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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무드 Oct 21. 2022

내 새끼의 성씨

스페인과 한국의 성



여기는 성이 두 개다. 부모가 각각 자신의 첫 번째 성을 물려주기 때문이다. 이름+첫째 성+둘째 성 순으로 쓴다. 이름이 두 개인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어르신들 중에 후안 카를로스, 호세 마리아 등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다.


성이 두 개라고 두 개의 성이 동등한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통념상 첫 번째 성이 진짜 성이다. 법적으로는 두 개의 성을 등록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름+첫 번째 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두 번째 성까지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은 가까운 사이라는 반증이다. 또 두 번째 성은 자기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 첫 번째 성만 물려줄 수 있다. 모두 예상하겠지만, 아빠 성을 첫 번째 성으로 하고 엄마성을 두 번째 성으로 한다. 예전에는 자동으로 아빠성+엄마성의 순서였으나 요즘에는 부부 합의하에 엄마성을 첫번째 성으로 정할 수 있다. 세상이 좋아져서 이제는 엄마성을 평생 주된 성씨로도 쓰고, 부모가 된다면 내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변화가 더 나아져 나중에는 두 개의 성 중에 내 자식에게 마음대로 물려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 맘에드는 걸로 정할 수 있도록.



나는 성이  개라서 그냥 한씨를 주는 것이고 남편은 성이 마르티네스 로페즈여서 마르티네스를 주게 되었다. 남편의  개의  모두 엄청 흔한 성이다.    급이다. 길에서 미스터 마르티네스! 하면  백이십명은 뒤돌아볼 성이다. 흔하다. 우리 없이도  성은 명맥을 이어간다. 솔직히 Gato고양이 Dios 같은 멋진성도 아니지 않느냐. 라는 의견을 내며  성을 첫번째 성으로 놓자고 제안했다.



1번 <아리아 한 마르티네스> 하고, 2번 <아리아 마르티네스 한> 하고 비교하면 2번은 글자수의 비율이 안맞는 느낌이 든다. 남편 성은 너무 길고, 내 성은 너무 짧다. 풀네임이 좀 기우뚱해보인다. 반면에 1번은 내 성이 미들네임같기도 하고, 가운데 들어간 작은 쉼표같이 느껴진다.

-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그냥 내꺼 먼저 하고싶은 마음도 있다. 유치하지만 그냥.. 내꺼짱 나먼저 나먼저 이런 마음. 그리고 이 눈이며 발가락이며 내가 다 만든건데 지가 뭘 한게 있다고…? 라는 생각도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풀네임이 왼쪽으로 기울어보여서, 정말 심미적인 이유였는데(진심) 시간을 거듭할 수록, 임신으로 인한 불편함이 커질수록 나의 개인적 욕구가 더 커졌다. 내 성이 뒤에 붙은 자투리 같았다. 짜증이 났다. 쟤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기 성을 물려줄 수 있는데, 나는 같은 걸 얻기위해서 이렇게 의견을 제시하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지 싶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나의 심미적 요구에 동감했다. 진지하게 고민하며 이런저런 글씨체로 이름을 써보고 의논하다가, 내가 그냥 다꺼져 내꺼가짱이야 모드로 변할 수록 자기도 나도내꺼가짱이야 모드로 변해갔다. 어느 날인가부터 우리 부부는 더이상 무슨 성을 첫번째로 할 것인지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서로 말도 꺼내기 싫게 완고해졌기 때문이다.



이 대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커지던 어느 날인가, 지원사격을 받겠다는 마음에 시엄마에게 가서 말을 꺼냈다. 스페인짱주의자인 시엄마가 내 의견에 동의해준다면 큰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하니 내 성을 첫번째로 두는게 더 좋지 않느냐고. 처음엔 심드렁하게 너네끼리 알아서하라던 시엄마가 어느 순간인가 설득이 되었다. 끝끝내 내가 이 옛날사람인 할머니를 설득해내었다. 사실 시엄마는 여성권리에 무디고 엄마권리에 크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풀네임 두 개 중에 뭐가 더 예쁘냐는 말에는 그렇게 심드렁하던 사람이 왜 아빠성은 먼저고 엄마 성은 나중이냐! 라는 말에 크게 고무되었다. 그래 맞다고 엄마가 더 중하지 왜 검은불알(실제 시엄마가 쓴 표현)이 먼저냐!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대 아빠의 대결구조로 판을 몰고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뭘 잘못해서 나중이냐, 애는 엄마가 만들고 왜 자식은 아빠 후손이 되느냐는 내 말은 할머니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시엄마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체력 약하고 아픈 곳 많은 할머니는 평온하게 지내도록 했어야 했다. 나와 남편의 갈등이 모자지간의 갈등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지 못했다. 그저 뱃속에서 꾸물거리는 이 생명체가 내 것이기만을 바라는, 그래야만 내가 느끼는 이 피로감과 불편한 몸이 보상받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구조적인 문제를 이렇게 개인간의 갈등으로 만드는 실수를 했다. 현명하지 못했다.


