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여성들을 위한 헤어제품

실제 기업 컨설팅 프로젝트를 맡다

by 커리어 아티스트


MBA 과정 중에서 팀 프로젝트라는 과목이 있었다.


몇 개월 내로 모듈이 끝나는 다른 과목들과는 다르게 이 과목은 매우 특이하게도 1년 내내 컨설팅 업무를 직접 해보는 것이었다. 가상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실제 기업에서 컨설팅 요청을 하면 1년의 기간 동안 직접 시장조사와 결론을 도출해내는 프로젝트였다. 사실 이런 프로젝트는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과목이었고, 내가 이번 MBA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기존 수업은 그대로 진행하는 동시에, 실제 기업의 프로젝트를 팀 단위로 맡아서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건, 다른 업종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동안 MBA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적용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계속 풀타임으로 회사를 다니던 나로서는 새로운 업종의 인턴십 경험이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대신 할 수 있던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소문으로는 작년 선배 중에서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후, 컨설팅을 진행한 기업에서 잡 오퍼를 받기도 해서 업종전환을 생각하는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도전해볼만한 과목이었다.


프로젝트가 공개되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총 5개의 기업 후보 프로젝트들이 공개되었다. 명품기업, 제약회사, 스타트업, 소비재 회사, 화학회사 총 5개의 회사였는데 스타트업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전부 이름이 익숙한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었다. 우리들은 이 회사들에서 요청한 총 5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원하는 1 지망 그리고 2 지망을 선택해서 교수님에게 제출해야 했다. 거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것처럼, 몇몇 프로젝트에서는 지원자들이 넘쳤고 경쟁률이 치열했다. 나는 5개의 프로젝트를 보자마자 나에겐 2 지망은 없고 무조건 1 지망만 있음을 직감했다. 바로 뷰티 상품의 소비자 인사이트 프로젝트를 의뢰한 글로벌 소비재 회사였다. 이미 뷰티 업종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이만큼 매력적인 주제가 없었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인 것처럼, 몇몇 프로젝트에서는 지원자들이 넘쳤고 경쟁률이 치열했다. 특히 명품기업과 소비재 회사에 지원자가 유난히 많았다. MBA 프로그램 내내 동기들 사이에서도 경쟁은 피할 수 없었지만, 이번 건은 반드시 내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강하게 어필해야 했다. 관심 없는 프로젝트에 배정돼서 안 그래도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교수님에게 그동안 해왔던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경험과 동남아 지역 뷰티 트렌드를 정리한 포트폴리오를 첨부파일로 보내면서 최대한 어필해보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2 지망은 없고, 1 지망인 소비재 기업의 프로젝트만 희망한다고 보냈다. 추가적으로 노력한 덕분이었는지, 나는 무사히 희망하던 소비재 회사로 배정되었다. 자세한 프로젝트 내용은 배정이 된 이후에나 알 수 있었다. 나와 함께 같은 팀에 배정된 친구들은 러시아, 스위스, 일본, 싱가포르,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었다. 우리는 클라이언트사가 된 소비재 회사 실무진 분들과의 미팅 날 구체적인 프로젝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뷰티 상품이라길래 당연히 스킨케어나 색조 같은 화장품인 줄 알았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상품은 바로 헤어제품이라고 했다. 그리고 분석해야 할 소비자는 매우 특정한 소비자, 다름 아닌 히잡을 쓰는 무슬림 여성들이라고 했다. 무슬림 여성들을 위한 헤어케어 제품을 론칭하기 전에 동남아 무슬림 여성들의 소비자 인사이트를 분석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주제였다.


