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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무드 Oct 27. 2022

한국과 스페인의 육아문화

5개월차 검진

오늘 오전에 소아과 정기검진을 다녀왔다. 아리아의 담당 의사 선생님은 병원의 소아과장님이라 항상 전화받느라 일하느라 바쁘다. 처음엔 과장님이니 경험도 많고 능력도 좋을거라 생각해서 이렇게 배정받은게 행운이라고 생각했는데, 방문때마다 바빠보여서 상담시간이 좀 아쉽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꽤 길게 상담을 들었다. 내가 요즘들어 부쩍 아이가 자는 걸 힘들어 하고 품에만 있으려고 한다고, 자다가도 자꾸 깨서 분리수면을 할 엄두도 안 난다고 했더니 당연한 거라고 해당 월령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길고 긴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울지 않는 아기는 유목민 그룹에서 놓쳐지기 쉬웠고, 또 들짐승이 물고 데리고 가도 울지 않으니 자고 있는 그룹이 알아채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자꾸 품에서 자려고 하고 부모든 누구든 팔에 감겨있으려 하는 본능은 아기로서 당연한 생존 본능인데 그걸 교육한다고 일부러 반응하지않고 기다리게 하면 해당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니 점점 예민한 아이로 크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의사로서 권장하고 싶은 것은 최소 9개월까지는 아이와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애가 울면 즉각적인 반응을 주고, 많이 안아주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라는 말이 너무 스페인스럽지 않은 이야기라 좀 놀랍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유럽과 미국의 육아방식의 문제점이 최근 연구로 밝혀지는 것이 많다며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며 알려줬다.


처음으로 이 선생님이 자리에 앉아서 종이와 펜을 꺼내 적어가며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관심있게 본 연구는 미국과 한국의 아이들을 비교한 것인데, 두 나라 아기들의 울음의 횟수는 거의 같다. 요구하는 양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아기들이 미국 아기들에 비해 1/10도 안 되는 울음의 길이-부모의 즉각적 반응으로 인해서-를 가지고 있고, 추적결과 한국 사회의 사이코패스의 비율이 유럽, 미국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이코패스 짱많은거 같은데.. 했는데 자연발생하는 비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 뉴스에 나오는 살인마를 말하는 것도 아니라고, 사회화된 사이코패스도 말하는 것이라 했다. 교육을 받고 섞여 살 줄 아는 사람들을 포함해 말하는 것이다. 겉보기에 멀쩡히 사는데 사실 공감 능력에 결여가 있는 사람들, 또 위기상황에 대처가 어렵고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약한 사람들을 말한다고 했다.


들으며 생각이 든 것이, 최근 코로나로 인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한국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기민하게 움직이고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가는 사람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싶은 위기 대처력과 적응력. 반면 스페인에서 처음 코로나가 닥쳤을 때 일어난 사재기와 사람들의 불신과 불안감은 내가 봐도 너무 과했다. 마치 지구 종말이 온 것 처럼 무서워하거나 중국과 전쟁을 해야된다며 복수하러 가자는 이상한 선동 비디오가 여기저기 떠돌질 않나.. 그런 동영상을 정말 멀쩡하고 교육 잘 받은 사람들도 믿고 퍼트리는 걸 봤을 때 정말 이상했다. 그 때 여기 사람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금방 미친다 생각하긴 했다. 나는 그게 호들갑떠는 문화때문이라고 나름 짐작했는데 그게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약해서라는 설명이 더 맞는 것 같다.


결국 선생님의 설명은 만2세가 되기까지 아기가 충분한 관심을 받고 안정감을 느끼며 자라야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커지는데, 스페인과 유럽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아기가 울어도 가만히 두고 반응하지 않아야 애가 강하게 큰다고 오해를 해 왔다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울음을 그칠 힘을 기른다고 생각했지만 지나치게 불안하게 만드는 단점도 있었던 것 같다.


