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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Jun 09. 2018

삶과 관계의 지속성을 위한 "우아한 우울".

삶이 성장하고 사람 관계가 지속적이기 위해서는 서로의 변화의 타이밍이 비슷해야 하는데

서로 가지고 있는 현재의 키워드나 삶의 차원이 다르면 거의 만나서 과거 회상과 추억을 되씹으며 관계의 애정을 확인하게 된다. 이또한 아주 매력적인 관계이며 삶을 촉촉하게 하는 중요한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의 장면을 되새기는 것에 현재의 삶에서 추구하고 있는 이야기들, 생각들, 깨달음들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나누고 싶은 열망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대의 차원에서 그 일에서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발견했다. 그리고 누가? 바로 내가!! 이런 관계의 지속 그리고 나의 삶의 성장의 지속성을 위해서 '우아한 우울'로의 변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변모라는 말을 썼기 때문에 우아한 우울 이전의 모습을 말해야 하는데 이것은 '습성적인 우울' 정도라고 표현해야겠다.

(적절한 단어를 못 찾았기보다는 가장 구체적인 단어인 것 같아서)

'습성적인 우울', '반복적인 우울' 이것을 심리적인 단어를 쓰자면, '패턴적인 우울'이 되겠다.


아무튼 이 '습성적인 우울'은 삶이나 관계에서 힘을 빼는데 아주 탁월함을 발휘한다.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하면서 특히 나의 경우, 이것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 역시 이러한 부분을 안고 살아가지만 줄지 않는 양의 '습성적인 우울' 혹은 지난번과 지지난번에도 온 정성을 들여 공감했던 '반복적인 우울'을 만날 때의 허무함이 있다. 자신이 어떤 '습성적인 우울'을 가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혹은 다른 모양의 성장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우아한 우울'로의 변모를 꾀할 필요가 있다.

습성적인 우울의 예는, 어릴 적부터 혹은 어느 순간부터 매겨진 내 삶과 나를 바라보는 이미지가 투영되어 '또' 빠져드는 우울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이지?' '언제쯤 잘살 수 있을까?' '내가 왜 항상 피해를 봐야하지?' 등이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우아한 우울의 예는, 습성적인 것에서 진화해서 혹은 관점을 달리한 성찰이나 묵상이 동반이 된 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즉시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그 생각을 떨쳐버리지 않아도 되는 우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정당한가?', '잘산다는 것은 무엇이지?', '내가 스스로 피해자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밑마음은 무엇인가?', '시선을 의식하는 부분은 어디인가?', '나의 자존을 나는 지키고 있는가?' 등으로 적어보겠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서로의 성장과 철학을 공유하고, 마음이 차오르는 대화를 나누고, 기꺼이 서로의 발전을 응원하는 관계 즉, 지속적이고 진정한 관계를 위해서 '우아한 우울'이 필요하다. '습성적인 우울'에서 오는 공허와 허무를 다른 차원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삶의 성장을 위해서도 '습성적인 우울'이 갖는 반복적이면서도 용기를 낼 수 없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의 용기를 '우아한 우울'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늘 기대하고 설렌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진정 서로를 채워주는 지속성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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