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rmen Jul 21. 2016

나는 공부를 못해

직딩으로 새로운 공부 시작하기

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사실 유학을 준비하면서 공부 자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1년 반 동안 


- 토플(영어)과 GRE(영어+수학) 시험공부

- 사이버대에서 컴퓨터 공학과 전공과목 5개 수강

- 기타 인터넷 강의 (고등학교 수학, 기초 코딩, 통계학) 수강


을 해왔지만 말이다. 


내가 '공부'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대학원 합격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그들이 보인 반응 때문이었다. 축하한다, 대단하다와 같은 인사 뒤에 상당 수가 '나는 이제 공부는 더 이상 안 하고 싶어'라는 말을 덧붙였다. 마치 '군대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와 비슷한, 진절머리 나는 느낌으로 말이다. 아아. 그런데 그들의 말 때문에 반대로 대학원에 입학하는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결론을 도출되었다. 여기서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일까. 





진정한 문과인 내가 30대에 공대 공부라니...


나는 중고등학교 때 국어, 사회, 영어를 좋아했고 수학, 과학을 싫어했다. 아주 당연히 문과로 갔다. 특히 과학을 무척 싫어한 과포자였는데 그 이유는 '과학책에서 다루는 내용에 별로 관심 없음 -> 잘 안 외워짐 -> 시험 못 봄'으로 압축된다. 반면 10개 안팎의 경영경제, 사회과학 전공을 묶어놓은 사회과학계열에 입학한 대학교 1 학교 때엔 계열 내의 전공들이 거의 다 흥미로워 보여서 전공 선택에 고심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컴퓨터 공학, 통계학을 근간으로 하는 데이터 사이언스를 석사로 전공하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데, 데이터 사이언스 전공으로 유학을 결심했을 때엔 나의 과학 알레르기에 대해 망각했었고 그냥 일단 해보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되어 망각했었나 보다. 


유학을 위한 공부들은 마치 여행을 가기 위해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 - 가이드북 읽기, 숙소 예약, 맛집 검색 등 - 처럼 느껴졌다. 대략 이런 흐름이다:

미국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음 -> 가장 쉬운 방법으로 미국 대학원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 학위 취득해야함  ->  대학원 지원에 토플과 GRE 점수, 각종 선수 과목 (통계학, 컴퓨터 공학) 이수 필요

이런 논리적 흐름에 따라 영어, 수학, 코딩을 공부하는 것은 지당(?)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고통 없이 이 공부들을 해낸 것은 아니다. 직장인이다 보니 어렵게 공부할 시간을 냈는데 암기력은 예전만 못하고 처음 코딩 수업을 들었을 땐, 아무리 들어도 머리 속에 박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계절은 빠르게 바뀌고 에세이도 써야 하고 학교 써치도 해야 하니 조급하고 답답했다. 그러니까 유학 준비를 위해 했던 공부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의외로 공부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레알 문과인 나에게 수학, 과학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교 땐 잘 이해되지 않아 외우고 넘어갔던 미적분이 드디어(!) 이해가 되어 신기했다. 덕분에 고교 이과 수학과 공업 수학까지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암기력은 떨어졌지만 사고력, 이해력은 그만큼 높아진 느낌이었다. 또 하나, 공대 수업들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야 하는 공부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정말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공부. 예를 들면 벡터와 행렬을 배우고, 다음으로 선형 대수를 배운 뒤에야 머신 러닝을 배우고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지금 하는 공부가 어디로 이어질지에 대해 늘 생각하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목표는 결국 여행을 가서 즐겨야 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다. 가끔 미국의 대학원 수업시간에 데이터 사이언스 전공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내 모습과 대학원 졸업 후 미국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면, 지금의 기초 쌓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공부를 못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며칠 전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공부중독'이라는 발견하였다. 이 책을 짚어 들고 읽다가 '진절머리 나는 공부'와 '내가 이제와서 재미를 느낀 공부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하지현: (중략) 그런데 우리는 요약정리 식의 공부만 가르치고 있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방대한 양을, 얼마나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한눈에 들어오게 제공해줄 수 있는가가 교사의 자질이라고 오인이 되고 있어요. 
엄기호: 굉장히 매끈하게 요약정리해서 정답을 향해 어떤 주저함도 없이 돌진하는 형태가 모든 공부의 전형이 되어 있고, 그런 식으로 공부해야지만 안심을 하고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죠. 
<공부중독> 중에서 - 엄기호, 하지현 저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공부란, 시험을 잘 보고 등수를 잘 받아서 상위급 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해줄 수 있는, 요약정리와 같은 공부가 일반적인 '공부'로 자리잡기 때문에 - 'XX, 독하게 2주 만에 끝내기' 같은 책을 생각해보라. XX에 어떤 것이든 넣을 수 있다 - 공부는 점수를 받기 위해 빨리 끝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30대에는 더 이상 점수와 등수가 필요 없다. 하지만 공부는 필요하다. 재취업, 창업, 투자 -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말이다. 공부 자체가 원래 고단한 싸움이거나 우리가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부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공부가 서열화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면서 본래 의미가 퇴색되었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공부를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