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이지만 애를 키우다 보니 내 마음대로 하고 말고가 어려운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와 지역, 혹은 가족별로 갖고 있는 문화로 당연스럽게 기념하는 일들이 그렇다. 스페인의 내 시댁의 문화로는 유아세례가 그러하다. 다들 무교에 가깝고 매주 미사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여기의 유아세례식은 우리나라로 치면 100일 잔치, 돌잔치 같은 것이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지만, 새 생명을 기념하는 가족행사.
열하와 같은 성원에 집앞 성당에 찾아가 상담을 받았고 이번 달 16일에 아기세례식을 하기로 했다. 다른 네 명의 아기와 함께 받게 될 것이고, 내게는 그 때까지 아기 입힐 흰 원피스를 찾을 특명이 주어졌다. 다른 사람에게 이 임무를 맡길 수는 없다. 엄청난 레이스가 너풀거리는 드레스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흰 원피스를 찾고자 노력중이다.
대모는 큰시누, 대부는 아주버님이 해주기로 했다. 형이 자기를 대부시켜주면 아이가 30살이 될 때까지 매년 부활절 선물을 준비하겠다는 공약을 걸었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 있는 내 남동생이 대부를 해주면 좋겠다는 시댁의 의견이 있었고 나도 고려했으나, 일단 세례식에 올 수가 없고 둘째로 매년 부활절마다 대녀에게 초콜렛과 야자수잎을 선물하는 이곳 전통을 꼬박꼬박 지켜주기를 기대할 수 없어서 여기서 찾기로 했다. 흥 부활절 그거 뭐 별건가, 하다가도 내 애만 매년 부활절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갔을 때 얘깃거리가 없을까 걱정되는 어미의 마음이다.
큰 시누는 이미 세례식에 쓸 초를 주문제작해왔다. 희고 긴 초에 나의 세례식-아리아 라고 적혀있고 이 초는 평생 간직한다고(!) 한다. 나도 게으른 카톨릭신자고 유아세례도 받았고 한국에서 대모를 한 적도 있지만 우리의 세례식은 여기에 비하면 정말 간소하기 그지없음을 느낀다.
큰 형은 자기가 세례선물로 No me olvides 노 메 올비데스-나를 잊지 마-를 팔찌로 준비한다고 해서 그건 또 뭔가.. 하다가 순간 ‘아! 나를 잊지 말라는 거니까 미아방지 팔찌같은건가보다!’ 하고는 좋다고 좋다고 안그래도 원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금팔찌였다. 여기서 금으로 된 선물을 un no me olvides라고 한다고 한다. 주는 사람이 이거 내가 준 거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주는 선물이라고 그렇게 부른댄다. 참나… 여기사람이랑 연애하고 결혼했어도 금붙이를 받아봤어야 이런 말을 배우지. 실속넘치는 남편덕에 나는 이런 말 뜻도 모르고 아주버님에게 안그래도 금을 원하고 있었다는 대답이나 하고 앉아 있었다.
남편의 직장동료들이 선물해준 백화점 상품권에 우리 돈을 보태서 유모차를 사려고 했는데 그건 두 시누이가 선물해주기로 했다. 시엄마는 세례식 끝나고 식당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점점.. 내 생각과 다르게 일이 커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부담스럽다. 내가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처럼 가진 옷 중 단정한 옷 다려입고 성당갔다가 세례식끝나면 신부님이랑 사진이나 몇 장 찍고 집에 돌아오는 걸 생각했는데 가만히 주변반응을 보니.. 애한테 청바지에 티셔츠입혀서 갈 수도 없거니와 나도 그러고 갈 자리가 아님이 느껴진다. 딱히 누구를 초대한다는 생각도 안했는데 당연스럽게 다들 그 날 오프를 내고 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가한 오후에 나랑 남편이랑 애랑 셋이서 쫄랑쫄랑 성당다녀오는 그림이 박살나고 있다.
그래서 진짜.. 아기 흰원피스를 입혀서 가야될 것 같다. 이런 똥쟁이 아기에게 흰원피스라니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다 생각했는데 진짜 평소에 입는 보디차림으로 갔다간 모두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 같다. 여태 해온 것처럼 ‘나는 외국인이야, 몰라, 너가 알아서 해’ 하기엔 이제 더이상 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내 아이의 일이 되니 저런 심드렁한 외국인포지션에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여태 잘 누려온 이 포지션을 이제는 보내줘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