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백종원의 몰락에 관한 소고
인간 백종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것이 없다. 원래 그런 언행으로 사랑받았고 요식업자임에도 이례적으로 '선생'이라 추앙받던 인물이었으며, 그와 그의 회사가 저지른 몇 가지의 위법 사항도 최소 수년전부터 자행되던 것들이다. 달라진 것은 그를 대하는 세인들의 태도 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달이 차면 기우는 때가 있다지만, 일개 요식업자의 입지를 초월하여 한 시대의 스승으로까지 존경받던 이가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에 몰락할 수 있을까?
백종원이 당면한 곤란은 그가 더이상 한 명의 자연인 백종원으로 남을 수 없는 사회적 지위에 도달했고, 또 오랜 기간 대중들에게 추앙받으면서 부지불식간에 그의 에고가 더는 대중들에게 용납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무능해질때까지 승진한다." - 이는 로렌스 피터가 본래 고찰했던 관료제 조직이라는 맥락을 넘어, 모든 세상사 흥망성쇠의 법칙이기도 하다. 신묘한 처세술을 지녔거나, 세인의 평범한 기준으로는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에토스와 재능을 가진 극소수의 '초인'들을 제외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수준'이 미치는 한까지 스스로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의 한계 너머를 욕망하는 인간은 오이디푸스 왕과 아라크네가 자기의 오만함hubris에 의해 운명의 심판을 받았듯이, 예정된 파멸을 피할 수 없다. 요컨대, 타고난 그릇에 비해 지나친 성공을 거둔 것이 그의 몰락의 원인인 것이다.
한동안 백종원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사실 그만큼 '잘난' 인간이기도 했다. 모두가 그를 '장사의 신'으로 모시며, 폐업을 앞둔 자영업자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솔루션을 물었고, 남들은 돈주고 하는 광고를 본인은 출연료 받아가면서 공중파 예능을 자기네 홍보부서인 것마냥 부렸고,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전업 '셰프'였던 적도 없으면서 미슐랭 3스타 셰프와 심사위원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고, (자격의 여부를 떠나서 심사위원으로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기는 했다.) 온갖 지역 지자체 축제를 도맡아 진행하면서 사실상의 지역 유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일개 사업가가 아닌 백종원 '선생님'이라 추켜세우고 존경의 시선을 보냈으며, 백종원 본인의 연예인, 셀러브리티로서의 성공을 등에 업고 더본코리아를 시총 수천억 규모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더본코리아의 상장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더본코리아 산하 가맹점들의 심각한 '점바점' 문제, 높은 폐업률, 농지법, 식품위생법 위반과 같은 크고 작은 사법 리스크가 그저 요리 잘하고 잘 알려주는 백주부, 상황이 어렵고 미숙한 자영업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백종원 선생님이었을때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문제였지만, 백종원이 상장 기업의 총수임이 공식화되고 그의 행적에 수많은 주주들과 가맹점 점주들의 운명이 달려있음이 명백해지면서, 그것들은 더이상 사소한 문제들이 아니게 되었다. 더본코리아의 성장은 '유명인' 백종원의 성공에 기인하는 만큼 이제 백종원의 언행과 그가 내린 모든 사업상의 결단과 그 여파는 잠재적인 오너리스크의 발현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더본코리아라는 기업의 부실한 내실, 백종원 개인이 방송상에서 비친 여러 언행상의 실책이 '뒤늦게' 밝혀지게 된 것은 이처럼 변화한 상황과 인식의 필연이었다.
'예능인' 백종원이 농약통에 쥬스를 담아 고기에 간을 하고 엔진 오일 드럼통에 고기를 굽는 건 괜찮다. '멘토'로서의 입지를 빌미로 출연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고압적으로 대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이 화면상에서의 재미와 극적인 연출을 위해 만들어지는 방송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식업을 업으로 삼는 대기업의 총수가 그러한 일들을 벌인다고 할 때 사람들은 그의 언행들이 그가 자신의 사업을 대하는 태도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 즉, 설탕을 폭포처럼 쏟아넣는 예능인 백주부에서 주주와 산하의 직원들과 점주들의 생계와 경제적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상장 대기업의 총수로 이행한 백종원의 대외적 위상은 그의 앞으로의 행로뿐만이 아닌, 이미 치러진 행위들의 도덕적 층위와 무게감을 바꾸어놓았다. 이제 그는 보다 철저하고 결정적인 의미에서 더본코리아라는 기업의 얼굴이며, 그래서 그의 잘못은 사소한 것일 수가 없고, 엄격한 기준하에서 재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가로서 백종원이 '생각보다'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지금 그에게 가해지는 공격과 조롱의 근원의 표층만을 이룰 뿐이다. 무능은 언젠가는 시정될 수 있고, 무능함 자체가 도덕적인 문제인 것도 아니다. 그가 '내로남불'을 자행하고 타인의 아이디어를 자기가 고안해낸 것 마냥 주장하는 따위의 인간적인 결점을 보인다는 사실도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이제와서 모든 것이 밝혀졌듯이, 백종원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고, 다들 여태 그걸 지각하지 못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오늘날 요식업의 제왕에서 만인의 장난감으로 입지상의 추락을 겪게 된 것은 만들기 쉬우면서도 맛있는 요리를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계도하는 일련의 행적들을 통해 형성해낸 대중 친화적인 페르소나가 최근 그에게서 드러나는 노골적인 자의식과 근본적인 어긋남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 감독 김태형은 잠시 현장을 떠나 해설가로 일했던 시절, 생방송 중 선수에게 욕을 하는 방송 사고를 일으켰지만, 아무도 그걸 논란으로 비화 시키지 않았다. 