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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Feb 28. 2020

만취상태에서 기자로서 경찰서의 문턱을 처음 넘은 나는


일선 경찰서에 취재라는 걸 하러 처음 나간 날의 기억은 어렴풋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뚜렷한 편이다. ‘출정주’라는 걸 먹고, 토할 만큼 토한 채로 어떻게 갔는지 하여튼 가야 하는 남대문경찰서 형사계에 도착했다. 미리 교육을 받았지만, 대학생 시절에 두려움의 대상인 경찰서에 들어가려니 좀 쭈뼛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떡이 되어 가지 않았다면 말이다.


술기운이라는 게 무섭다. 남대문경찰서를 휘적휘적 두려움 없이 들어가서 형사계도 서클룸 들어가듯이 들어간 듯싶다. 만취상태로. 당직 형사가 박카스를 주고 잘 해주었던 것 같다. 그 양반들이야 겨울철엔 수습기자가 와서 휘젓고 다닌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테고, 아마 사전에 “잘 대해주라”는 통지를 받았지 싶다.


만취하긴 했지만 주정이 심하거나 주사가 있는 편이 아니어서, 큰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가끔 난동 비슷한 걸 부리는 친구가 있다고 들었다. 내가 친 사고는 퇴근한 어느 형사의 자리에 앉아 그 양반 타자기로 뭔가를 계속 쳐댔다는 건데 왜 그랬는지, 뭘 썼는지는 기억에 없다.


형사계가 꽤 넓은 편이어서 거기 어느 책상 앞의 의자에서, 그렇게 타자기를 두드리다가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소위 기자실이라고 하는 수습기자들이 잠을 자는 용도의 방에서 잠을 잤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음날 새벽부터 내가 소속된 중부라인의 경찰서와 병원을 돌았다. 그리고 취재한 걸 모아서 중부라인을 담당하는 선배기자에게 보고했다. 수습 때의 새벽보고가 이른 시간에 이루어지기에 보통 ‘1진’ 선배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매일 아침, 회사 일로 적잖은 민폐를 가정에 끼친 셈이다.


수습기자는 기자라는 꼬리를 달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 기자가 아니다. 밖에서야 “기자님”이라고 부르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취재도 취재지만 특히 기사를 쓸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수습기자는 유형별 사건기사 작성 예를 복사해서 가방 속에 넣어 다녔다. 예를 들어 불이 나면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르기에 복사본을 참조하며 기사를 작성했다.

사진은 내가 가지고 다닌 사건기사 작성 참고용 자료. 동기 중에 누군가 일괄 복사해서 나눠준 모양이다. “안치용 용(用)”이란 필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얼핏 짐작이 간다. ‘범죄전쟁 무장해제 비난’ 기사는 1991년 4월 7일자로 얼마 전에 경향신문 임원을 지낸, 당시 사회부 사건기자로 있던 김 아무개 기자가 작성한 것이다. ‘여대생 투신자살’은 이른 바 1단 기사로 수습기자가 제일 빨리 익혀야 하는 기사형식이라고 하겠다. 전주 박 아무개 기자라는 바이라인이 달려 있다. 연배가 나보다 많이 위여서 지금 이 분이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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