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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짱상 Apr 14. 2021

퇴사 후 #3. 다음 생에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

그 이름도 아름다운 여배우

오늘은 퇴사 후 1년 동안 했던 여러 시도 중에 가장 심장 두근거렸던 일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몇 달이나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떠올리면 내가 이런 것 까지 도전했던 거야 하면서 스스로 놀라는 일인데요 바로 영화배우 오디션에 참가한 것입니다.


오디션 신청 며칠 전쯤이었을 거예요, 동네 친구와 저녁 산책을 하면서 서로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태어나면 나는 배우가 한번 되어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지금부터 하면 되지 왜 꼭 다시 태어나서 하려고 하냐고 하더라고요. 듣고 보니 참 맞는 말이다 싶어 그날 밤 저녁 식탁에서 저는 남편과 아이에게 엄마는 죽기 전에 텔레비전에 엑스트라라도 꼭 한 번은 출연할 거야 라고 선언을 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배우를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 인터넷 서핑을 좀 해보다가 뾰족한 방법도 모르겠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가슴에 묻으려고 하던 찰나에 제가 자주 들락거리는 인터넷 맘카페의 한 게시글이 제 눈에 쏘옥 들어왔습니다. 한일 합작 독립영화를 찍는데 엄마 역할 오디션 지원을 받는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동안 퇴사 후 자잘한 도전들로 길러온 작은 용기의 근육의 힘으로 거기에 얼마 전에 가족들에게 한 선언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면서 제 손가락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오디션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싶다고 글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결국 오디션 대본을 받고, 디데이가 다가오면서 저의 심장은 쪼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의욕이 앞서도 너무 앞선 도전이었던 것이지요. 연기 경험이라고는 20년 전 신입사원 연수받을 때 했던 조별 연극 발표 이후로는 전무했기에 몇 줄 되지도 않은 대사는 도통 외워지지 않고, 아 이거 괜히 지원했다 하는 후회와 부담감이 목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짧은 대사가 그렇게 외워도 외워도 버벅거리게 되고, 도무지 표정 연기라는 건 어느 나라 말인가?


이런 제 속도 모르고 열 살 난 아들은 엄마의 오디션 지원이라는 것이 꽤나 흥미로운 일인지 샛별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상대 역할도 해주며 잠시나마 온 집안이 오디션 대사로 매쏘드 연기 열풍으로 가득했습니다. 





늘 그렇듯 약속된 시간은 다가와 40여 년 생애 첫 배우 오디션 당일이 되었습니다.

쪼글 해진 제 심장이 이번엔 너무 떨려서 몸 밖으로 터져나갈 것 같았어요. 언텍트 시대에 발맞추어 오디션도 영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디션의 자리라는 곳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가운 기운의 현장이더군요. 독립영화라지만 역시 프로의 세계였던 것이었습니다.


미리 받은 대본과 함께 3가지 연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요, 첫 번째는 화가 나서 딸과 통화하는 연기, 두 번째는 딸을 꼬여낸 친구 엄마한테 화내는 연기, 세 번째는 시 낭독이었습니다. 첫 번째 씬은 연습도 제일 많이 하고, 생활에서 늘 있는 상황이라 그래도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일본 감독님이 "하이 스타또(START)!" 한 순간 얼어버려서 대사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NG, 다시 한번 기회를 얻어 겨우 연기를 마쳤습니다. 마의 두 번째 씬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 유. 연. 기 를 해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주문을 받았어요. 좀 어설프게 낼 수 있는 화는 다 내보고 연기를 얼추 끝냈는데, 감독님이 캇또(CUT) 할 때까지 연기해야 했었더라구요. 아... 나 정말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요.


마지막 시 낭독까지 마치고 끝나는 분위기였는데요, 감독님께서 갑자기 아까 자유연기할 때보다 더 화를 내면서 드라마 스카이 캐슬 엄마들처럼 다시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뭔가 기회를 더 주시는 것 같아 최선을 다해 화를 내 보았습니다. 거기에 영상 통화 오디션이긴 했지만 카메라 테스트처럼 묶고 있던 머리 좀 풀어봐라, 안경을 쓰는지, 평소에 헤어 스타일은 어떻게 하고 다니고, 어디서 살고 일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인터뷰까지 받으니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김칫국도 살짝 한 모금 마시려고 하는 순간에 우는 연기를 해보았냐고 물으시더라구요. 그냥 안 해봤다고 하면 되는데 순진무구하게 저는 또 연기를 처음 해본 다고 이실직고를 하고, 안 그래도 요즘 울고 싶은 일 많은데 이 때다 싶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빈 방에서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한참 울다 보니 오디션은 끝나 있었습니다.


세상 진지하게 임했던 오디션에서의 긴장감과 깊은 몰입감은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생생하네요. 오디션의 설렘으로 잠 못 이루며 미래 저의 강연에 오실 분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을 상상하면서 실패도 기대되는 밤을 보냈답니다.


"만약 제가 오디션에서 합격했더라면,
 칸에 가 있어서, 여러분을 못 만났을 텐데 실패해서 다행입니다.
정말 실패는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 맞네요.
 

결국 몇 주후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영화는 접히게 되어 제 인생의 하나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되어버렸지만,


작은 용기만 있다면 인생은 정말 어떻게 풀릴 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이 오디션 도전을 계기로 유튜버라는 또 다른 세상에 첫 발을 딛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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