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드는 생각
명절을 맞이하여 제대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휴일동안 식단도 생활리듬도 그냥 넋 놓고 있었더니 금방 살이 쪄버렸다. 방치되어 펑퍼짐한 상태가 되어가고 몸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하지 않는 내려놓음의 시간말이다.
지난주에 한 스타트업의 대표인 싱가포르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친구인데 요즘 나무늘보 모드인 나로서는 어떻게 그렇게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지 궁금했다. 올해 새해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나온다.
"올해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직접 시간과 노동력을 갈아 넣는 것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작년 한 해동안 너무 열심히 달려와서 올해는 쉬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일을 안 하는 삶, 얼른 은퇴하는 것이라고 하는 그녀의 말에서 요즘 내가 느끼는 번아웃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일반 회사원이나 퇴사를 꿈꾸는 줄 알았는데, 한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인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의외이기도 했다.
그녀의 목표는 얼른 회사를 엑싯하고 좋아하는 도시에서 1년씩 돌아가면서 살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싫증을 쉽게 느끼는 지라 일을 많이 벌여왔지만, 번아웃을 심하게 겪고 난 이후에 스스로를 챙기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 역시 이런저런 문제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아마겟돈 같은 요즘 상황을 털어놓으니 그녀는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스스로에게 친절할 필요가 있다고,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지난 며칠 동안 일부러 머릿속을 텅텅 비워보려고 했다. 아무리 잡생각이 치고 올라와도,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도 그냥 일부러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나니 오히려 이젠 조금씩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에너지가 생기는 듯하다. 거울 속 살찐 내 모습을 보니 이젠 찌뿌둥한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걷기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그동안 쌓아왔던 아주 작은 루틴들을 리스타트해야겠다는 의욕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펑퍼짐하고 느슨하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서 한동안 무기력을 느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기에 재미있는 기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할 수 없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할수 있는 아주 작은 습관들에 시선을 집중하다보면, 그 시간들이 쌓여서 단단한 내공이 되기도 한다. 1월은 혼돈의 나날들을 보냈지만, 음력으로도 새해가 시작되는 이제부터는 회복된 의욕을 바탕으로, 걷기 운동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