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탐궁에게 별거 아닌 것에 꽂히듯, 탐궁 또한 그러했으니...다 내가 당돌해서 그렇다.
저번 편에서 얘기했듯 대화가 잘 이어지던 카페. 거의 4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연애관이나 진로 등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대화 소재가 금방 떨어졌다;; 난 어색하면 드립을 막 날린다. 친구들이 '망측'은 날 위한 말이라 할 정도다. 이날도 짓궂게 묻는답시고 일본 애니에서 소개팅 농담으로 스쳐본 적 있는 "S예요? M이에요?" 발언을 했다. 본 의미로 생각하면 큰일 날 소리고 그 자리에서 매장당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소심(S)해요? 마초(M) 예요?" 정도 수준의 의미였다;;(망측..) 연애 전투력 측정이랄까... 이 사람이 날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나 하는 테스트랄까?... 그래, 실은 긴장해서 괜히 뻘짓한거다. 하지만 나름 순화해서 내가 민망하지 않게 대답 잘해주던 탐궁이었다. ㅜㅜ 멋쟁이!
--사족으로 지금은 덕력이 많이 죽었지만 난 덕후다. 이래서 닝겐이 연애를 덕질로 배우면 안 돼....
- 그 후 탐궁曰,
"네가 S냐, M이냐. 운운하고 장난칠 때? 처음에는 당황했지, 근데 금방 니 표정을 봤어. 말로는 "나 다 알아요." 여유 있는 척하는데, 눈동자는 흔들리고 입술은 떨리고... 얘 말만 이렇지 순수하구나 싶었어. 내내 그랬다 너."
이날 탐궁에게 조신하다란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 역시 내숭은 쉽지 않았다. 위와 같은 망한 드립의 향연, 소위 말해 태도만 조심할 뿐 할 건 다했다. 대화 소재가 떨어지니 덕력을 불태우며 각종 애니나 만화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어느 순간 탐궁의 눈빛이 느껴졌다. 처음 나를 봤을 때랑 확실히 달랐다. 뭔가 몸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웠다. 마주 볼 수가 없어 눈을 피하다가 이 뜨뜻함이 답답해서 물었다. 그냥 생각이 말로 나갔다.
"저 혹시 제가 마음에 들었어요?"
"................................................ 아아 예상 못했어... 너 진짜 훅 들어온다.;;"
탐궁은 갑작스러운 내 발언에 당황했지만 곧바로 확실히 내게 말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얘기하면서 확신이 들었다고, 나랑 만나면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지만 난 소개팅 초짜, 보통 세 번은 만나보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아무리 분위기가 좋았어도 처음 보자마자 고백이라니... 내가 뭘 했다고? 덕력을 불태웠을 뿐...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다! 탐궁이 맥주 한잔 하고 헤어지자 했지만, 과제가 있다 둘러대고 후딱 집으로 왔다. 어느 정도 데려다준다는 것도 거절하고 신데렐라처럼 여운을 주며 샤샤샤~
그날 밤, 처음으로 탐궁은 내게 전화를 했다. 이상하지, 목소리 만으로 그가 나를 귀여워하고 있음이 느껴져 두근거림을 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학교, 밍밍 언니(누군지 모르면 사람은 #1 참조)에게 후기를 들려주니 진심 흐뭇해했다.
"첫날 고백?!! 야 누구는 번번이 나가도 실패하는 게 완전 첫 소개팅인데 홈런이네!!!"
탐궁, 너.......... 내가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훗.
- 그 후 탐궁曰,
"네가 하는 얘기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흥분해서 떠드는 널 보니 밝고 사랑받고 자란 게 느껴지더라. 계속 '왜요?'하면서 쳐다보는 게 첨엔 버릇없어 보였는데 니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니 귀여웠어.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얘 잡아야겠다.' 싶었어, 일단은 나랑 비슷한 게 많은 것 같다. 어떤 거라고는 정확히 말하기 힘들지만 나랑 맞는 게 많아서, 적어도 같이 만날 때 서로 그런 안 맞는 지점이 적어 싸우지는 않겠네. 그래서 나는 그날 보자마자 너한테 만나자고 한 거지."
그냥 별거 아닌 점들을, 이쁘게 봐준 탐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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