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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호 Nov 12. 2022

소보루만 파는 어느 간판 없는 빵집 사장 이야기

일에 대한 생각

소보루만 파는 어느 간판 없는 빵집 사장 이야기


“병호야, 잘 생각해봐. 빵집인데 간판이 없다면 손님 입장에서는 어떻게 들어올까? 소보루가 맛있다고 소개받아 들어왔는데, 소보루만 팔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유훈 코치님의 질문이었다.


나는 간판도 없는 빵집에서 소보루(글꼴)만 팔고 지낸 지 10년 됐다. 종종 튀김 소보루(로고)도 팔고, 초코 소보루(글씨)도 팔고 있지만, 간판(홈페이지)도 필요하고, 표지판(페이스북), 안내판(인스타그램)도 길 모퉁이 마다 친절하게 설치했어야 했다.


내 비즈니스는 너무 불친절했다. 도저히 내 상품이 뭔지, 왜 필요한지, 이걸 구매하면 뭐가 좋은지 도통 설명 없이 나혼자 어딘가에 들어가 소보루를 만들고 있었다.


스스로 도시 서체 개발자라고 하지만, 도시 서체 만드는 용역비보다 로고나 캘리그래피, 홍보 콘텐츠 제작 용역을 해서 번 수익이 더 높았다. 나는 어떤 서비스로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는지. 나랑 친하게 지내면 뭘 줄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난 뭘 잘할까?

난 뭘 줄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늘 교과서 여백에 만화를 그렸는데 너덜너덜해진 교과서를 본 아빠한테 많이 혼났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교과서가 이런 건 줄 아셨는데 펼쳐보니 여백이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그린 그림들. 그날 이후 매번 아빠가 퇴근하시고 문 여는 소리만 들리면 보던 만화책을 숨기거나 그리던 그림을 숨겼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를 좋아했고, 따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아빠는 공부할 시기엔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아빠는 모른다.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책을 보다가 걸려 박대봉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 모셔오라고 하셨다는 걸. (선생님과 나는 딜을 했고, 다행히 부모님을 학교로 모시고 가지 않게 됐다. ㅎ)


오늘은 내 빵집에서 소보루 말고 다른 걸 팔고 있다.


경북 영주의 숨은 로컬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굿모닝 영주>를 용역 받아 그리는데 총괄 기획자인 남선센터 최인수 센터장님이 “병호야, 캘리그래피보다 이걸 더 잘하는데?”라고 3번이나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기분이 좋았다. 더 잘 그려보고 싶었다.


전국에 수많은 로컬 브랜드를 다 그려보고 싶다. <굿모닝 대한민국>이 될 때까지.


영주 남산선비지구 홍보 콘텐츠 <굿모닝영주> 일러스트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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