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로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수익으로 이어지는 세일즈 스킬의 비밀
나의 첫 직장에서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시스템이 엄격하지만 정말 체계적으로 잘 짜여 있었다.
상품이 업계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었던 만큼 회사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트레이닝 후에는 시험을 봐야 하는데 이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일정 기간 내로 몇 번 더 기회를 주고, 그래도 통과하지 못하면 인사부에서 경고장, 최악의 경우에는 회사를 떠나야 할 수도 있기에-_- 다소 살벌한 평가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트럼프가 나오는 Apprentice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이랑 어딘지 비슷한 느낌이었던 같기도 하다. 대신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의 오디션.
글로벌 기업에 합격해서 들뜬 마음으로 입사 첫날을 맞이한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그냥 일반적인 연수 정도의 교육이라고 생각했다가 첫날부터 살벌한 평가기준을 듣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입사시험에 합격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트레이닝에 떨어져서 입사 취소가 되면 얼마나 창피할까 싶어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학교도 아니고 회사생활인데, 시험이라는 평가의 압박에 적응되지 않아서 중도에 포기한 친구도 몇몇 있었다. 당시에는 회사가 마치 학교처럼 여러 번의 평가 단계를 마련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유도해서 직원들의 스킬셋 성장을 할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 같다.
세일즈 팀에 가기 전에 받는 트레이닝 중, 내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내용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것이었다.
고객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세일즈를 위한 설득력을 위해 배워야 하는 것 중에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모델"이 있었다. 고객과의 대화를 할 때는 그 모델에 맞춰서 대화를 진행하면 효과적이라고 배웠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플로우는 다음과 같다.
-Investigating Needs (니즈 조사하기)
-Demonstrating Capabilities (제품의 역량 보여주기)
-Commitment (시간 투자하기)
-Objection Handling (거절 다루기)
-Credibility (신뢰감 형성하기)
-Summary / Action Plan for development (요약/다음 과정 계획)
특히 investigating needs 부분이 성공적인 세일즈 리드의 시작 부분이라 중요했다. 니즈 조사하기 전에 당연히 그동안의 고객 미팅 리포트를 보고 고객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백그라운드 정보를 조사는 필수적으로 마쳐야 한다. 그때 회사에서는 이 단계를 homework라고 불렀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고객을 만나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고객과의 Gap을 채우는데 SPIN이라는 형식에 맞춰서 질문을 한다. 여기서 SPIN이란 아래와 같은 항목의 약어이다.
Situation / Problem / Implication / Need Pay off
-Situation : 고객의 상태, 현재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
-Problem : 현재 상황에서 고객이 어려운 점, 불만족스러운 점
-Implication : 고객이 처한 문제점으로 인한 결과들 강조
-Need pay off : 문제점의 해결방법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해 강조
이 과정을 모두 프로페셔널한 어휘를 적절히 사용해 가면서 질문 하나하나를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며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내가 주도하는 페이스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한 발자국 앞서서 논리적으로 질문을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무슨 질문을 해야 좋을지 계속 생각하면서 말은 막상 잘 안 나오고 생각이 계속 엉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에 세일즈 스킬 관련 책도 많이 읽었는데도 역시 실전과 이론은 너무나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트레이너였던 C는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 세일즈를 잘하려면 팔고자 하는 상품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 두 가지가 갖춰진 상태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야 말로 고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도 자신 있게 팔 수 있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없을 때 남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트레이닝 후에 계속해서 롤플레이를 했다. 마치 고객 미팅에 있는 것 처럼 세일즈 담당자의 역할을 맡아서 시험에 통과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첫 롤플레이는 생각만큼 잘되지 않아서 내 적성은 세일즈가 아닌가란 좌절감도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최전선에서 고객과의 만남을 통해 회사의 수익을 끌어오는 핵심 역할을 하는 동시에, 목표 달성의 부담이 있는 영업직은 왠지 모르게 매력적이었다. 내가 한 만큼 숫자로 확실하게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점 역시 노력에 대한 보상이 있어서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트레이닝 시간 외에도 따로 시간을 내서 세일즈를 담당하시는 분과도 많은 커피 챗을 했는데 그분께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조언을 해주셨다.
매주 세일즈 해야 할 나라로 출장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체력적인 부담이 올 수 있다는 것.
언어를 잘하는 것과 세일즈를 잘한다는 것이 일맥상 통할 순 없다는 것.
이머징 마켓은 이미 포화상태인 시장과는 혼자 해내야만 하는 extra work가 참 많다는 것.
왜 내가 다른 부서 대신 이 부서에 와야만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 것.
커리어에서 무엇에 가장 큰 goal인지부터 마음속으로 정해야 할 것.
이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보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방황이 시작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현재의 나는 예전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고객 미팅을 갈때 SPIN 단계를 염두에 두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확실히 단계적으로 SPIN할 때와 그냥 랜덤하게 질문할 때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
돌이켜보면 그때 받았던 트레이닝은 비록 당시엔 힘들었지만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업무를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것 같다. 처음 직장과 다른 상품을 담당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응용이 가능한 것을 보면 모든 직장에서의 경험은 이직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큰 관점에서 보면 이어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어찌 보면 커리어란 업종이 바뀌거나, 회사가 바뀌거나, 부서가 바뀌더라도 Connecting the dot 하는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