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글을 쓰며 말미에 출산 후에는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웬걸, 출산 후에는 더한 외로움이 기다렸다. 더 정확하게는 '외롭지만 동시에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 24시간 아이와 붙어있으니 아이와 떨어져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으면서도, 말이 안 통하는 아이 말고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소통하고 싶었다. 임신-출산이라는 특이한 상황 탓도,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탓도 있을 것이다. 내가 원래 외로움을 많이 느꼈나 생각했는데, 결혼 전에는 별로 외로움을 못 느꼈다. 남자친구가 없던 시절에도, 친구와 약속이 없더라도 나는 할 일이 많아 바빴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아이를 키우며, 또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잘 만나질 못하고, 심하면 일주일 내내 사람이라곤 남편만 만나는 환경 탓인지 나는 출산 후에도 외로웠다.
코로나가 잠시 완화되었던 시기, 고맙게도 친구들이 놀러 와주었다. 결혼하며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사를 한 터라, 친구들은 모두 부산에 살고 있었고 운전을 못 하는 나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힘들었다. 친구들이 올 때면 나는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아니 여우보다 더하게도 몇 시간 전이 아닌 며칠 전부터 설레고 준비했다.
아이가 생후 5개월이 되었을 즈음, 주말부부가 시작되었다. 겨우 '음마' 정도 하는 아이와 120시간, 5일, 평일 내내 단둘이서만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외로움이 내려앉을수록 우울함이 나를 좀먹어갔다.
5개월의 주말부부 시절이 끝나고, 나는 다시 부산으로 이사 왔다.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 외로움은 덜해졌지만, 친구를 못 보는 외로움은 존재했다. 부끄럽지만, 사실 내가 부산으로 다시 돌아오면 친구들이 나를 만나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강한 존재감의 사람은 아니었는지,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이겠지, 하며 코로나 탓을 해보았지만, 마음 깊이 외로움이 남았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노력
1. 맘카페를 부유하다.
아이를 옆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그나마 휴대폰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순간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할 수 없다. 그럴 때 좋은 곳은 맘카페다. 그곳의 회원들은 모두 나와 같이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이고, 필요할 때 질문하고,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외로울 때도 나는 맘카페를 부유했다. 한 맘카페에는 산후우울증 게시판이 있는데, 힘들 때면 그 게시판에 글을 쓰려다가 이미 올라온 글을 보고 나는 그만큼 힘든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쓰지 않기를 여러 번이었다. 맘카페를 보면 외로움이 조금 달래졌다. 하지만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의 장이라는 단점이 있다.
2.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너무나도 외롭던 어느 날, 맘카페를 보다가 엄마들끼리 오픈채팅방을 모집하는 걸 발견했다. 주로 같은 생년, 비슷한 달, 같은 지역 등의 조건을 달고 사람을 모집했다. 나도 같은 지역의 같은 생년의 아기 엄마들이 모인 채팅방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나의 쭈뼛한 인사에 모두가 환대해주었다. 아, 이렇게 같은 나이의 아기 엄마라는 이유로 공감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다니. 코로나가 덜하던 시절에는 몇 번 만나 놀기도 했다. 혹시나 다단계나 사이비종교 같은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을 했지만, 전혀 그런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
3. 같은 아파트 친구를 사귀다.
아이가 100일이던 시절, 이웃집에 인사를 하러 가니 우연히도 몇 달 차이 안 나는 아기가 있었다. 언제 커피 한잔하자는 내 말에 그분은 다음날 연락해왔고, 우리는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두세 번도 만나고 카톡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분이 없었더라면 긴 주말부부 생활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사를 하고서도 가장 원하는 건 아파트 친구였다. 산책하는 아기 엄마에게 인사를 걸까도 생각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 엄마를 만났다. 나는 용기를 내서 커피 한잔하러 오라고 했고, 그렇게 친구가 생겼다. 같은 아파트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고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외로움이 덜해지는 느낌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있다)
4. 운동을 시작하다.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적으면 한번을 하던 운동을 어느 순간 하루에 5~6번 할 정도로 빠졌다. 그렇게 운동에 몰입하고 나니 달라진 것이 무척 많지만, 그중 하나는 덜 외롭다는 점이었다. 운동을 더 잘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유튜브를 찾아보고, 기록하는 등 거기에 몰입하고 나니 누군가의 연락이 없어도 외롭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취미가 있어야 한다.
예전보다 덜 외롭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
학창 시절 친구와는 연락이 줄었다. 이건 결혼했을 때부터 느낀 점인데, 결혼하고 회사를 퇴사하고 나니 친구들과 연락이 줄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나도 일을 하니 바빠서 친구들과의 연락 빈도가 낮아도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아주 아쉬웠는데, 지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신나게 이야기하고, 만나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다. 장례식장에 단 세 명의 친구만 와도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했다. 나는 서른 살에 친구가 많이 줄었다. 마흔에는, 또 환갑에는 몇 명의 친구가 남으련지. 친구들에게 내가 꼭 남기고 싶은 친구라면 좋겠다.
나는 언제까지 외로우련지 모르겠다. 이제 지금 사는 곳에 정착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 친구들이 많이 생기면 외로워지지 않을까. 아이가 말을 해서 의사소통이 되면 외롭지 않을까. 그래도 아이가 돌이 지난 지금, 확실히 예전보다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다짐하는 건 아이로 나의 외로움을 채우려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이는 지금은 나를 가장 사랑하지만, 언젠가 친구를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될 것이고,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날 것이다. 그렇다고 내 외로움을 남편을 통해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내 외로움은 나의 몫,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 외로움을 없애고 싶다. 지금 결혼이나 임신, 출산으로 외롭다면 시간이 더 흐르기를 기다리시길. 언젠가 그 외로움도 옅어질 날이 온다. 자연히 없어지거나, 다른 친구가 생겨서거나, 다른 활동들로 외로울 틈이 없어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