더니 누군가 주더라면서 간식을 받아왔다. 나는 그 간식이 맛있어서 여러 개 까먹었다.

 “누가 주신 거예요?”

 “그냥, 누가 줬어.”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내 심장이 쾅쾅 뛰었다.

 금요일 근무 중에 남편분이 회사로 방문해서 부장님을 만났고, 차키를 건네주고 간식을 받아오신 게 아닐까? 그럼 나도 n차 감염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린 조카의 얼굴과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하필 나는 이번 주말에 언니네와 부모님과 1박을 보냈다. 한참을 마주 앉아 식사했고, 조카와 놀았고, 부모님과 오랫동안 떠들었다. 하필 내가 이번 주에 가족들을 만나서 어린 조카와 나이 드신 부모님을 감염시킨 것은 아닐까? 가슴이 쿵쿵 뛰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인터넷 댓글이었다. 내가 확진자로 판명되고, 내 동선이 밝혀지고 ‘○○지역 임산부 확진자, 3살 조카와 60대 부모님 전파시켜’라는 뉴스가 뜨는 상상을 했다. 그 뉴스 기사의 댓글은 모두 매섭다.

-임신부가 왜 싸돌아다녀?

-이 시국에 가만히 있지, 잘한다.

-조카랑 부모님은 무슨 죄?    


 아주 짧은 순간에 먼 상상까지 한 나는 보낼까 말까 하다가 부장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부장님을 더 불안하게 하는 것 같지만, 내 불안감을 해소해야 했다.

-부장님, 혹시 금요일에 남편분 회사에 오셨나요? 그때 차키 받으러 오신다고 들어서요…. 이번 주에 가족들 만나서 너무 겁나네요.

 혹시나 ‘맞다’라고 하면 어쩌지? 언니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지? 남편도 출근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때 키 받으러 온다고 하고는 안 왔어요.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다행이다, 정말.    


 상상력이 풍부한 게 이럴 땐 힘겹다. 나는 그 순간 코로나 19 확진자가 되어있었다. 슬펐던 것은 내가 내 안위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남 시선을 가장 의식했다는 것이다. 코로나에 걸리면 임산부인 내가 가장 큰 일인데, 왜 나는 인터넷 댓글이 두려웠을까. 생각해보면 나도 뉴스 타이틀만 보고 확진자의 탓을 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코로나에 걸려보니 자신도 모르게 바이러스의 전파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초까지 주말에는 집에만 있던 나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개학이 시작되자 마음이 느슨해졌다. 우리 지역에는 이제 해외입국자 말고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온 지 오래되어서 이제는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다. 종종 외식하고, 필요한 외출을 한다. 5월 초 황금연휴에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것을 보며, 나도 가고 싶은데 못 가서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만일 임신부가 아니었다면 활발하게 외출을 하고, 친구들도 만났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몇 달간 만나지 못했던 부모님도 이제는 괜찮겠지 싶어서 만났다.

 지금 코로나 19에 걸린 분들도 이런 마음일지도 모른다. 클럽, 술집, 노래방…. 조금 더 참을 수 있을 텐데 왜 갔지 하는 장소들이, 나도 임산부가 아니었다면 갔을지도 모르는 장소다.

 이 지겨운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평범한 일상을 언제 되찾을 수 있을까? 원래 집순이였던 나도 이제 주말에 집에만 있는 게 지겹고 답답한데,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코로나 19는 잔인한 병이다.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 걸려와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죽인다.’ 이렇게 쓴 글이 있었다. 건강하고 활발한 사람들이 조금만 더 참아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아이는 이제 1kg이 다 되어간다. 아기가 1kg이 넘으면, 혹시나 조산해도 생존확률이 95% 이상이라고 한다. 배가 점점 무거워지고 몸 균형이 잘 안 맞는데, 그래도 아이가 1kg가 다 되어가니 안심이 된다. 혹시나 임산부가 코로나 19에 걸리면, 후기 임산부는 출산하고 치료를 한다고 한다. 아직 아이를 뱃속에서 3배는 더 키워야 하는데, 출산일까지 무탈했으면 좋겠다. 지난주는 먹고 싶은 게 많아 외식을 평소보다 많이 했는데, 다시 자제하고 집밥을 먹어야겠다. 그 누구보다 내가 코로나 19에 걸리면 안 된다. 나는 내 아이를 지켜야 하니까.


*다행히 부장님 남편분 동료는 음성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산부, 아기가 프리미엄이 되는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