남편의 아버지는 본인도 상처가 많고 주변에도 상처를 남기신 분이었다. 시엄마는 자식 넷을 혼자 낳았고, 혼자 키웠다. 평소 이 부분에 한이 많은 나의 시엄마는 많이 격양되었다. 마치 나의 승리가 자신의 승리인 것 처럼, 엄마성을 먼저 두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자신도, 자신의 두 딸도 ‘엄마’임에도 ‘여자’라서 성을 두번째로 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자기 아들을 불러놓고 화를 내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내가 남편과 둘이 의논할때 시엄마의 동의도 있다! 라는 카드로 쓰려던 것인데.. 본인이 전면에 나서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여느때처럼 퇴근하는길에 엄마집에 들른 내 남편은 난데없이 소리치며 화를 내는 엄마를 만났고, 전후사정도 모르고 이유도 모른채 너는 뭘했다고 성을 첫번째로 주느냐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많이 상했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줄 모르고 집에 있다가, 나쁜 얼굴로 들어오는 남편을 보게 됐다. 남편은 나보고 치사하게 둘이 결정하는거를 시엄마에게 이른거냐고 유치하다 하였고, 나는 니가 내말대로안하니까 그렇지 라는 치졸한 답변을 하며 싸움을 키워갔다.



그렇게 우리 셋 다 기분이 나빠졌다. 새로 오는 생명이 한 독립된 사람이라는 것을 잊은채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것 처럼 내꺼내꺼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나였다. 상황상 반박의 여지없이 내 똥이 가장 굵기 때문이다. 고로 내가 더 이 아이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아야 했는데 내 배에 딸린 부속품처럼 생각한 건 아닌가 싶다. 아이가 내가 결정하는 대로 살 것 처럼 생각했다. 이제와서 핑계일 수도 있으나 나는 매 오분마다 기분이 바뀌는 호르몬의 노예였다.



사실 내 성을 앞에 두는 것도, 남편 성을 앞에 두는 것도, 둘 다 걱정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그깟 성씨 신경도 쓰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는 남편성을 첫번째로 두는게 여기서 살아갈 때 더 ‘내부인’일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한국에서 살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럼 맨날 이 긴 성을 적어가며 살라는 건가 했다가, 내 성씨를 앞에 두었다가 애가 평생 외국인으로 오해받으며 스페인어 자격증을 제출하라는 요구나 듣고 살까 싶기도 하다가, 그래도 구더기무서워 장못담그냐 그냥 내꺼먼저 해 했다가 그랬다.



이 주제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보류되었다. 우리 모두 좀 지치고 피곤함을 느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엔 침묵만 감돌았다. 또 출산이 가까워 질수록 여러 물건들을 구비하고 집을 아이에 맞게 준비하는 것에 몰두하다 잊어버리기도 했다. 나의 부모가 도착하고 새로운 생명을 안고 병원을 나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제일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다들 한시간, 두시간을 채 연달아 잘 수 없었고 나는 아래로는 피를 위로는 젖을 흘리고 있었다.



금새 일주일이 지나고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급해졌다. 의료시스템에도 등록해야 하고 한국에 가려면 여권도 만들어야 했다. 나도 한국영사관에 제출할 출생신고서를 얼른 작성해서 내야했다. 결국 우리는 빠르고 간단하게 결정했다. 스페인에서는 아빠 성으로, 한국에서는 엄마 성으로 하기로 했다. 나는 아이의 첫번째 성을 아빠의 것으로 한다는 서류에 사인했고, 남편은 아이의 성을 엄마의 것으로 한다는 서류에 사인했다. 그렇게 내 아이는 한아리아, 아리아마르티네스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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