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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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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Dec 02. 2020

107일_안개 속의 등불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다.


 가장 놀라운 건,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아이에게 주는 것보다 아이가 나에게 주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준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아이에게 위안을 받고 행복을 느낀다. 종일 웃을 일이 없던 내가 아이를 보고 소리내어 하루에도 수십번을 웃는다. 우울증이 찾아온 날에도 아이를 보면 웃을 수 있고 행복하다. 아이 앞에서는 내가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고, 가끔은 우습게도 창조주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아이를 내가 만들어내었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다 들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평생 부족했던 자존감이 올라가고 행복감이 충만해진다.
 아이의 성과를 내 성과로 삼지 않겠다고, 아이에게 내 인생을 모두 바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나의 그 다짐들이 모두 기억나지 않고, 이 아이의 엄마로 평생을 살아도 좋겠다, 이제까지의 나는 없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나는 이 아이의 엄마인 게 행복하고, 이제까지의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함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가 잠들고 어지럽혀진 거실에 홀로 남으면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끝없는 집안일, 복잡미묘한 관계, 쉽게 상처받는 내 마음, 복직과 퇴사 사이에서의 갈등, 경단녀에 대한 두려움, ... 아이를 볼 때는 잊었던 모든 것들이 아이가 잠드는 순간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썼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상담을 세 번 받고 다섯 명의 친구들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속상하실까 봐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친정 부모님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나는 내 문제를 완전히 직면하고,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이유와 나를 잃고 싶지 않던 이유가 모두 '그것'에 있었다.
 안개가 잔뜩 낀 듯한 내 삶에 누군가 등불을 비춰준 것 같았다. 아직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안개는 걷히지 않았지만, 저 불빛을 향해 가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아이가 곧 깨어날 시간이다. 나는 이제,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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