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이는 연습
코로나가 한창이던 그때, 답답했지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대한 지루해지지 않기 위해 나만의 프로젝트들을 여러 개 시도해 보았던, 돌이켜보면 굉장히 생산적인 시기였다. 당시에 그 부지런한 루틴을 함께하던, 열심히 일벌이기라는 점에서 나와 굉장히 비슷한 성향을 가지신 분과 오래간만에 커피챗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분의 표정은 예전보다 한껏 건강해지고 여유로워지신 표정이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공감 가는 이번 대화의 주제는 "예전과 다른 요즘의 마음가짐"에 대해서였다. 최근에 매사 대충 하는 일상을 보내면서 좀 안 하면 어떤가, 좀 느슨해지면 어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렇게 지내도 될지, 가끔 불안해지긴 해요."
나 역시 예전과는 굉장히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다. 루틴을 꼬박꼬박 지키던 예전의 라이프 스타일 리듬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출장이 잦아지면서, 그리고 데드라인에 쫓기면서 나 개인의 생활리듬보다는 일 위주로 일상이 흘러가게 되었다. 긴장이 반복되는 나날을 보내면서 이러다가 또 번아웃이 올 것 같은 예감에, 최소한 출장을 안 가는 동안만이라도 셀프케어의 시간을 갖고자 집 근처 요가수업에 등록했다.
난 원래 요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힐링의 시간이라고 하는 요가는 뻣뻣하고 유연하지 못한 나에겐 고문의 시간 같았다. 예전 요가 선생님이 자꾸만 자세를 교정해 주시는데 나에겐 불가능한 자세를 지키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특히 억지로 하는 다리 찢기나, 팔목이 약한 와중에 엎드려서 몸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자세는 그냥 보기만 해도 통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몸을 억지로 구겨서 해야 하는 수업, 그리고 투자 시간 대비 다이어트 효과도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차라리 조깅이나 러닝이 낫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등록한 학원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은 몸이 불편하면 절대 무리해서 동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나의 몸 컨디션이며, 몸이 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불편한 자세는 굳이 무리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어도 된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다고, 오히려 그런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선생님의 수업에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예전엔 너무 하기 싫던 요가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하단 생각을 갖고 보니 수업시간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자세가 잘 되지 않더라도 굳이 무리하지 않고 그냥 지금의 내 몸은 여기까지 허용하는구나, 내려놓는 연습을 수업시간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일에서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다하겠지만, 만약 결과가 예상과는 다르게 나오더라도 좌절감보다는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그 경험과 과정으로 인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걸로도 이미 충분하다. 해낼 수 없는 것에 아등바등 매달리기보다는, 그동안 해 온 성취를 돌이켜보고 잘해왔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이 앞으로 지속해서 커리어를 이어가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억지로 무리하게 되면 결국 꼭 중간에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지 않고 조금 느슨하게 갈 때, 오히려 가능한 것 같다. 요가를 그렇게 싫어했었는데, 이렇게라도 학원에 온 게 어디냐, 자세가 되지 않더라도 그나마 이렇게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 어디냐라고 스스로를 토닥토닥하면서 꾸준하게 수업을 참여하는 것 처럼.
요가수업 중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 얼른 뿌리염색을 해야겠다고 조급함이 먼저 올라왔을 텐데, 내려놓기 연습 중인 이번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지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를 잘 지켜준 나의 몸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짜인 루틴대로 1분 1초 열심히 빡빡하게 살지 않으면 불안해지던 내 모습도 달라지고 있는 중이다. 매사 불안에 쫓기다 보면 오히려 번아웃이 더 빠르게 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도 불안이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라일리를 장악하면서 과부하가 오게 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예전에 항상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몰아붙이던 내 모습과 묘하게 겹치는 것 같았다. 그때 기쁨이가 불안이에게 “불안아, 이제 라일리를 놔줘.”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동안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내 모습도 생각나서 갑자기 뭉클해졌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를 편안하게 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더 나아지려는 나,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아도 조금은 천천히, 그리고 느슨하게 일상을 보내는 지금의 내 모습도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