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쿠키

by 조화득





포춘쿠키. 얇고 바삭한 쿠키 속에 들어있는 오늘의 운세-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안의 메시지는 뻔하다. 오늘은 주변 사람을 조심하세요. 혹은 당신에게 행운이 찾아올 거예요- 같은 의뭉스러운 말들이 들어있다. 우린 그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순한 재미일 뿐, 메세지가 적힌 종이는 주머니 혹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금방 잊는다.


평범한 행운 메시지는 누가 적었을까. 아마 쿠키를 만든 업자일 거다. 그럼 그 속의 메시지는? 아마 쿠키를 주문한 사람이 적당한 문구를 적어서 냈을 거다. 포춘쿠키의 유래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자가 원하는 메시지가 들어가게 된다. 운세는 조작되었으니 진정한 포춘쿠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리송해진다. 고작 개당 이천 원짜리 쿠키인데 뭘 그리 대단하게 고민하는지.


작년, 중학교 기초학력 마지막 수업 때 포춘 쿠키를 학생들에게 선물하였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마지막 추억으로 제법 괜찮을 듯싶었다. 판매자가 메시지 리스트를 올려두면 나는 적당히 선택하면 된다. 일부러 학업 또는 기분 좋은 메시지로 선택하여 넣었다. 아이들은 공부는 싫어하면서 시험은 잘 보길 원하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길 바라며 진짜 “행운의 메시지”로 여겼다. 기말고사 성적이 잘 나오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봐주길, 친구들과 더욱 사이좋게 지내길- 온갖 바람들이 튀어나왔다.


맙소사. 내가 조작하여 넣은 (어쩌면 교육적 목적까지 생각한) 메시지인데, 이렇게 받아들인다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핸드폰 케이스에 소중하게 넣고 다니기도 했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소중하게 여길 일인가.


청소년기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시기다. 특별한 행운이 나에게 생길 거란 근거 없는 믿음. 그러니 내가 조작한 메시지조차 자신에게 행운을 줄 거라고 굳게 믿는 거다. 나는 그런 순진한 모습이 즐거워야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준다고 아이들을 속이는 부모처럼 말이다. 그런데 쉽사리 미소가 나오지 않았다.


기초학력 수업 특성상 빈곤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가정에서 방임되는 학생은 대체로 학업 성적도 낮다. 미래에 작은 희망을 품는 모습에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까. 내 위치에서는 아이들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장 아이들의 학습 의지를 유지할 수도 없었고, 내년에 볼 수 있냐던 아이들의 질문에 확답을 줄 수 없었다. (계약직 신세란!)


기초학력 수업은 부적응 학생이면서 조용히 외면당하는 학생들이 온다. 크고 거칠게 행동하면 교사의 시선이라도 받지만, 얌전하고 말 없는 아이들은 사고 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저 “조용히” 외면당한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착하고 조용하고, 그러다가 어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아이들이다. 수업에 따라오지 못해도 시끄럽게 떠들며 방해하지 않으니 그대로 방치된다.


어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들, 아이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주는 메시지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착한 만큼 포춘쿠키 메시지를 순진하게 믿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쩌면 아이들의 희망을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한 “재미”로 여겼던 건 나의 실수였다.


동네 축제에서 태권도를 발표했다고 자랑하며 뿌듯해하던 친구.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도 패드가 없어서 공책에 열심히 그리던 친구. (가정 형편 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했으리라 예상되었다)

경계성 지능이라 특수반이지만 친구들과 만나고 싶어서 기초학력에 왔던 친구.

학교 수업은 따라잡을 수 없어서 힘들지만, 이 시간만큼은 작은 간식을 먹으며 그림 그리던 친구.


한 명씩 자세히 보면 각자의 소망이 있었다. 그 소망은 포춘쿠키 속 메시지와 만나 희망으로 변했다. 어쩌면 학교 부적응 친구들에게 필요한 건, 자기 긍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 말이다. 조작된 행운이면 어떠랴. 그 희망이 아이들의 인생을 배신하지 않게 어른들이 도움을 주면 그만이다. 나의 의도는 즐거움이었지만 메시지는 아이들의 소망을 담아 진정한 행운으로 변했다. 가짜 행운 메시지라도 아이들이 “진실”이라고 믿으면 그것은 현실이 되어야 한다. 아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이므로 미래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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