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ritingonthewall Aug 22. 2022
앤서니 조슈아는 밑 체급에서 올라온 알렉산더 우식에게 두 번이나 연달아 패배했다. 투기 종목에서 매 경기의 승패는 선수의 상품성과 직결된다. 이번의 연패로 종전까지 헤비급 복싱, 더 나아가 영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로 군림했던 조슈아는 극적인 추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에 조슈아는 '자신의 것이었어야 한다고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았을' 우식의 챔피언십 벨트를 링 밖으로 집어던지는 추태를 선보였다. 경기의 승자이자 챔피언인 우식 대신에 자신이 주인공인양 링 위를 활보하면서 (위축된 자존감을 감추기 위한 의도가 완연한) 낯뜨거운 마이크 워크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승자에게 주어졌어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부당한 형태로 자신에게로 빼앗아왔다. 사람들은 그걸 단순히 현실로 다가온 몰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저지른 추태라고만 생각한다. 물론 그런 행동은 어떤 의미에서, 특히 정제되지 못한 날 것의 감상과 매너로 치장되지 않은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맥락에서 추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 정도일 뿐인 것인가?
강렬한 좌절의 경험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프로 선수, 특히 조슈아 같이 챔피언십 컨텐더 레벨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대다수 범인들은 선수들이 수령하는 수십, 수백억원 대의 연봉 액수를 월급쟁이인 자기 봉급에 비교하며 부러워 하기나 하지만, 정작 선수들은 운동을 단순한 돈벌이로 여기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걸 평생의 사명과도 같이 여기며 말 그대로 생활의 모든 측면을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는 데에 할애한다. 최적의 체질을 유지하기 위한 식단 관리는 기본에, 매일 수 시간 이상 강도높은 훈련에 매진하고, 철저히 정해진 루틴에 몰입하며, 수령하는 연봉 가운데의 상당량을 훈련 시설, 유능한 코칭 스태프들에게 재투자하며 끊임없는 향상을 갈구한다. 일반인은 단 일주일, 길어야 한 달도 지속하지 못할, 무분별한 욕구와 나태함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는 수도자 같은 생활을 선수들은 적어도 10~20년 가량의 현역 생활동안, 경우에 따라서는(ex. 버나드 합킨스) 평생에 걸쳐서 지속한다.
편집증적인 집요함과 절제를 동반한 근면함은 선수들의 직업병과도 같다. 그들은 그만두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다. 이미 몇 대에 걸쳐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을 쌓아놨고 투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명예를 전부 누려봤으며,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금발 글래머 미녀의 이데아나 다름없는 케이트 업튼과 결혼하기까지 한 저스틴 벌랜더는 마흔살의 나이에 팔꿈치 수술까지 받아가면서 왜 아직도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을까? 전무후무한 슈퍼볼 7회 우승자이자 역대 최고의 풋볼 선수, 지젤 번천을 가진 남자 톰 브래디는 왜 올 시즌 예정된 은퇴를 번복하고 필드에 나서는 것일까? 오랜 기간동안의 '허슬hustle'로 체화된 근면함이 몸에 익어서 정말 그만둘 수밖에 없을 때까지는 그만 둘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들은 그 자리에 올라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프로 스포츠에서의 성공은 종목을 불문하고 유소년기부터 최소 10년 이상의 '기약없는' 투자를 전제로 산출된다. 누구도 어린 유망주들에게 그들이 프로 선수가 되어서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될 거라고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투명한 미래, 희박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도의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정진하고 불안과 맞서온 끝에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까지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는 대체로 안정성을 추구하는 범인들의 계산적인 사고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그렇게 평생에 걸쳐서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집요하게 추구해온 꿈이 한 순간에 좌절되고, 더 나아가 그것이 남은 일생동안 성취될 수 없다는 절망적인 확인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사람이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좌절되는 욕망의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인간은 사실 그것을 진실로 의욕하지 않았던 자 이외에는 없다. 앤서니 조슈아가 보인 추태, 그리고 그 밖에 '과도한' 승부욕의 발현이라 이해되는 선수들의 기행에 대해서 패자의 발악일 뿐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은 그 표층의 이면에 전제된 의지의 역동, 메커니즘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즉, 그러한 절실함을 경험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토록 강렬하게 무언가를 추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좌절과 상실이 야기하는 불안의 무게를 가벼이 여길 뿐이다. 그러한 행동이 한 순간의 얕은 감상과 정념에 휩싸인 끝에 야기된 발작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삶을 지탱하는 사명과도 같이 여겨지며 추동drive된 강렬한 목표 의식, 이상ideal이 한계에 부딫침에 잇따른 반작용임을 이해한다면, 그것이 보이는 대로의 가볍고 무분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