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기록2
너를 감싸고 있던 양수가 끊임없이 계속해서 나왔다. 나의 당황스러움도 잦아들고 진통은 정말 심각해져갔다. 더 이상 게임 따위로 이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서 심호흡을 하며 진통을 보내야 했다. 엘레나가 옆에서 후-들이마시고 하-내쉬고 하며 도와주었다. 잘 하고 있다고, 지금 이 정도면 벌써 소리지르고 난리가 나야 되는데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았다. 우쭐할 새도 없었다. 대답할 새도 없이 다음 진통이 찾아왔다. 한 시리즈의 진통을 보내고 나면 잠깐의 휴식기가 오는데, 이 휴식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유도분만을 하게 될 줄 모르고 혹시 집에서 진통이 오면 쓰려고 미리 깔아둔 앱으로 진통주기를 기록했다. 전혀 쓸데 없는 짓이었지만 그냥.. 정신을 분산시킬 겸+이걸 집에서 겪었다면 내가 과연 제시간에 병원에 잘 도착할 수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가만히 있기가 괴로웠다. 주기를 기록하다보니 어플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십시오, 병원에 갈 시간입니다. ㅋㅋ이미 병원이다.. 이미 병원이야..
너는 잘 있을까? 궁금했다.
갑자기 주변에 있던 물이 빠져나가는게 무섭진 않을까? 집이 자꾸만 좁아졌다 돌아왔다를 반복하고, 너를 내보내려고 아래로 아래로 밀어내는 것이, 머리춤에 너를 지지해주고 있던 것이 점점 얇고 짧아져 가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너는 알고 있을까.
이제 엄마와 이별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엄마는 너를 만난다고 이리와라 이리와라 하는데, 사실은 우리가 이제 분리되어 각기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이 집을 떠난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네가 느낄 그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될 거라는 것이 직감적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지만 너는 그저 닥쳐오는 일을 해쳐나가는 것이리라. 배고픔 한 번 느껴보지 못한 네가 숨을 참고 또 참아야 스스로 숨을 쉴 수 있게 된단다. 배를 어루만졌다. 딱히 태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기계로만 네 심장이 잘 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도 긴장한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잘 해보자, 하고 심호흡을 했다. 내가 숨을 잘 쉬어야 네게 충분히 산소를 전달 해 줄 수 있다. 네가 충분한 산소를 머금어야 이 길을 숨없이 나올 수 있다.
엘레나가 와서 내진을 했다. 진통보다 내진이 더 아팠다.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고통이…? 하고 아래를
보니 엘레나의 손이 쑥 빠져나왔다. 장갑을 벗으며 이제 사센티쯤 열렸다고, 진짜 출산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엘레나가 나와 남편의 주위를 환기시켰다.
자, 지금부터 잘 들어. 자궁문이 충분히 열렸고 이제 출산이 시작되었어. 우리는 지금부터 천천히 분만실로 갈 거야. 가기 전에 분만실 준비물을 챙겨. 준비해온 가방을 다시 확인해. 십분 뒤에 돌아올게.
분만실 가방을 열어 다시 확인했다. 배냇 저고리, 속싸개, 모자, 기저귀, 핸드폰, 보조 배터리, 물.
엘레나와 함께 엘레베이터를 타고 분만실로 내려갔다. 엘레나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계속해서 잘 할거다, 다 잘 될거다, 여기까지도 이미 너무 잘했다고 말해줬다.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도 산파로 일한 시간이 더 긴 사람이 내게 잘 하고 있다고 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이 사람이 다 잘 될거라고 하니까 정말 그럴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래층에 도착하고 입구에서 남편과 헤어졌다. 나는 분만실로 바로 들어가고 남편은 소독실로 갔다.
분만실은 정말 정말 추웠다. 내가 무슨 헝겊데기같은걸 한장 걸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절대적으로도 공기가 참 차가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했다. 기분이 괜찮았다. 잘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따듯한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었다. 내 몸을 끌어안고 비벼주며 자기 소개도 해주고, 아기 잘 낳아보자고 얘기해줬다.
다시 배에 태동검사기를 연결하고 내진을 받았다. 순조롭게 열려가고 있고, 아기 위치도 좋았다. 이제 마취과 선생님과 내 담당 의사를 부를 거라고 했다. 아 정말 시작되는구나 했다. 그 와중에도 진통은 계속되었다. 숨을 계속해서 들이마시고 내쉬는데,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데 입으로 숨을 계속 내쉬니 혀끝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남편이 수술복같은 것을 입고 등장했다. 소독된 가방도 옆에 와 있었다. 아기 옷을 미리 꺼내어 간호사에게 전달하고 남편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분만실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분만의자에 누워있었다. 갈색 인조가죽 시트가 매끌거렸다. 내가 땀을 흘리는 건지, 양수가 새는건지, 알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취과 선생님이 오셨다. 무통주사를 놓을 거니까 돌아앉으라고 했다. 내 척추를 따라 가만 가만 손이 움직였다. 더 둥글게 등을 말라고 하자 간호사선생님이 내 앞쪽에서 내 팔을 붙잡고 당겨주었다. 진통이 오는 커다란 배를 구부리기가 어려웠다. 바늘이 꼽히는데 아팠다. 바늘을 고정시키기 위해 밴드를 붙이는 것 같았다. 아주 얇은 튜브가 내 어깨를 넘어 왔고 곧이어 차가운 것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오래 전 MRI를 찍을 때 맞았던 주사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아주 즉각적으로 진통이 사라졌다. 마법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