히잡을 쓴 여성들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상품이나 타겟 소비자나 내가 그동안 익숙하던 분야는 아니었다. 히잡의 의미를 찾아보자면 아랍어로 '가리다'는 의미를 가진 이슬람 여성 전통 복장으로, 얼굴만 내놓은 채 머리에서 가슴 부위까지 천을 늘어뜨려 상체를 가리는 두건이다. 동남아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 같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많이 착용한다. 싱가포르 역시 무슬림인 말레이계 여성들이 꽤 많았지만 평소에 그들이 관심 있어하는 뷰티 상품이 뭐가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몰랐다. 히잡을 쓰는 무슬림들을 흔하게 볼 수 있긴 했지만, 특별하게 관심을 두고 있진 않았었다. 알고 보니, 항상 두건이나 천으로 가리고 다니는 머리카락으로 인해 무슬림 여성들은 헤어제품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특히 더운 나라인 싱가포르의 경우, 하루 종일 두건으로 감싸고 있으면, 두피가 가렵거나, 땀으로 인해 냄새날까 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했다. 또한 두건 아래 하루종일 질끈 묶거나 올리고 있으면 탈모가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히잡을 쓰는 여성들을 위해 특화된 샴푸가 시장에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알고 보니 중동 같은 곳에서는 이미 부르카나 히잡을 쓰는 여성들을 위한 샴푸가 따로 시중에 많이 판매되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도 민트 성분이 포함돼서 시원한 느낌을 더하는 히잡용 샴푸가 있었다. 비록 종류가 다양하게 있진 않았어도, 무슬림 여성을 위한 상품이 따로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상품들이 다양하게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소비자들은 어떤 니즈를 갖고 있는지, 타깃 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피드백이 어떤지 알아봐야 했다. 마켓 리서치 회사들의 동남아 헤어용품 리포트를 읽어보기도 했지만, 무슬림만 세분화해서 리서치한 자료는 흔하지 않았다. 우리는 실제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보며 리서치를 준비해보기로 했다. 일반 무슬림 여성뿐만 아니라 무슬림 전용 미용실도 조사해보기로 했다. 싱가포르에서 무슬림 사원이 있는 부기스지역, 파야레바 지역들을 방문해서 시장조사를 했다. 그때 처음 알았던 건 무슬림 전용 미용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미용실 하면 생각하게 되는, 투명한 유리문의 인테리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입장하면 카운터만 있고, 그 뒤 공간들은 커튼으로 쳐져 있어서 내부를 볼 수 없었고, 남자의 출입은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우리 팀원 중에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자주 출장을 가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있는 무슬림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실제 소비자 인터뷰를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우리들은 실제 인터뷰를 위한 질문지를 작성했고, 출장 갔던 친구 덕분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헤어케어 제품이 실제 마트에서 어떻게 판매되고 있는지도 조사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보다는 무슬림 인구가 훨씬 많은 인도네시아에서 더 다양한 무슬림 헤어 케어 제품들이 시장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한 무슬림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어떤 뷰티 트렌드가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인지도 알아봤다. 1년 내내 마켓 리서치 리포트, 실제 소비자 인터뷰, 설문조사, 헤어살롱 인터뷰 등을 거치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마케팅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들도 적용해가면서, 팩트만 적힌 리포트가 아닌, 우리들의 인사이트까지 담긴 두꺼운 리포트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으로 머리카락을 비록 가리고 있었지만, 건강하고 아름다운 머릿결에 대한 관심은 일반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리고 있다고 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가리고 있다고 신경을 안 쓸줄 알았던 건 착각이었다. 마치 요즘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리지만 마스크 내부 피부에 뾰루지가 나는 것 처럼 트러블케어가 필요한 것과 비슷한 이치인 듯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5S9LfUkdavM

히잡 전용 샴푸 광고 (출처 : 유튜브)


1년이 지난 후, 클라이언트사에게 우리들의 컨설팅 결과를 발표를 하던 날, 우리 팀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들 각자 파트를 담당해서 발표를 진행했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수업에, 공부에, 시험에, 그리고 일, 육아에 바빴고, 시차 때문에 다 같이 콘퍼런스 콜을 하려면 밤늦은 시간에 진행해야 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컨설팅 프로젝트를 완성할수 있어서 뿌듯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덕분에 다양한 뷰티 제품들 중에서도 헤어제품에 대해 좀 더 깊게 알아볼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슬림 시장의 잠재력에 대해서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MBA덕분에 내가 좋아하던 뷰티업계를 간접 경험하면서, 그 중에서도 평소에 몰랐던 새로운 무슬림 시장에 대해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경험은 지금도 잊을수 없는 시간으로 남아있다. 내가 몰랐던 시장에서, 많은 사업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만으로도 나의 지난 1년간의 투자는 충분히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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