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무드 Sep 21. 2022

바르셀로나에서 애 낳기

출산 기록 4

 태어난 네가  품으로 오고, 산파 선생님이 잘했다고, 수고했다면서 나를 일으켜 네게 젖을 물렸다. 어떻게 이런 본능을 타고나는 건지 네가 힘차게 젖을 물었는데 얼얼했다. 비현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진짜 네가 나왔네, 싶고 네게 안녕 반가워 인사를 했는데 너는 빨기에 바빠 보였다. 얼굴과  군데군데 아직 남은 태지와 핏기가 남아서 닦아주고 싶었다. 동물들이 새끼를 낳으면  그렇게 핥아대는지 이해가 되었다.


너를 안는 것이 어색하고 무서웠다. 너무 작아서 내 겨드랑이 사이로 쏙 빠질 것만 같았다. 네 탯줄도 내가 자르라고 가위를 건네주는데 손이 너무 떨려서 아빠가 자르게 했을 정도로 몸에 힘이 없었다. 내가 약해져 있다는 자각이 널 안은 팔을 긴장하게 했다.



다들 이 상황이 익숙한 것 같았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나랑 너랑 네 아빠만 울고 있었다.  그들은 일을 하고 우리는 삶을 시작하고, 그들은 해오던 것을 하고 우리는 처음 마주했다.



낭만적인 순간도 잠시, 아랫도리에서 무언가 더 나와야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태반을 꺼내야 했다. 흐음 하자 태반이 몬세랏 선생님 손에 끌려 나왔다. 큰 핏덩어리가 나왔다. 크림슨레이크에 세루리안블루를 섞으면 저런 썩은 색이 되는데.. 생각했다. 핏덩어리라고 하기에도 어색할 만큼 이상한 색의 미끌거리고 흐드렁거리는 덩어리가 선생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깔린 비닐에 부딪히고,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빠르게 주워 폐기물용 플라스틱 통에 던져 담는데, 그 플라스틱 통에 부딪히며 텅-터어엉 하는 소리가 났다.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열 달 동안 너를 먹여 살린 내 집이 쓰임을 다하고 철거되는 과정이었다. 저기에 내가 쏟아부은 방울토마토와 오렌지주스가 얼만큼인지, 이 두 가지가 어찌나 그렇게나 당기던지, 네게 다 전해 주고 이제 쓰레기통으로 가는 태반을 내 시선이 좇았다. 그 시선이 끝나는 통 앞에 흥건한 피도 눈에 들어왔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피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 순간 몸이 굳었다.



생명이 시작되는 장면과 생명이 끝나가는 장면이 눈에 겹쳐 들어오는 것이 충격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움직이는 너와, 한스러울 만큼 허무하게 버려지는 태반이 그리고 그 사이에 저 많은 피가, 이 작은 분만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한 듯 혼재해 있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너무 이상하고 괴상해서 다른 우주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몬세랏 선생님이  자궁을 정말 샅샅이 뒤지며 남은 찌꺼기들을 -찌꺼기라 말해서 미안하다- 긁어냈다. 뭐가 얼마큼이나 나오는지는 아직도 부풀어 있는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가 들렸다.   투둑 하고 뭐가 바닥에 떨어져 닿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절개된 회음부를 한 땀 한 땀 꼬매기 시작했다. 나만 정신이 나가 있었는지, 갑자기 너무 따가웠다. 무통주사가 끝이 났다.    맞고 마저 꿰매었다. 더 이상 아랫도리와  방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쳐다보다간 .. 기절할  같았다. 그냥 너만 바라봤다. 남편이 너를 안은 모습이 예뻤다. 너희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흡족스러웠다.



네가 얼마나 조그만지.. 허풍  떨면 남편의 손바닥만 해 보였다. 그런데도 어찌나 크고 귀가 먹먹해지게 우는지, 웃음이 났다.


