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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Mar 31. 2022

새로운 보금자리

집을 사던 날

싱가포르의 첫 생활은 방 한 칸에서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생활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렌트비가 너무 비싼데다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전체를 렌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좁은 방 한 칸이었지만, 항상 창문만큼은 넓은 방을 선택했었다. 마음이 갑갑해질 때, 한국이 그리워질 때,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면 위안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 한 칸에서 지내던 생활을 지나서 가족이 생기면서 집 전체를 렌트하게 되었다. 특히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프라임 지역이라고 해서 렌트비가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더 비싼 편이었지만 아이를 위해 학교 근처로 계속 렌트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매달 나가는 월세가 너무 아까웠고, 점점 오르고 있는 렌트비에,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세입자의 생활을 언제까지고 이어가긴 어려울 것 같았다.


지난 몇 개월간 주변의 모델하우스들을 돌아보았다. 예쁘게 꾸며진 모델 하우스들을 보면서 주변 지역 교통, 근처 지역의 발전 전망, 편의시설 등등을 꼼꼼하게 따져본 끝에 결국 한 곳을 결정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새 집은 아직도 공사 중이라 당장 이사할 수 없고, 앞으로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면 항상 지나치는 곳이라 익숙한 곳이다.


매번 그 곳을 지나칠 때마다 이상하게 은근히 마음이 끌렸다. 학교까지 걸어가는 거리에다가 주변 시설도 괜찮고 이 정도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집 값 때문에 가망이 없을 것이라고 포기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신혼 때 작은 집을 이미 구매한 적이 있어서 이곳을 사려면 기존 집을 팔고 사야 하는 터라 타이밍도 애매했다. 현재 세입자가 입주해 있는 기존 집을 살 구매자를 물색하고, 팔고 난 이후에 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부동산 에이전트와 이야기하고 모델하우스에도 방문해보니 만약 기존 집을 팔고 은행 모기지를 받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드디어 최근에 기존 집을 살 구매자를 찾았고, 새로운 집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다운 페이먼트라고 해서 처음에 내야 하는 현금도 많았지만, 그동안 저금한 돈으로 커버할 수 있어서 그 순간이 참 뿌듯했다. 은행 모기지가 있긴 하지만, 처음에 당장 현금으로 내야 하는 금액도 꽤 큰 금액인데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계약서에 당당하게 사인할 수 있는 우리 가족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열심히 회사에서 일하며 꼬박꼬박 모아둔 저축액을 한꺼번에 송금하면서 왠지 영끌 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 힘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그 뿌듯함, 여운이 오랫동안 남았다. 왠지 진짜로 독립한 어른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점점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각각 방을 주고 예쁘게 꾸며주고 싶은 로망이 생겼다.

월세살이라서 집주인 눈치 때문에 벽에 못도 하나 마음대로 못하고, 가구는 항상 남들이 쓰던 중고를 사고, 이사할 때면 집에 흠집나지 않았나 데포짓을 뜯기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던 세입자의 시절을 지나 드디어 내 집, 내 가구를 구매할 수 있는 우리 가족의 공간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마냥 설렌다. 비록 공사가 완료되고 입주하기 까진 시간이 꽤 많이 남았고 앞으로의 은행 모기지도 다 갚으려면 까마득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꿈꾸던,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가능하게 된 순간이 감격스럽다. 저축 통장 안의 숫자는 어떻게 보면 그냥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일하면서, 물건을 살 일이 생기면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고 아껴가면서, 아등바등 살아가던 노력이 묻어난 소중한 증거였다. 계약금을 송금하면서 문득 그동안의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몇 년 후,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지내게 될 우리 가족의 모습이 기대된다. 새집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는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어쩌면 먼 훗날엔 널찍한 마당있는 그림같은 그런 집을 마련하게 될, 지금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로 될 순간도 올 지 모르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방 한 칸에서 시작해서 집 계약서에 사인하게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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