원래 김태형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인격과는 거리가 멀고, '두목 곰'이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특유의 터프한 리더십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민희진은 하이브와의 소송전을 앞두고 진행한 (마찬가지로 생중계된) 기자 회견에서 소송 상대자인 하이브 임원들에게 분노 섞인 상욕을 쏟아내면서 여러 의미로 전례없는 장면을 연출했지만, 그로 인해 비난을 받기는 커녕, 그러한 과정에서 연출된 카리스마적인 격정을 통해 오히려 불리한 여론을 자기 편으로 반전 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칸예 웨스트는 근래 SNS상에서 히틀러와 나치를 옹호하고 (그 자신이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적 담론을 이어가는 등 서구권의 대표적인 금기들을 건드리며 노골적인 트롤링을 자행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칸예는 원래 광인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그의 광증이 그의 실험적인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라 믿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속의 기준과는 별도로 정립된 자기만의 원칙과 미학에 따라 움직이고 그만의 독특한 관점, 세계관의 가치를 인정받아 지지받는 인간이기에, 세속의 기준으로는 재단할 수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세속을 초월한 사람에게 세속의 규칙은 당초부터 별 의미를 가지지 않고, 그를 지켜보는 타인들도 그가 사회의 다수가 그에게 지운 도덕적, 사회적 예법과 의무를 당연히 준수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종원은 그가 운영하는 산하 브랜드들이 대개 다수 대중에 의한 소비를 전제로 한 '가성비'로 승부를 보는 프랜차이즈라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보여지듯, 그는 대중이 주도하여 설정하는 평범성, '정상성'의 가치를 위배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는 인격이다. 백종원의 성공은 자기가 지닌 유일한 속성으로서의 소박한 평범함의 위대함을 믿는 사회의 다수, 민중에게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인 백종원의 대외적 이미지는 비록 전문가이기는 해도 모든 것을 무식자들조차 알기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전문가이지, 모든 것을 엄밀하게 개념화하고 분석하는 학술가가 아니다. 그 덕분에 그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백주부'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백종원은 만인의 '선생님'이 되어버린 자신의 위상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가 잘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운영하는 거의 모든 브랜드와 자사의 제품에 자기의 얼굴을 박아넣을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고, 그걸 숨길 생각조차 않는다. 자사 제품에 특정 농수산물, 축산물을 재료로 사용하면서 온갖 농가를 살리는 데에 동참하겠다고 말하는 호의의 표명도 사실은 나니까, 오직 나만이 이 수많은 농가들을 살릴 수 있다는 오만섞인 자신감의 표현이다. 연일 악재가 잇따르고 회사의 주가가 폭락 중인 상황 속 처음으로 치러진 주주 총회에서 당시 대규모 산불 사고를 언급하며, "나는 성격상 산불난데 가서 밥 해줘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던 장면 역시 백종원이 그 스스로를 일종의 '민중의 구원자'로 이미지화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그는 방송에서 출연자들이 자신의 논지에 반박하거나, 하달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대하듯' 면박을 주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실로 백종원 '선생님'에게 그런 불충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나여, 백종원!" - 이 한 마디가 지금의 백종원을 수식하는 슬로건이 된 것은 이제 백종원의 '선생님'으로서의 군림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백종원이라는 이름이 더이상 그 자체로 하나의 (자랑스럽게 자칭할만한) '명예'로 간주되지 못할 만큼 실추되었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본인의 사업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훈수두고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기 바쁜 '주제넘은' 인간으로 밖에는 보지 않는다. 물론 백종원은 실제로 꽤나 유능한 사람이다. 방송에서의 능란한 언변과 한식뿐만이 아닌 세계 각국의 요리와 식문화에 관한 상당한 수준의 지식으로 그 자신을 성공적으로 브랜딩하였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값을 발판삼아 사업의 체급을 키우는 데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난 사람이 스스로 잘났다는 자의식을 드러내면서는 다수의 '잘나지 못한' 민중의 원망resentment을 피하기는 어렵다. 대중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전통 시장을 방문해 평소에 먹지도 않을 시장 음식을 입에 우겨넣으며 서민 행세를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대중 정치인의 성공은 보편 대중의 호의를 입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므로, 그들과 대중이 서로 이질적이지 않고 일련의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 뿐만이 아닌, 대중을 상대하는 모든 종류의 공적 인격에게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국내에서 수십년간 최정상의 입지를 지켜온 예능인 유재석이 자기의 '이견의 여지가 없는' 위상을 굳이 과시하지 않는 건 단순히 그가 '착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러면 대중의 시기와 분노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윤성빈이 공분의 대상이 된 것도 그가 대중의 처지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발언을 여럿하여, 가정된 동질성에 기초한 대중과의 정서적 연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어도 대중의 호의에 성공을 빚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대중을 배반해서는 안된다. 실상이 어떻든, 그들과 자신이 근본적으로 유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금의 백종원은 실패한 상권을 부흥 시키고, 요식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전문적인 소양을 가진,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광휘를 잃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중들의 추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대중과 같은 '입맛'과 눈높이를 공유하고 있음을 오랜 기간 강조함으로써 형성해낸 대중과의 유대를 함께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