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때 풋내기 시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우리에게 선유도는 연애의 핫플레이스였다. 당시 동네를 벗어나는 느낌이 들면서도 가까운 곳이었고 중고등학생일 당시 그곳은 아무 개발도 안되고 나무랑 풀이 무성하기만 한 곳이었다. 지금도 대나무 숲이 밤에 연인들의 핫플이지만... 그때는 매점도 없었고 진짜 조명이 있어도 깜깜했다.
나 또한 분위기를 내고 팠으나 말했듯 짝사랑의 불발로 끝났고 그냥 친구들끼리 가서 다리에 성공하자, 미래의 남친아 어딨냐 낙서하고 오는 찌질한 시절이 다였다. 그러나! 이젠 탐궁이 있다. 그를 데리고 저녁때 선유도에 갔었다. 내가 아는 루트로 가지 않아서 처음엔 길도 헤맸지만... 탐궁이 뚝딱뚝딱 길을 찾아나가니 길치인 내게는 멋있어 보였다. 오오오...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데이트란게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좋고 어딘가 재밌고 특별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지만 역시 날 좋을 때 손잡고 걷는게 최고 같다.
당시 탐궁은 취업준비로 한창 힘들 때라 자주는 보지 못했다. 드문드문 다섯 번 정도(?) 얼굴을 보고 알아가니 난 슬슬 탐궁이 좋아짐을 그때 느꼈다. 밤 야경의 마법도 있는 것일까? 탐궁은 연애초에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잘해주고 사랑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낯부끄럽게 했지만 그날은 더욱더 칭찬을 해줬다. 점점 더 좋아지고 헤어지기 싫었다. 아니 이젠 처음과 달리 정말로 그에게 빠진 것 같다. 마음이 커질수록 더 사랑스러워지고 싶은 평소 안하던 짓도 하게 된다.
때문에 그날 선유도에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알아낸 '곰돌이 한 마리' 애교를 시전 했었다. 흐흐.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쳤네. 탐궁은 리플레이까지 못 견디고 쪽쪽 공세에 못 이겨 금세 날 덮쳐 뽀뽀세례를 퍼부었지만... 이젠 선유도에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에라이) 어쩜 연인들이 다 자석처럼 어둡고 외진데서 만나더냐. 참 웃기다 ㅋㅋㅋㅋㅋㅋㅋㅋ(물론 우리도 할 말 없다.) - 탐궁에게 해본 애교 중엔 귀요미송도 있었다. 방구석에서 셀카로 찍어 보냈었다;; 떼쓰기 전에 이쁜 짓 한번 더하기로 했었지..
난 기억이 생생한 게 탐궁은 이때 날, 분명 내게
"난 개찰구 앞에서 사람들 다 보는데 애정행각 하는 애들 부러우면서도 별로인 것 같아..."라고 했는데
이날 헤어질 때 개찰구 앞에서 뙇!!!했다. 나중에 내가 탐궁의 언행불일치에 대하여 나무라니, 탐궁 왈,
"원래 사랑하면 욕하던 짓도 하고 싶은 거야." (내로남불...)
이후 어디에서나 만나고, 헤어질 때 안아주고 뽀뽀하는 것은 우리의 오랜 습관이다. 그래, 탐궁. 앞으로 언제까지나 해줘. 어느 날 안 해서 "뭐야 식었어?"이런 생각 안 하게.
지금은 자취 중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던 당시 탐궁은 통금 있는 남자였다;; 우린 인천(탐궁)~서울(나) 한 시간 반 남짓의 중장거리 연애. 이때 늦게까지 나와 야경을 감상하며 낭만에 젖은 한편, 나를 데려다주고 집에 갈 생각에 초조해 했을 그를 생각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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