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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은정 Aug 03. 2018

작가로만 산다면.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해서 나는 당연히 작가가 될 줄 알았다. 직업을 가져야한다면 국어 선생님이 되어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었다.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나의 이 과정은 일반적인 과정같이 흘러가지 않았고 매번 도전이 되는 환경에 놓여지게 되면서 국어 선생님은 물론 어엿한 사회인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할거라도 생각했었다. 아르바이트만 43개. 그야말로 아르바이트의 여왕이라고 친구들이 불렀고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의 소원은 지하가 아닌 빨래가 잘 마르는 2층 월세에 사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막연하게 소설을 쓰거나 시를 써서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공모전 소식을 신문에서 스크랩해서 벽에 붙여놓기도 했지만 하루에 2~3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글에 몰두하기란 쉽지 않았었다. 놀고도 싶었고 ㅎ 그러던 중 대학을 장기간 휴학 해놓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에니어그램'을 만나면서 인생은 순식간에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을 진정으로 살아내고 싶은 디자이어를 만나게 해주니까 말이다.
그렇게 1년을 에니어그램 수행(나는 공부가 아니라 수행이었다.)하면서 나와 타인을 그리고 미래와 세상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고 이전의 나는 더이상 없었다. 그렇게 에니어그램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조강사로 따라다니면서 메인 강사님 시작 전 30분 강의 안내와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거나 에니어그램 검사지를 작성하게 하는 것 등을 맡아서 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 거다.
그때 갔었던 회사가 국내 밥솥 회사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던 회사였는데(지금은 판도가 바뀌었지만) 3개월 정도를 지속적으로 하다보니 반응도 좋고 내 유머에 다들 즐거워해주시고 보는 사람들이 천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때가 26살이었고 나는 그렇게 강사가 되었다. 에니어그램 강의-CS강의-사내교육담당자-기업강의-조직문화강의-청소년분야 등을 거치면서 늘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다짐도 했었고 자책도 많이 했었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책 아이디어는 많은데 그 시작이 자꾸 미뤄지는 자신에게 실망도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감히 상상치 못한 삶으로 안정과 풍요의 생활 속에서 한가지 아쉬웠던 것이 바로 책이었다. 거의 모든 것을 마음 먹으면 하는 애가 유독 책 앞에서는 주저하는 것 같아서 '난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첫 책이 나온 것이다. [부모의 인문학 질문법]. 블로그에 지속적으로 써놓은 글들과 카카오스토리 채널에서 운영했던 글들 그리고 강의 때 했던 내용들을 모아서 첫 책이 나오고 돌아보니 나에게는 원고가 많이 쌓여 있는 것이다. 강의하느라 모아두고 적어두었던 것들과 교사원격연수 교재 만들면서 그리고 여러 교육청들과 작업했던 수많은 매뉴얼과 자료들. 그렇게 연달아 영화 인문학 책 [영화가 나에게 하는 질문들] 그리고 이제 학교 문화 책을 마감하고 있고(꼭 마감하리라) 청소년에 대한 책과 패미니즘 책 그리고 영화 인문학 책 두번째 이야기와 그림책까지 매일 매일 책만 써도 될만큼 책 쓸 일이 넘쳐나고 있다.
아직도 강사와 대표라는 호칭보다 어색하게 다가오지만 나는 '작가'가 되어 있다.

일정이 너무 바쁘니까 얼마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책만 쓰면 좋겠다.. 아예 책만 쓰는 작가로 전향할까?.. 작가로만 살까?.. 그런데 이것에 대한 물음은 책을 쓰면서 답을 찾을 수 있다. No!! 책만 쓰면 그 나름의 좋은 점이 있겠지만 현장의 생생한 경험과 마주한 이야기들을 지금처럼 써내려가지 못할 테니까. 지금처럼 강의와 캠프로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이야기가 책으로 이어지는 것이 나에게도 책에게도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작가가 먼저 되지 않고 강의를 하는 작가가 되었는가 보다. 그때에는 아득한 일이 모두 다가오고 나니까 이제 그 정확한 순서와 선명한 경험에 감탄을 아니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쓰일 것인지 안달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가장 알맞은 쓰임으로 명료한 나의 자리에 내가 서 있게 된다. 단, 내가 계속 '하기만' 한다면. 나는 이 삶을 온전히 맞이하여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꿈이 알아서 나를 찾아오고 세상과 알아서 연결된다. 하기만 하면 말이다.


by 원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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