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 안 당하는 법
스페인 내에서도 지역마다 소매치기의 빈도는 많이 다르다. 당연히 대도시일수록, 관광지일수록 소매치기가 극성이고 작은 마을일수록, 동네일수록, 큰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칠년을 살면서 내가 배운 것은 소매치기를 구별해내고 내 작고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법이다.
가장 먼저 소매치기를 구별해 내는 법을 익혔다. 또 길을 걸으며 주변 인물들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행색으로도, 행동으로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꺼진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척 하는 인간, 아까 다른 길에서 나랑 마주쳤는데 이 길에서 또 마주치는 인간, 내 주변을 맴도는 인간, 말은 없는데 다른 누군가를 자꾸 쳐다보는 인간(일행과 눈빛을 교환중인 인간), 소리가 많이 나는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크게 씹는 인간, 길에서 혼잣말을 중얼대며 미친 척 하는 인간(시선끌기), 일본인이 아닌데 dslr카메라를 목에 걸고 독일인이 아닌데 지도를 펼쳐 보는 인간(관광객이 아닌데 관광하는 척 하는 인간), 내게 와서 어떤 식으로든 몸이 닿는 행동을 하는 인간(백프로다. 손등을 스친다거나, 인파를 가장해 뒤에서 슬쩍 민다든가, 가방을 툭 친다거나… 그들은 범행 전 내가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꼭 한 번 체크한다. 첫 작은 부딪침에 내가 큰 반응이 없으면 다음은 내 가방에 손을 넣는다)
적어 놓고 보면 정말 피곤한 일이지만 익숙해 지고 나면 ‘부자연스러운 인간’으로 퉁쳐진다. 나는 이렇게 소매치기를 세 번 잡아봤고 거의 당할 뻔 한 적이 두 번, 케찹세례 침세례 각 한 번, 지인이 당하는 걸 십수번봤다.
그래서 여러 습관이 몸에 뱄다. 완전히 닫히는 크로스백을 매는 것. 백팩은 앞으로 매는 것. 토트백 쇼퍼백 숄더백 꿈도 꾸지 않는 것. 까페에서 가방을 맨 채로 커피를 마시는 것. 식당에서 가방을 풀러 둔다고 해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화장실에 갈 때는 일행에게 ‘내 가방 여기 있다’ 고 주의를 부탁하고 가는 것. 대중교통에서 많은 빈자리 두고 괜히 내 옆에 와서 앉는 것 같으면 얼굴을 한 번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내가 너를 의식하고 있다). 주머니에 귀중품을 넣지 않는 것. 누가 길을 물으면 가방에 손을 올리고 답변하는 것. 핸드폰 보며 걷지 않는 것. 모든 장소를 떠날 때 지갑과 핸드폰의 존재를 체크하는 것.
여러 습관이 있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접촉에 예민해지는 것’이다. 내 몸에 어떻게든 뭐가 닿으면 바로 홱 돌아봐야 한다. 그게 지나가는 개일수도 있고 소매치기의 손일수도 있다. 접촉이 발생한 부위를 바로 체크하고 대상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 이게 가장 첫 번째로 가져야할 생존스킬이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한 달여를 지내보니 한국인이 유럽여행 중 소매치기의 주 표적이 되는 이유를 알겠다. 이제 찐 이유를 알겠다. 여태까지 인종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접촉에 둔하다. 더 정확히는 접촉을 무시하며 살아야만 하는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누가 나에게 와서 어깨 등 자꾸 몸을 부대끼면 이건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왜 우리 팔뚝이 닿는것이냐고 뭐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번잡한 거리에서 누가 말없이 나와 내 친구 사이를 슥 하고 가로질러 지나가며 우리 몸을 전체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도, 그건 길을 막은 내 잘못일 수도 있다며 사는 것이다. 그러니 소매치기의 접촉을 무시하기 쉽고, 호주머니나 가방이 흔들거려도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진짜, 진짜 많이 닿는다. 심지어 일부러 닿는 경우도 많다. 좁은 길이나 마트 매대등에서 나를 밀고 지나가는 사람을 여럿 봤다. 누군가는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 자신이 잠시 지나간다고 정중히? 비키라고 표현한다. 줄 사이를 뚫고 지나가야 할 때 ‘지나가겠습니다, 잠시만요’ 등의 말을 하면 비켜줄텐데 그걸 말 없이 온 사람의 온 몸을 비벼가며 사이사이 요리조리 쏙쏙 다니는 것이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전에는 이게 당연한 것이었고 나도 그렇게 살았는데, 내가 접촉에 예민해지니 이것들 하나 하나가 순간적으로 날 긴장하게 하는 자극이 되었다. 깜짝깜짝 놀란다. 홱 쳐다보게 된다. 사람이 많은 시간에 마트나 시장등에 가면 그날은 너무 피곤해진다. 아무리 머리로는 별거 아니란 것을 알지만 단련된 이 몸이 제멋대로 움츠러든다. 그 짧은 찰나에 이미 내 손은 가방으로 가 있다.
전에는 긴장도를 높이느라 피곤했다. 아주 무뎌진 상태인+무뎌지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환경에서 갓 도착했을 때는 사람이 좀 편하게 길을 걸어야지, 이거 뭐 살 수가 없다고 불평했다.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가 원래 상태가 되고 나니 이제 내게 와서 아무도 안부딪히는게 최고다. 마트한 번 가면 십수번씩 놀라고 지하철탄 날은 온 몸이 찌뿌둥하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가방을 몸 앞으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