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일어나면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있다. 탄생과 죽음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내가 엄마가 되는 것, 나와 남편이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서로가 좋든 싫든 설령 이혼을 해도 영영 연락을 끊고는 못 사는 것이다.
국제결혼을 할 때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 본 적 있는데, 장점 중 하나는 ‘끝’이면 진짜 ‘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날이고 됐다고 짐싸서 집에 가면, 우리는 산책하다가 일하다가 놀다가 어떠한 우연으로도 마주치지 않는 거리에 살게 되는 것이다. 주변의 지인들이나 이웃들도 공유하지 않으니 카더라 소문을 들을 일도 없고, 정말 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채 평생 살 수 있다.
서로가 외국인인 우리가 함께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이 장점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 날이 있다. 아이가 살게 되는 장소에 우리 둘 다 묶이는 것이고, 우리의 경우 이미 스페인에 살고있으니 내가 겪을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여기서 기르게 되면 내가 이 남자랑 헤어지게 되더라도 한국에 돌아갈 수가 없구나. 내가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살러 간다고 해도 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잠깐 보게 오후에 들르라고 할 수가 없구나. 이번 주말은 너, 다음 주말은 나, 이딴 건 우리에게 없겠구나.
남편과 이혼을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아이를 갖기 전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해두고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얘기를 꺼냈다. 남편은 무슨 별걱정을 다한다고 그랬는데 니가 진짜 외국살이의 심정을 모르는구나. 싶었다. 간단하게 문답으로 해보자고 했다.
아빠가 되고 싶으냐,
그 아이의 엄마가 나이기를 원하느냐,
아이가 원한다면 한국에서 살 의향이 있느냐,
남편이 어처구니없어하면서 어,어,어, 하길래 그래 그럼 네 부분은 된걸로 하고 나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 했다.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오년차 부부라도 이런 질문에 바로 응, 이 나오는 건 인간대 인간으로서 고마운 일이다.
나도 나의 남편이 내가 원하는 아빠에 근접할 거라는 것에는 의심이 없었지만, 혹시나 언젠가 우리의 연이 다하고 상황이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면, 나는 오로지 애만을 위해서 이 나라에 계속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잘 모르겠었다.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고,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일도 없이 날씨가 좋고 바람이좋아서 그럴 수 있다. 했다.
내게 남은 것은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애를 낳는 것이었다. 삶은 문화다. 문화는 각자에게 당연한 것이고 외국인끼리는 이를 공유하는 폭이 좁다. 우리가 함께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 이 부분이 같은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국제결혼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어릴적 하던 놀이를 공유하고, 지나간 유행가를 들으며 같이 호들갑떨지 못함을 넘어선다. 나는 낮잠이 특별한 일이지만 얘는 낮잠이 당연한 것이고, 나에게는 밥이, 얘에게는 빵이 당연하다. 나는 산후조리원이 당연한 곳에서 왔고 얘는 그게 뭔지도 모른다. 나는 허리가 아프면 침을 맞아야겠다 하지만 얘에게 침술은 미신같은 것이다. 스스로의 혈액형을 알고 있는 나는 이 곳 병원에서 당연한 환자가 아니고, 이 곳의 의료 시스템은 내게 적응해도 적응해도 아직 안 되는 어떤 것이다. 수납 창구가 없는 무상의료시스템은 아직도 생소하고 의사를 만나려고 한 달씩 기다리는 일은 불편하다.
하루는 남편이 어디서 출산하고 싶냐고 물었다. 이미 한국에 가서 아이를 낳을까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 가족도 있고 더 내게 맞는 시스템이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슬슬 불러오는 배를 들고 마스크를 열두시간씩 쓰고 비행기를 탈 생각을 하니 머리아프고 귀찮아 그만 두었다. 그러다 다시 그래도 산후조리원이 그렇게 좋다는데 갈까 싶다가, 간난쟁이를 안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생각을 하니 더욱 막막해서 그냥 있다가 임신 후기에 접어들었다. 비행이 가능한 마지막 주수에 또 다시 갈까, 하다가 오미크론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결정되었다.
외국인으로서 아이를 갖는 것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현지인 아이를 둔 외국인 엄마.. 가 되어간다. 아이는 나보다 아빠와 더 잘 섞이는 외모를 갖고 태어났고, 나는 여기에 평생을 살아도 외국인일 것이다. 아무리 아무리 여기에 익숙해져도 이곳 사람들은 나를 이방인으로 볼 것이고, 내 가정을 꾸리고 살아도 나는 항상 먼 고향을 그리워 할 것이다. 언젠가 아이가 학교에 가면 우리엄마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할 것이고, 내가 하는 한국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할 것이다. 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세대차이뿐 아니라 문화차이를 느껴야 할 것이다. 문득 문득 내 아이가 낯선 순간이 올 것이다.
국내든 국외든, 타향살이는 항상 가슴 한 켠에 쓸쓸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것일테고 나 역시 그렇다. 가끔은 이렇게 멀리 와버린 나를 원망하다가, 가끔은 동떨어짐에 홀가분함도 느끼다가, 그렇게 괜찮은데 안 괜찮고 안 좋은데 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