너를 데려가더니 귀를 뚫어서 왔다. 스페인에는 여아들에게 태어나자마자 귀를 뚫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예전 한국에 남아가 태어나자마자 포경수술을 시키던 것이 여기서는 여아의 귀걸이라니, 여기나 저기나 갓 태어난 아기는 아픔을 모른다고 착각해왔구나. 신생아에게 귀걸이를 뭐하러 거나 싶지만, 네가 자라면서 귀를 뚫지 않은 유일한 아이가 되려나, 혹시 너만 ‘우리’에 소속되지 못하는 느낌을 가질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네 귀는 엘레나 산파 선생님이 뚫어주셨다.


모든 처치가 끝나고 너를 다시 내 가슴에 올리더니, 이제 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로 너를 가슴에 올려두고, 양 팔로 잘 감싸 안고, 네 머리 뒤로 천장의 불빛이 하나 둘 셋 지나가고, 엘리베이터 불빛에 눈을 잠시 감고, 다시 복도 천장의 불빛이 하나 둘 지나가니 우리의 입원실에 도착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내 웃고 있었다. 내내 좋은 말을 해주며 축하를 듬뿍 보내줬다. 고마웠다.



입원실에 도착하고, 나는  침대로 옮겨지고 너는  침대에 눕혀졌다. 그리고 우리의  침대는 붙여졌다. 너무 피곤했다. 너무너무 피곤한데 하루 종일 굶은 배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없을  같이 배가 고팠다. 이미  11시에 가까운 시간이라 병원의 석식은 끝난 지 한참 전이었다. 간호진에게 물어보자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을 먹어도 좋다고 했다. 남편이  먹고 싶냐고 묻길래 빅맥이라고 했다. 치즈버거 추가에 감튀는 큰 걸로 두 개, 밀크셰이크도 잊지 말라고 했다. 잠시  남편이 정문 앞에 나가 받아왔다. 침대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분만한 지 두어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침대에서 소파로 혼자 걸어갈  있었다. 별로 어지럽지도 고 앉아 있는 것도 괜찮았다.  많은 양의 음식을 빨아들이듯 먹고 나니 몸도  힘이 도는  같았다. 소변을 보고, 간단히 샤워를 했다. 비누칠은 하지 않고 샤워기 물을 맞으며 가만히  있었다. 온몸에 땀과 눈물과 피가 뒤섞여서 끈적이고 동물적인 냄새가 났다. 운동하고 나는 땀냄새와는 다른, 상처 나서 나는 피 냄새와는 다른, 처음 맡는 냄새였다. 깨끗한 물을 맞으며 가만가만 씻어내고 나니 개운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욕실을 나와서 너를 다시 보는데, 순간 정말로 깜짝 놀랐다. ‘내가 애를 낳았네!’ 샤워하는 동안 깜빡 잊었다.



간호사  분이 들어오더니  상태를 체크했다. 혈압도 재고, 혈중 산소도 보고, 가슴 상태도 보고, 음부 상태도 보고,  상태도 보고, 이것저것 묻고 열심히 기록하더니 수유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너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가슴은 어떻게 물리고 얼마나 자주 주어야 하는지. 네가 울지 않고 잠만 자더라도 3시간이 넘으면 깨워서라도 수유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자주 할수록  나오고 빨리 안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살과 살이 맞붙도록 옷을 벗고 안아주면 네가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했다.



아기는 언제 데리고 가냐고 물었다. 나보고 어디로 데리고 가냐고 묻길래, 아기는 신생아실 가서 자는  아니냐고 그랬다. 표정이 이상해져서  더니 신생아실은 아픈 아기들만 가는 거라고 했다. 내가 그럼 나는 언제 쉬냐고 했더니 쉬는 건 이제 잊어버리라고 했다. 내가 간호사 선생님을 어이없어하며 쳐다보니 “ 이제 엄마야. 엄마는 아기랑 떨어질  없어”라고 말하는데 숨이  막혔다. “ 졸린데 어떡해?” 하니까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서 다시 젖 물려. 그리고  하길래 그러면 되는 거구나… 그래했다.


그렇게 우리 셋이 같이 자게 되었다. 정확히는 너는 삼십 분, 한 시간씩 자고, 우리는 십분, 이십 분 졸면서 다음날 동이 트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전 03화 바르셀로나에서 애낳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