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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Sep 11. 2021

밤늦게까지 들리던 엄마의 재봉틀 소리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

"드르륵 드르륵"


오늘도 엄마의 재봉틀 소리가 모두 곤히 잠든 방안을 가득 채웠다.

실눈을 뜨고 보니 희미한 불빛 아래서 엄마가 커다란 한복 치마를 재봉틀로 만드는 중이셨다.

밤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겁고 안쓰러웠다. 


해외생활을 했다고 하면 뭔가 집안이 굉장히 여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부유하고 풍족한 시기와는 거리가 먼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아빠는 회사에서 베트남으로 발령을 받아서 해외생활을 했지만, 회사에서 독립을 시도하셨던 아빠의 사업실패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우리가족은 한동안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우리의 생활비와 학비라도 벌고자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셨다. 나의 부지런함은 아마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식당일, 청소일과 같은 일용직 외에도, 손재주가 있으셨던 관계로 집에서 직접 재봉틀로 한복일감을 받아다가 늦게까지 밤낮없이 일하셨다. 그때부터 느꼈던 것 같다. 가난이란 힘들고 고달픈 일이라는 걸.


따로 작업실이 없었고 집에서 했던 관계로 큰방에서는 한복 옷감들이 쌓여있었고, 재단하기 위해 쓰는 가위, 초크, 실핀들이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쭈그리고 앉아서 불편한 자세로 옷감을 재단하고 재봉틀에 앉아서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한복 디자인을 하시는 엄마가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얼른 돈을 벌어서 엄마의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중 3이었던 내가 할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피곤하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셨을 엄마의 어깨를 안마해드리는 것 외에는.


재봉틀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들었다. 식구들 모두가 방한칸에서 잠을 잤는데, 방한켠 자리에 누워서 엄마의 일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잠들곤 했다. 내일 학교 가야하니까 얼른 자라고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엄마를 돕고 싶었지만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답답했다.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내가 해드릴수 있는 건, 딱 하나 공부 뿐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는 일.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는 더욱 공부에 몰입했다. 게을러지려고 하다가도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 그렇게 할수 없었다. 최대한 부담되지 않게 하기위해 문제집 살돈을 아끼기 위해 선배들이 풀었던 문제집을 물려받아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풀어보곤 했다. 문제집 살 돈이 부족하단 것을 알고 담임선생님께서 어느날 조용히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이걸로 공부하면 된다고 하면서 <교사용> 참고서를 몇권 건네주셨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도 엄마를 돕기위해 본격적으로 각종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늦은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한집 불만 환하게 켜있었다. 늦게까지 재봉일을 하던 엄마가 있던 우리집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엄마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귀가 후 재봉틀에 시선을 고정하시고 "왔니? 저녁은 먹었고?" 라고 묻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재봉틀에 앉아서 밤낮없이 고생하던 엄마의 뒷모습은 내가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한다는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엄마는 초라한 모습이라고 하셨지만, 나에겐 누구보다도 멋진 엄마이자 한복 디자이너셨다. 옷을 수선할 필요가 있을 때 엄마는 누구보다도 근사하고 멋지게 완성해주셨다. 나중에 돈을 벌면 꼭 엄마를 위한 한복 의상 스튜디오를 마련해드리고 싶었다. 지금의 나도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소화하지만, 그 당시 엄마가 하셨던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나에게 있어서 너무 멋진 워킹맘이시자, 영원한 롤모델이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동행>처럼 어려운 이웃 모습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남일이 아닌것 같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언젠가 그분들에게도 조금 더 나은 시절이 오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그중에서 내가 특히 마음이 가는 건, 엄마는 늦게까지 생계를 위해 일하지만, 그런 엄마를 응원하면서 학비가 부족해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쉽지 않았던 시절을 보내면서 내가 배웠던 교훈이었다. 


오늘 해피빈에서 기부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주절 주절 써보았다. 

타국에서 두 딸을 데리고 혼자서 살아가는 베트남 엄마를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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