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갑자기 일하기 싫어지는가
정말 일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아, 출근하기 싫다. 오늘 연차 써버릴까..."
회사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고, 상사 얼굴도 마주하기 싫습니다. 사직서를 떠올리지만 당장 대안이 없으니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합니다. 책상에 앉아 애써 자리를 지킵니다.
일할 맛 사라진 순간, 업무에 대한 의욕이 식는 순간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순간들을 적어봅니다.
1. 승진하는 줄 알았는데 탈락했을 때, 그리고 불에 기름 붓는 상사 태도
승진에서 미끄러진 것도 아픈데, 이유에 대한 상사의 설명조차 없을 때 더 서운합니다.
별문제 없이 승진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승진 인사발령에서 누락되었습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참으면서 상사가 나를 불러 이유를 설명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퇴근 시간까지 상사는 아무 말이 없더군요. 하필 그날은 회식이었습니다.
마지못해 따라간 고깃집. 모두 때깔 좋은 고기를 잘도 구워 먹습니다. 소맥과 함께. 상사는 저와 눈도 안 마주치더군요. 2차는 노래방. 시끄러운 음악과 현란한 조명 아래, 상사는 술의 힘을 빌려 저에게 미안하게 됐다고 딱 한 마디 하더군요. 옆에 앉더니 술 따라주면서.
할 말은 있었지만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쿵짝쿵짝 쿵짜자쿵짝 세 박자 속에... 말소리도 거의 안 들렸습니다. 저는 사무실에서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싶었습니다. 설명 없는 인사는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시끌벅적한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차가운 겨울 밤 공기가 매섭게 얼굴을 때렸습니다.
2. 정성 다해 성과를 냈는데 상사가 알아주지 않을 때
계속해오던 사업이나 거래하던 발주처에서 매출 실적을 내는 건 쉬운 편입니다. 반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거나 새 발주처를 발굴하여 성과를 내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지 못한 변수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게 마련이죠.
정성을 쏟아서 어렵사리 새 프로젝트를 새로운 발주처와 함께 만든 적이 있습니다. 제법 큰 매출실적도 올렸고요. 그런데 회식자리에서 상사였던 임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A 부서 성과를 축하합니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다더니 큰 실적을 올리게 되었네요."
"헐,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상사가 우리 부서나 나를 어떻게 보았으면 저런 표현을 할까? 술을 한 잔 걸쳐서 실수가 섞였을 수 있지만 섭섭했습니다. 본인이 현장에서 사업해보지 않은 사람은 일을 만들고 매출을 성사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릅니다.
이런 경험을 한 직원이 지속적으로 고군분투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만들까요? 사람은 보상보다 '인정'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인정은 강력한 동기부여 요인입니다.
3. 과음한 다음날
매출목표 달성을 위해 달려가기 바쁜 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소송 업무나 민원이 발생합니다. 기대와 달리 일은 꼬여만 갑니다. 스트레스를 벗 삼아 과음한 다음 날, 스펀지처럼 술을 빨아들인 몸은 아세트 알데히드를 제대로 분해할 겨를이 없습니다.
숙취로 고생하면서 정신력으로 출근하지만 만사가 귀찮습니다. 일하기 싫습니다.
술이 술을 마신 원인은 회사 일이지만 어쨌든 과음하면 안 됩니다. 의욕은 체력 위에 세워집니다.
4. 연봉이 동결되거나 삭감될 때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회사 손익이 마이너스라서 힘든 시기를 다 같이 극복하자는 사장님 말씀. 물가는 매년 오르고 아이들 학원비 부담은 커지는데 고난의 행군을 해야...
전 임직원 연봉이 동결될 때도 문제지만 우리 부서만 연봉이 동결될 때는 업무 의욕이 더 떨어집니다. 부서 평가 결과에 따라서 우리 부서만 불이익을 받으면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해집니다.
5.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업무역할이 결정될 때
내 의사가 존중되지 않은 상태에서 윗선을 통해 갑자기 업무역할이 바뀌거나 새 업무가 추가되면 일하기 싫어집니다. 상사나 경영진이 그때그때 편의에 의해 업무를 배정하는 태도를 보이면 자괴감에 빠집니다.
업무분장은 반드시 직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사전에 상사와 해당 직원 간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말고 진심으로 말이죠. 안 그러면 조직은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직원들은 일을 성심성의껏 하지 않게 되고, 조직 성과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일의 가치' 문제거든요. 상사나 조직이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가볍게 보는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내 업무 가치를 높게 매기고, 업무를 소중히 다루겠습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업무에 내 이름표를 달고 주인의식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통제력을 잃을 때 무기력해집니다. 자율성과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는 주인의식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6. 회사의 불공정한 절차나 업무처리를 보았을 때
채용, 승진, 연봉계약, 포상과 징계 등에서 불공정함을 보게 되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떨어집니다. 직원들 단합력도 약해지고 조직은 모래알처럼 흩어집니다.
직원들이 느끼는 '공정성'이 '연봉 수준' 만큼이나 구성원의 조직 만족도를 좌지우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공정성은 선택이 아니라 조직의 생존 조건입니다.
공정성은 꼭 비윤리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어떤 직원은 징계절차에 따라서 처벌받고 어떤 직원은 면책된다거나, 공정한 기준 없이 승진과 연봉인상률이 차등 적용되는 경우, 역량이 떨어지는 오너 가족이나 친척이 인사상 혜택을 보는 경우 등입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정말 일하기 싫어졌던 순간 베스트 6'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공감 가시나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의욕이 떨어지는 시기를 겪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건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장 뾰족한 대안이 없다면 지금 조직에서 실력을 축적하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커리어와 전문성을 쌓으면서 몸값을 올리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오늘도 스스로를 다잡으며 출근하는 모든 직장인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