한 육아방식이 옳고 그름이 연구되려면 아주 긴 시간의 추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최근에서야 수정되어 가고 있다며, 한국의 부모가 아이를 싸고 키우는 육아문화가 좋은 본보기라고 했다. 자본주의속에서도 이런 문화를 지켜낸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말에.. 그게 다 우리나라 부모들 갈아넣어가면서 지켜낸건데… 싶긴했는데 그냥 입 다물었다.


맞는 말이긴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노동 시간 겁나게 긴 우리 사회에서, 아이에게 애정을 쏟고 어르고 달래가며 키워낸 어머니들은 정말 위대하다. 바쁘게 일하러 간 아빠의 부재도 못 느끼게 자식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정성과, 아이 커가는 모습 볼 기회도 빼앗긴 채 그저 하루 하루 일만 한 아버지의 땀은. 이것들을 강요했던,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고 부모로서만 존재하며 애를 키우게 했던 나의 어린 시절 육아문화를 생각 해 보면, 우리 부모들은 정말 태산같았다. 그들의 삶도 즐거움도 다 갈아넣어 만들어진 것이 고작 나라는 게, 미안하다.



 맘에 드는 설명이  있다. 스페인의 아기에게  칭삼아 비치또(작은 벌레), 데모니오(악마) 라고 부르는 문화도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아기가  알아 들어도 어른이 아기가 귀여우니 으이구  벌레~ 하는  자체가 ‘아기는 (나를 힘들게 하니)나쁘다라는 인식에서 오고,  이런 문화가 아기를 생후2주면 분리수면하고, 아기를 안아주는 것을 금기시 하는 것으로 발현된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사실 자꾸 사람들이  아이한테 “너무예쁘다 으이구 비치또” (진짜많이한다. 우리나라의 “우리 강아지격이다) 이러는  맘에  들었는데 역시나  불호가 의사의 지지를 얻게되어   맘에 들었다.  아기를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면 되도록 안지 않는 문화, 최대한 요람에, 유모차에 눕혀서 가만두는 것이 좋다는 풍습이 너무하게 느껴졌는데 역시나.. 내말이 맞다니 슬쩍 신났다. 윗집에 사는 세살짜리 아이가 새벽마다 한시간도 넘게 우는데 애아빠의 멈추라는 고함소리+문소리 쾅이 들리는 것이, 그걸 이상하게 보는  문화가, 우는 애를 먼저 달랬을 뿐더러 저렇게 소리지르고   하고 나가버리지 않는 문화가 건강한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안심하고 자신감갖게 했다.


열정적인 설명이 다음 예약시간이 되어서 급히 끝나게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이제서야 잃어버린 사랑을 주는 육아문화를 회복하려고 노력중이라 우리 부모세대(여기서 우리 부모세대는 내기준 진짜 애 방치 방목으로 키운 세대)와 충돌이 많다며, 나보고 나의 문화대로,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애를 키우라고, 여기 사람들 특히 노인들 말 듣지 말라는 충고가 아침부터 내 마음에 쿵 하고 들어앉았다. 아기띠만 하고 나가도 아기가 엄마랑 너무 붙어있는 습관들이면 나쁘다고 해서 ..그래서 여기는 등굽은 노인이 없는건가, 이게 맞는건가 싶었다. 내가 너무 애를 안아서 키우는건가 자기반성하고 있었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내엄마가 나를 키운 방식이 맞고 나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을 하면 된다는 의사의 조언이 내게 큰 안정감을 준다. 육아를 대함에 있어 나는 모르는 것이고 배워야 하는, 지도도 없는 구만리 길 앞에 선 기분이었는데 그냥 감이 오는 대로 걸어볼까? 하는 용기가 생긴다. 내가 보기에 좋아보이는 길로 맘에 드는대로 가면 되는데 여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스스로 막막하게 만들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들은 말이 정말 내게 필요했던 말이었나보다. 들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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