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대체로 글보다 말을 먼저 배웁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마.. 마.. 엄마' 혹은 '파.. 파.. 아빠'이려나요? 입술을 열어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를 감동케 한 아기들은 조금씩 단어와 문장을 배워가 부모와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 저건 무어야?'
'응, 소방차야.'
'소방차가 무어야?'
'음, 소방차는 불을 끄러 출동하는 자동차야.'
'출동..? 출동이 무어야?'
아기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존재이죠.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기만 합니다. 그런 아기는 이후 '기역, 니은, 디귿..' 하면서 글을 배우고 금방 자신의 이름을 적기도 합니다. 부모는 그런 아이가 마냥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아이는 자라 학교에 입학하고 몇 해는 반장도 도맡아 하면서 쑥쑥 큽니다. 아 아이는 수학에 재미를 붙여 대학은 공대로 진학하였지만, 글을 쓰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야경 사진을 찍고 그 위에 시 한 편을 덧입히거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의 일기장이 쌓이고 쌓여 무릎만큼 높아졌을 즈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찾고 자신만의 글쓰기를 계속했습니다.
예, 위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궁금한 것이 참 많던 한 아이는 자라서 글을 좋아하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나눔을 좋아합니다. "이야기 나눔, 마음 나눔" 말이에요. 그래서 그 매개가 되는 글과 말을 굉장히 사랑합니다. 살다 보면"글과 말" , 둘 중에 하나에 집중하는 때가 옵니다. 그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글이 너무나도 편하고 좋습니다. 매일 밤 저의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를 채웠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가 참 어려울 것 같네요.
반대로 친구들과 나눌 때는 서로의 말이 정말 귀하고 소중합니다. 친구의 말을 들으려면 귀를 기울이고, 그의 표정을 늘 읽어야 하지만 그 수고는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 사람과 이야기하는 순간에 몰입하면 그 순간만큼 즐거운 일도 없습니다.
가끔은 학생들과 교수님 앞에 서서 발표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화면의 글들을 띄우고 저의 목소리로 청중들을 사로잡아야 하지요. 발표를 위해 충분히 연습하였다면, 아마 이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닐까 합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목소리에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우리는 하루 중에도 글과 말을 번갈아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제를 보아도, 오늘을 보아도 분명 그러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선택의 연속이지요. 나눔을 할 때에 글과 말 중에 무엇을 선택하느냐 말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글을 선택하고 싶네요.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메모도 하고, 영감이 떠오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적을 것입니다. 그것이 일기이든, 에세이든, 칼럼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조용히 글을 적어나갈 때 차오르는 그 평화를 느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말을 택하겠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살피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메신저나 글보다는 말이 더 용이하겠지요. 대중들 앞에 나서는 순간에도 저는 말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게 글과 말을 고루 사랑하다가-
죽음 직전에는 다시 글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님의 목소리를 알지 못합니다. 단지 그분의 전쟁을 기록한 글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백 년 전 이순신 장군이 있었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오직 글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 없어져도 어딘가 적힌 저의 글은 남아서 누군가 읽어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