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실타래를 풀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 전임자로부터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인사 실무자를 처음 맡게 된 시점부터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장 큰 문제는 매월 상근예비역들에게 지급되어야 할 교통비와 중식비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지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임자는 이러한 상황을 못 본 척 지내왔던 것 같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 별로 얼마나 못 받았는지 정확한 액수를 파악하고 얼마를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지 산출해야 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못 받은 상근자들에게 연락하여 얼마 못 받았냐고 물어보는 것이 편한 방법이었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나는 약 40여 명의 반년간의 휴가내역과 입금 명세를 일일이 대조하는 방법을 택했다. 휴가일자를 입력하면 교통비와 중식비가 자동으로 산출되도록 엑셀 파일을 만들었고, 정확히 산출해 내는 데까지 주말 내내 출근하고도 3일이 더 걸렸다. 추가 지급을 위한 공문, 확인서를 만드는 것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이유는 대대장님과 돈을 못 받은 상근자들에게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한 상근자들은 죄가 없다.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 나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묵묵히 기다려준 상근자들에게 고마웠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에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여 빠르게 움직였고 최우선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대대장님께서는 나의 이런 점을 높이 사셨던 것 같다.
내가 했던 일 중 가장 큰 일은 행사 준비이다. 군 생활 중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 보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부대개방행사이다. 부대개방행사는 용사들의 가족, 친구 등이 부대에 들어와 용사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밥을 먹는지, 부대는 어떤 과업을 하고 있는지 등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행사이다. 행사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현수막 주문, 간식 주문, 이벤트 준비, 부대 환경 정리, 행사장 세팅, 콘텐츠 기획, 기념품 구매 등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행사 준비를 나 혼자 할 수 없지만 총괄 기획 및 통제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내가 간부들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전체적인 진행을 확인해야 했다.
부대개방행사를 성공적으로 준비하려면 여러 부서의 협조가 필수였다. 나는 각 간부의 현재 보직과 과거 경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강점에 맞는 역할을 배분해 군수·작전·정보·통신·예하중대 등 다양한 부서가 자연스럽게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덕분에 장구류 체험·화기 전시·도전 골든벨·급식 체험·공기총 사격 등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할 수 있었다.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상급부대의 연말 예산 집행 필요성을 파악하고, 인접 부대의 미사용 예산 재배정을 적극 건의해 기존 대비 4배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가족분들을 위한 풍성한 기념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가족이 참석해 주셨고, 용사들이 가족에게 이렇게나 사랑받는 존재임을 새삼 깨달으며 큰 보람을 느꼈다.
후보생 시절 훈련을 가면 난생처음 입어보는 군복을 입고 군인으로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게 된다. 제식, 사격, 각개전투, 유격훈련, 행군 등 정말 다양한 훈련을 하게 되며 군인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전술 개념과 군인으로서의 태도, 예절 군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배운다. 훈련 입소 첫날 체력 단련으로 단체 뜀걸음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체력이 약해서 도중에 낙오되었다. 근데 옆에 같이 뛰던 동기들이 나를 응원해 주며 내가 끝까지 뛰도록 옆에서 같이 뛰어주었다. ‘동기애’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건이었고 너무나 고마웠다.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행군’이다. 40kg의 군장을 메고 걷는 것은 태어나서 겪은 모든 육체적 힘듦 중 가장 힘들었고 가장 고통스러웠다. 이 고통에는 해결 방법이 없었다. 그냥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뿐이었다. 훈련에 들어가면 가족, 친구들이 편지를 써서 보내주곤 했는데 이는 훈련 중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가족이 써준 편지를 가슴에 품고 행군에 임했던 경험이 나를 더 성장시켰던 것 같다.
2학년 겨울방학 때 갔던 첫 훈련에서 4주 차 마지막 과정으로 수료했던 ‘각개전투’도 기억에 남는다. 조원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분대장을 골랐는데 하필 내가 되었고 분대장으로서 지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큰 목소리로 분대원들을 지휘하여 이동해야 했고 각종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다. 엄청 추운 겨울이었고 꽁꽁 언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몸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다음 주면 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뿌듯한 무언가가 떠올랐고 그날 밤 동기들과 함께 밤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았던 추억이 있다. 후보생 시절 다녀온 훈련은 힘들었지만, 동기들과 함께한 추억이 정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