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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무드 Oct 27. 2022

유아세례와 un no me olvides

짧은 시간이지만 애를 키우다 보니  마음대로 하고 말고가 어려운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와 지역, 혹은 가족별로 갖고 있는 문화로 당연스럽게 기념하는 일들이 그렇다. 스페인의  시댁의 문화로는 유아세례가 그러하다. 다들 무교에 가깝고 매주 미사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여기의 유아세례식은 우리나라로 치면 100 잔치, 돌잔치 같은 것이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지만,  생명을 기념하는 가족행사.  



열하와 같은 성원에 집앞 성당에 찾아가 상담을 받았고 이번 달 16일에 아기세례식을 하기로 했다. 다른 네 명의 아기와 함께 받게 될 것이고, 내게는 그 때까지 아기 입힐 흰 원피스를 찾을 특명이 주어졌다. 다른 사람에게 이 임무를 맡길 수는 없다. 엄청난 레이스가 너풀거리는 드레스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흰 원피스를 찾고자 노력중이다.



대모는 큰시누, 대부는 아주버님이 해주기로 했다. 형이 자기를 대부시켜주면 아이가 30살이 될 때까지 매년 부활절 선물을 준비하겠다는 공약을 걸었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 있는 내 남동생이 대부를 해주면 좋겠다는 시댁의 의견이 있었고 나도 고려했으나, 일단 세례식에 올 수가 없고 둘째로 매년 부활절마다 대녀에게 초콜렛과 야자수잎을 선물하는 이곳 전통을 꼬박꼬박 지켜주기를 기대할 수 없어서 여기서 찾기로 했다. 흥 부활절 그거 뭐 별건가, 하다가도 내 애만 매년 부활절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갔을 때 얘깃거리가 없을까 걱정되는 어미의 마음이다.



큰 시누는 이미 세례식에 쓸 초를 주문제작해왔다. 희고 긴 초에 나의 세례식-아리아 라고 적혀있고 이 초는 평생 간직한다고(!) 한다. 나도 게으른 카톨릭신자고 유아세례도 받았고 한국에서 대모를 한 적도 있지만 우리의 세례식은 여기에 비하면 정말 간소하기 그지없음을 느낀다.



큰 형은 자기가 세례선물로 No me olvides 노 메 올비데스-나를 잊지 마-를 팔찌로 준비한다고 해서 그건 또 뭔가.. 하다가 순간 ‘아! 나를 잊지 말라는 거니까 미아방지 팔찌같은건가보다!’ 하고는 좋다고 좋다고 안그래도 원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금팔찌였다. 여기서 금으로 된 선물을 un no me olvides라고 한다고 한다. 주는 사람이 이거 내가 준 거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주는 선물이라고 그렇게 부른댄다. 참나… 여기사람이랑 연애하고 결혼했어도 금붙이를 받아봤어야 이런 말을 배우지. 실속넘치는 남편덕에 나는 이런 말 뜻도 모르고 아주버님에게 안그래도 금을 원하고 있었다는 대답이나 하고 앉아 있었다.



남편의 직장동료들이 선물해준 백화점 상품권에 우리 돈을 보태서 유모차를 사려고 했는데 그건 두 시누이가 선물해주기로 했다. 시엄마는 세례식 끝나고 식당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점점.. 내 생각과 다르게 일이 커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부담스럽다. 내가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처럼 가진 옷 중 단정한 옷 다려입고 성당갔다가 세례식끝나면 신부님이랑 사진이나 몇 장 찍고 집에 돌아오는 걸 생각했는데 가만히 주변반응을 보니.. 애한테 청바지에 티셔츠입혀서 갈 수도 없거니와 나도 그러고 갈 자리가 아님이 느껴진다. 딱히 누구를 초대한다는 생각도 안했는데 당연스럽게 다들 그 날 오프를 내고 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가한 오후에 나랑 남편이랑 애랑 셋이서 쫄랑쫄랑 성당다녀오는 그림이 박살나고 있다.



그래서 진짜.. 아기 흰원피스를 입혀서 가야될 것 같다. 이런 똥쟁이 아기에게 흰원피스라니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다 생각했는데 진짜 평소에 입는 보디차림으로 갔다간 모두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 같다. 여태 해온 것처럼 ‘나는 외국인이야, 몰라, 너가 알아서 해’ 하기엔 이제 더이상 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내 아이의 일이 되니 저런 심드렁한 외국인포지션에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여태 잘 누려온 이 포지션을 이제는 보내줘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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