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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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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Nov 29. 2020

104일_나를 잃어버리다

엄마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남편과 아기가 시댁에 간지 삼 일 차.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낮잠을 자고 나면 몽롱해지면서, 최근에 얻은 자아들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가 잠에서 깨며 다시 얻는다고.

나도 그랬다.
남편과 아기가 없는 집에서 홀로 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점점 잊어버렸다. 나는 오감 중 청각이 가장 둔감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잊을 때면 목소리를 가장 먼저 잊었다.
그러니까, 아기의 목소리가 기억나질 않았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비명소리, 옹알이가 생각나지 않았다. 동영상을 볼 때면 이랬지 하면서도 영상을 끄면 이내 잊어버렸다.
그렇게 내게서 엄마로서의 내가 멀어졌다.

남편의 목소리도 잘 기억나질 않았다. 7년간 매일 듣던 그 목소리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어제 통화도 했는데 어떤 목소리였더라.
아내로서의 내가 멀어졌다.

안방에 전기장판을 켜고 들어가, 작은 상을 펴놓고 글을 썼다. 8평의 원룸에서 살던 그때 같았다. 나는 서른의 나에서 이십 대 후반의 나로 점차 돌아갔다.

속상한 마음에 친구에게 글 쓴 걸 보여주고 카톡을 지울 테니 문자를 하라고 하니 친구가 깜짝 놀라 전화가 왔다.
 "괜찮아?"
 "야, 나 안 죽는다."
 "니 글이랑 목소리가 엄청 괴리감이 있네."
우리는 이십 대 초반의 어떤 밤처럼 두시간이 되도록 이야기를 했다. 스무 살이었던가 스물한 살이었던가, 어느 여름방학에 친구와 나, 또 다른 친구는 모두 학교가 달랐지만, 집 근처인 부산대 도서관을 함께 다녔다. 공부하자는 핑계로 매일같이 만나 공부는 조금하고, 함께 산책하고 밥을 먹고, 부산대 앞을 걸어 다니며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우리가 모두 다른 무리였는데, 오히려 졸업 후 더 친밀해지고 절친이 되었다. 친구들과 만나면 고등학생 시절의 소녀처럼 까르르 웃을 수 있었다. 남자친구가 없었지만 정말 외롭지 않았다. 찬란하던 그 여름방학처럼,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스무 살쯤으로 돌아갔다.

새벽에 한번, 아침 7시에 또 깨어났다. 모두 아기가 일어날 시간이다. 아기가 없어도 나는 그 시간에 깨어나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깨어난 나는 아기용품을 쇼핑한다. 그러면서 다시 자연스럽게 서른의 나로 돌아와 버렸다.

곧 남편과 아기가 돌아온다. 아기가 나를 보고 웃어주면 좋겠다. 둘이 돌아오면 나는 조용하던 나에서 투머치토커로 돌아가겠지.
지금의 내가 그리워하는 순간들에도 나는 항상 어떤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때쯤에는 지금의 이런 고민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기억나지 않고, 거실로 내리쬐는 햇살과 그 햇살 사이의 아기, 아기의 햇살보다 환한 미소가 떠오르겠지. 내가 그리워하는 모든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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