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는 동조와 공감, 호응을 버튼 하나 누름으로서 표시할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한 것으로 만든다. '좋아요'는 유저에게 어떠한 결단도 요청하지 않는다. 좋아요는 개인간의 정서적 교감을 단지, 버튼을 눌렀는지의 여부의 문제로 단순화하고 그 의미를 축소시킨다. 말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고, 결단을 요청하지 않는 교감은 그에 투여되는 자원의 크기만큼이나 한없이 가벼운 것이 된다. 'n개'의 수치로 표현되는 '교감'은 그처럼, 양적인 지표로서 납작해지고 고착된다. 계기count를 담당하는 카운터의 내부에서, 교감은 숫자만을 남기고 교감의 주체이자 대상으로서의 각 개인과 그 물성은 납작해지다 못해 증발하고 만다. '좋아요'는 오로지 양적인 심볼로서의 그 자체의 의미만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누를 수 있는 것이어서,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SNS,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교감, 공감, 또는 호의 자체가 오로지 '양'으로서 측정된다. 코멘트조차, 그것들의 내용으로 파악되기 보다는, 얼마나 '많은'(양적으로 풍부한) 이들이 그에게, 포스팅을 작성한 사람에게 호감 또는 적대감을 표하고 있는가로 '측정'된다. 따라서 그것들은 일련의 조직화된 텍스트라는 본질로서가 아니라, 단일한 의미, 표현에 대응하는, 그리하여, 충분히 축적되고서야 유의미해지는 양적 대상으로 간주된다. 읽혀지지 않고 양으로 세어질 뿐인 텍스트는 그러한 단순 계량의 경향에 맞추어, 읽을 수 있는 내용을 잃어간다. 즉, 각개의 코멘트는 하나의 '좋아요'(또는 '싫어요')나 다름없게 된다. 코멘트는 단순히 그런 식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동적이고 즉각 파악될 수 있는, 그리고 그 이상으로 파악할 게 없는 피상적인 감상의 기술에 불과하게 된다. 그것들이 그 이상의 무엇일 수 있다면, 오직 애매한 호의나 추상적인 적대감의 충분히 거대한 축적과 그 일부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수천, 수만개의 코멘트가 표시하는 감격은 그것들 각각이 조직하고 있는 모종의 의미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이는 오로지 그것들이 하나의 일정한 경향을 지닌 집합이라는 점에서 유효하다. 각개의 코멘트들 자체, 즉,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비특이적인 호응, 응원의 메세지(예뻐요, 멋져요, 훌륭해요, 대단해요, 좋아요)나 인성, 공감 능력의 파탄, 지능 문제 따위를 언급하는 일반론적인 저주, 비방(죽어라, 저능아, 인간의 탈을 쓴 짐승, 부모가 없이 자랐다 따위의)과 같은, 코멘트가 게시되는 포스팅에 대해 특정적인 반영이 없는 표현들은 그러한 감상의 표현이 의도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을 표시한다. 그것들은 말해질 수 있으므로, 말해질 뿐이다. 그것들에 그 밖의 의미는 없다.
이러한 계량의 경향은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조차도 단순한 양의 문제로 환원 시킨다. 즉,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여부조차 오로지 대중적 선호를 따라 결정된다. '좋아요'와 그처럼 양화量化된 코멘트로 나타나는 양적인 호오好惡의 표현만이, 전반적인 하나의 반응으로 드러나게 됨으로서, 그것이 반영하는(그러하다고 생각되는) 대중적 선호가 고려해야 할 거의 유일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