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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Apr 02. 2018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
<8월의 크리스마스>1

1) 사랑이란 일상에 스며드는 것

1998년에 개봉했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2013년 가을 즈음 재개봉 했을 때 아련한 그 느낌만 들고 영화관으로 갔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번도 움직이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단 하나의 동작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로는 볼에 눈물이 그대로 흐르고 있었고 손은 그대로 모아져 있었다.  몹시 바쁜 날들 중 하루였는데 영화가 끝나는 순간 목에서 쉬던 숨을 가슴으로 돌려준 것처럼 천천히 고요한 숨을 쉬고 있었다.
영화는 느리게 흘러가면서 마음을 따스하게 채워갔고 비어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것은 ‘공간’으로 가득 채워진 것 같았다.
분명 20대에 봤던 [8월의 크리스마스]도 좋았었는데 지금 보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많이 달랐다. 영화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겠지. 나는 너무도 변해있어서 영화의 호흡과 공간과 사이와 여백까지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좋은 영화는 보고 또 봐도 새로운 울림을 주고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해준다.
“와, 이런 영화였어?”
영화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마 나에게는 아주 많은 삶의 이력들이 마음에 고스란히 매달려있을 것이고 이전의 눈과 지금의 눈은 같은 눈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이 ‘속도’이다. 영화는 느리게 흘러가면서 모든 것을 말하고 비어 있으면서 가득 차 있다. 관객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면서 그 공간으로 들어오게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들어간 나는 그 곳의 일원이 된다. 누구 한 사람에게 감정동요가 일어나는 형태가 아니라, 주인공 정원이기도 하고, 다림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고, 첫사랑 지원이 되기도 하고 영정사진을 곱게 찍고 싶어하는 할머니가 된다. 그냥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주면서도 나를 나로서도 존재하게 한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연출되는 장소는 정원의 사진관이고 정원의 집이다. 짐을 옮겨주기 위해 함께 탔던 오토바이나 우산을 같이 쓰며 걸었던 거리나 아마 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근처이거나 여기서 보면 거기가 보일 정도의 거리일 것이다. 
정원에 일상의 공간인 사진관과 집에서 그의 시간의 흐름을 주욱 나열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정원도 알아채고 있고 관객들도 알아채고 있는 사랑이 스며든다.
 
“오빠는 여기가 지긋지긋하지도 않아?”
“더운 거 이제 지긋지긋해.”
그 지긋지긋한 마을이,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정원에게는 가장 떠나기 아쉬운 곳,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계절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언제일지 모르지만 곧 오게 될 자신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그 시간에 사랑이 스며드는 것이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에 주저함이 들지만 단호하게 거부하기도 그렇다고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어려운 그 지점에서 그저 그 사랑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동네에서 마을 주차 요원인 다림은 주정차위반 사진을 인화해주는 정원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언제부터라고 정확하게 짚어지지 않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더운 날 인화 기계에서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을 내민 시점이었을까, 사수자리가 자신과 잘 맞는다고 말한 시점이었을까, 쇼파에서 쉴 때 선풍기를 돌려준 때부터였을까.
설렘을 강조하거나 짠 서로에게 반하는 순간이 있거나 온갖 로맨틱한 말로 고백을 하거나의 장면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이 기울어간다.
둘은 주로 사진관에서 만나고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다음을 약속한다. 그렇게 연애의 필수 코스인 놀이동산에 다녀오며 걸었던 그 길이 둘의 마지막이다. 
놀이동산을 다녀와서 운동장을 달리고 동네 목욕탕에서 씻고 나온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정원이 들려준 방구 뀌는 귀신의 이야기. 다림은 자기 전에 누워서 옆에서 잠이 든 친한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정원을 생각한다. 다림의 일상에도 정원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은 짠 하고 등장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까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구나를 확인하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들여놓지도 않았고 키우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자란 사랑들을 확인하면서 사랑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한석규가 맡은 역할인 정원은 정확하게 어떤 병에 걸렸는지 모르지만 시한부인 것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래서 그 사랑을 느끼면서도 애써 인정하거나 진도를 나가거나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하는 것들이 거의 없다. 그것은 시한부가 아닌 어린 다림의 몫이고 다림은 정원에 일상에 찾아와 정원에게 관심을 직간접으로 표현해가면서 정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사랑을 키워나간다. 정원의 사정을 모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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