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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Aug 23. 2021

엄마의 탈출구 : 러닝

나는 오늘도 달리고 싶다.


 아이가 잠들고, 집안일을 모두 끝낸 밤 9시가 되면 나갈 준비를 한다. 스포츠 브라와 상의, 레깅스를 챙겨입고 스마트워치와 휴대폰, 무선 이어폰을 챙긴다. 러닝화를 신은 뒤 양손 가득 재활용 쓰레기를 챙겨나가면, 새카만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밤이지만 아직은 더운 여름. 휴대폰을 왼팔에 고정한 뒤 러닝어플을 켜고, 가이드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첫걸음이 어렵지, 한번 땅에서 발을 떼고 나면 그 뒤는 쉽다. 천천히 걷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심박 수는 점점 올라간다. 아파트 단지에 러닝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 사람들의 낯선 시선도 가끔 느껴 처음에는 민망했지만 몇 번 달리고 나니 이젠 그런 시선도 익숙해졌다. 나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달린다. 마스크를 끼고 달리기에 호흡은 더욱 가빠온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가이드의 목소리에 정신을 더욱 빠짝 차려본다. 시계를 보니 겨우 5분 지났다. 가만히 5분을 흘려보내는 건 너무 힘든데, 5분을 달리는 건 왜 이리도 어려운 일인지.


 처음 러닝을 시작한 건 낙엽이 지던 10월. 출산 100일도 안 되어서였다. 산후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집에 있는 게 너무 답답했고, 남편에게 밤에 아이를 맡기고 무작정 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걷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달리고 싶어졌다. 무작정 달렸던 것 같다. 그러고나서 제대로 뛴 처음 기록은 2킬로를 20분에 달린, 평균 속도 9분으로 달린 아주 천천히 달린 기록. 하지만 나는 천천히라도 달렸기에 숨 쉴 수 있었다.

 곧 러닝화를 샀지만, 러닝은 쉽지 않았다. 날이 너무 추워졌던 탓인지 어플에 기록된 달린 일자가 점점 늘어나다 12월이 되자 자취를 감췄다. 다시 러닝을 시작한 건 4월, 하지만 기록은 다시 멈추었다. 8월. 다이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걷기 운동을 하다 갑자기 달리고 싶어졌다. 옷차림은 그냥 외출복이었고, 신발도 러닝화가 아니었지만 나는 무작정 달렸다. 몸이 흠뻑 젖고 마스크가 축축해졌지만, 해방감이 더 컸다. 처음에는 6분만 뛰었던 시간이, 다음번 러닝 때는 14분으로, 다음에는 16분, 20분, 26분... 점차 늘어났다. 한때 달리기에 중독되어 매일 밤 나갔다. 매일 평온한 심박 수를 유지하던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는 걸 느끼면, 내가 살아있는 게 실감이 났다. 달리고 있을 때는 나는 그냥 러너 중 한 명일 뿐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 중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 아내, 전업주부, 경단녀, ... 그런 내 현실과 잘 하는 지에 대한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나는 발목을 다쳐 러닝을 쉬게 되었다. 발목이 이상한 걸 느꼈지만, 너무 달리고 싶어 달렸더니 더 심해진 것 같다. 몇 주 운동 금지를 당한 뒤, 갑자기 시원해진 날씨가 야속하다. 날씨가 좋은 날 창밖을 보면 오늘은 러닝하기 좋은 날씨네,라는 생각이 든다.날이 너무 추워지기 전에 발목이 다 낫기를. 나는 오늘도 다시 달리고 싶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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