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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권고사직

한 회사에서만 벌써 두 번째라니

by 커리어 아티스트
나 이제 석 달 뒤면 자유의 몸이야


이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별안간 불안한 기분이 스쳐갔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단다, 앞으로 3개월 뒤에는 퇴사해야 할 운명.

그래도 바로 나가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몇 달간의 시간이라도 주어진 게 감사하다고 했다.

요즘 실직하는 지인들이 많아서 실업률이 심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연락은 특히 더 마음이 갔다.


이 친구는 한 회사에서 벌써 두 번째 권고사직이었다.


7년 전쯤 부서 전체가 비용절감 문제로 인도로 이동해서 권고사직을 받았었다. 대안책을 찾으려고 회사 내부 채용 포지션을 찾으려고 전전 긍긍하다가 막판에 옆 부서 계약직을 찾아서 임시로 6개월을 일했다. 당시에 내부 채용 포지션 찾으면서 피 말리게 면접 보던 그 친구의 마음고생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 안쓰러웠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같은 자리의 정규직 헤드카운트가 생겨서 계속 일했다.


그렇게 같은 회사에서만 일한 지 10년째, 이제 또다시 회사는 그녀에게 나가라고 한다.

한 회사에서 한번 나가라고 해서 겨우 다른 자리로 옮겨서 적응하고 나니 또 이제 코로나로 인한 비용절감 때문에 나가라고 하는 말을 듣는 건 무슨 느낌일까.


그 동료와 이야기하면서 예전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7년 전의 그날이 생각났다.


어느 날 상무님께서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이 단행될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도 예고 차원에서 몇 번 얘기가 나왔지만, 이번엔 좀 본격적으로 진행될 거라고 하셨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많은 부서 펑션을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 쪽으로 보내게 될 것이란 이야기도 하시고,

웬만하면 타격이 크지 않게 조정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인원감축은 불가피하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뭔가 회사에서 오늘부터 나오지 마 란 잉여인간 취급을 하루아침에 받고 나면

야근하면서 온몸을 바쳐 일했던 그 시간들, 20대의 눈부신 청춘을 바쳐서 일했던 그 노력들이 너무 아깝고 허무해질 것 같았다.


구조조정이란 예전 IMF 때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겪던 그런 옛날의 어떤 사건 인 줄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직접 피부로 와 닿다 보니 이런 냉정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기술이 있어야겠구나, 어른들이 전문직이 최고라고 하던 건 다 이유가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서 과연 너는 무얼 하고 싶은지를 물어본다면 대답이 쉽게 안 나왔다는 거다.


그 발표가 있은 후, 점심시간에 동료들은 회사를 나가고 나면 제각기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토론을 했다.


호주 출신 동료는 예전에 일하던 호주 재무법 관련해서 컨설팅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하고

말레이시아 동료는 적당히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작은 커피숍을 내고 운영하고 싶다고 하고

싱가포르 동료는 영업직을 계속하고 싶은데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저마다 그래도 회사를 나오고 난 이후의 목표와 꿈이 있는 듯했다.

나는 아직 뭘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 세상에선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하나의 직업으로만 하나밖에 없는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기란 너무 아까운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닥치기 전에 이직을 했고, 그때 남아있던 동료들도 제각기 다른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누군가는 사업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이직을 했다.

7년이 지난 후 예전 동료는 또다시 두 번째 구조조정의 문 앞에 서있다. 구조조정은 꼭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에게 언제든지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용절감의 장벽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 게 회사원의 운명이 아닐까.


예전에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Keep looking to find what you really love. Don't settl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Stay Hungry. Stay Foolish.


사실 아직도 나는 평생 업으로 삼을만한 건 찾지 못했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도전은 많이 하지만 이런 방황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잡스의 말처럼 끊임없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서두르지 않고 계속 찾아보고 싶다.


그리고 두 번째 권고사직 소식을 들은 그 친구도

이번을 계기 삼아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그때까지 나도 친구가 지원할 수 있을만한 좋은 자리를 찾도록 도와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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