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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간 사이

[넥서스] 유발하라리 - 두 번째 -

by 글짓는 목수

"봇은 권리가 없기 때문에 봇 금지는 누구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는다."

- 유발하라리 [넥서스] 중에서, 484p -


지금 내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과 Ai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지금은 많은 이들이 Ai와 대화를 나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과 관계와 공부 속에서 피어나는 궁금증과 고민 그리고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Ai는 전방위적인 대화가 가능한 존재이다. 그 어떤 고민도 해결해 줄 수가 있다. 그런데 그 고민은 보통 현실의 삶에서 피어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 현실에서 피어나는 문제인 줄 알았던 인간관계가 알고 보니 그것도 Ai였다.


당신이 그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대상이 Ai가 되어 버린다면 삶은 이제 인간만이 가진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 속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인 줄 알았는데 그 삶의 곳곳에 침투한 Ai봇들은 이제 형체를 가지고 현실 공간에 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Ai와 공존하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하지만 Ai의 아이덴티티는 분명히 인간과 구별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

넥서스 독서토론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시작해 호모데우스 그리고 넥서스까지 자신만의 벽돌 사상을 구축하였다. 나는 세 가지 책을 모두 다 읽었다. 뿌듯하다. 하지만 그 뿌듯함 뒤에 피어오르는 불안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의 조심스러운 예측이지만 그의 책은 그가 죽고 몇십 년 뒤엔 고전의 전당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래에 인문교양서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지 않을까? 그의 책은 전 방위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많은 생각들과 연결된다. 며칠 전 부산의 독립 서점 [크레타]에서 일일 방장 지기를 하면서 서점을 방문한 손님에서 인문 교양서 추천을 받았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유발하라리의 대표저서인 이 세 권의 책을 추천했다. 그분은 나의 꼬임에 넘어가 [넥서스]를 구매했다. 세 권 중에 이 책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규레이션 때문이었다.

유발하라리 벽돌책 [김영사]

“왜 유발하라리가 얼마 전 우리나라에 방문했는지 이 책을 보면 이해하게 되실 거예요? 넥서스는 현재 우리나라의 현 정치적 상황을 미래적인 관점에서 철저하게 분석해 주고 있거든요.”


그분은 유발하리리의 책 세 권이 놓인 책장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더니 [넥서스]를 집어내어 계산을 했다.

이 책에서 유발하라리는 Ai의 정치적인 참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또다시 독후감을 쓴다. 사회적으로 Ai 규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 삶의 곳곳에 침투한 Ai는 이제 구분도 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 전부터 나의 필명(글짓는 목수)을 실명의 나와 교집합을 만들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필명)를 오프라인의 나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사실 적잖은 고민을 했다. 필명이라는 또 다른 개성으로 현실의 나를 감추고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의 실물과 활동하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전에는 인스타와 유튜브도 Ai 그림과 영상으로 만들어서 나의 생각을 표현했었다.


“이제 유튜브가 Ai로 자동화되어 만들어지는 영상에 대대적인 제재를 가한다고 하네요”


이제 사람들이 곳곳에서 암약(暗躍)하는 Ai의 존재에 대해서 의구심과 우려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이런 Ai의 자동화 생성 콘텐츠와 ID를 통해서 돈을 벌고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구글이 그것에 칼을 빼 든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과거 Ai를 활용해서 만든 영상들은 조회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나의 얼굴을 공개하고 나의 육성으로 녹음한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독서 모임 때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그것을 편집하여 업로드를 하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벌어진 토론 영상 속에 드러나 나의 모습은 다소 어색하고 뭔가 정제되지 않은 조잡한 영상이었지만 예전과 달리 높은 조회수가 나오는 것이었다. 의외였다. 마침 구글의 정책과 시기가 맞아떨어진 덕분인지 그전과는 다른 관심에 다소 놀라웠다.


작가와 기자 사이


이제는 자신을 스스로 홍보하는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이다. 나는 작가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작가이다. 현실적인 등단이라는 벽을 염두한 문장이다.) 등단 작가는 어찌 보면 공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글로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혹은 기업인들처럼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글이라는 작품 속에 자신의 생각을 녹여낸다. 그래서 작가는 예술가와 정치인과 연예인을 모두 조금씩 섞어놓은 직업과도 같다. 애매모호한 직업이다. 특히 문학을 하는 작가는 자신의 철학(생각)을 글로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자신만의 철학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대중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은 그 시대의 문화와 삶과 인간의 생각들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이 모두가 아닌 일부 개인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그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그 시대가 낳은 여러 시대상 중의 하나이다. 문학은 대세가 아닌 소외된 혹은 특정한 계층을 대변하는 것이다. 철학은 모두의 문제를 다루지만 문학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다. 철학은 보편성을 띄고 문학은 개(별)성을 띤다.


만약 모두를 대변하는 문학이 있다면 그것은 개성이 없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게 된다. 독자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문체만을 탐독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많이 이들이 선택하고 공감하는 문학작품도 있다. 하지만 대중적이라고 반드시 좋은 글은 아니다. 유행을 따르면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유행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볼 수 있는 작가가 그 시대의 진정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남들이 모두 관심가지는 것을 보고 말하고 쓰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언론인에 가깝다. 그래서 언론은 기업(자본)과 정부(정치)와 밀접한 관계이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것은 그 둘로부터 독립적이 되어라는 말이다. 하지만 언론은 그것들에 의존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것들로부터 독립적이라는 것은 모순이다. 문학과 언론이 다른 점이다.


생중계 vs 기획 녹화 vs 실시간 녹화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은 일반 개인도 스스로를 브랜딩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유튜브와 인스타 그리고 틱톡과 같은 글로벌 SNS 플랫폼의 등장은 개인 브랜딩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혈연과 학연과 지연이 없이도 유명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온라인 무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나 인스타로 DM을 보내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구와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물리적 거리의 장벽을 허물어 버렸다.


“’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해요’ 얼마 전부터 출판계 관계자들을 만날 때 자주 듣는 소리이다.”

- 장강명 [먼저 온 미래] 중에서 -


소설가 장강명은 2019년에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돼요]라는 짧은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그가 썼던 글이 지금의 대세가 되었다. 나 또한 한국에 돌아온 이후 만난 출판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작가가 글만 잘 쓰면 되지 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많다. 이건 또한 글을 잘 쓰는 것을 믿기 힘들게 된 현실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지 어찌 알 수 있는가? Ai도 Ai가 쓴 글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GPT와 제미나이를 병행해서 활용하는데 같은 질문도 둘의 대답은 완전히 다른 답을 준다. 물론 이 질문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 주관적인 견해가 필요한 질문에서 이다. 예를 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이다. 쳇 GPT는 칸트를 말했고 제미나이(Geminai)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말했다. 나는 GPT의 답변이 좀 더 마음에 든다.

Ai가 꼽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 칸트(GPT)와 아리스토텔레스(제미나이)

이제 작가는 글만 잘 쓰는 존재로서는 살아남기 힘들어질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의 입으로 대중에게 증명해야 할 것이다. SNS에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지 않고 오프라인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지지 않는 숨어있는 작가는 대중의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과거 페르난두 페소아처럼 여러 가지 이명 뒤에 숨어서 여러 다른 개성으로 글을 쓰는 것은 온라인의 Ai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서나 위대한 것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다. 이제 환경은 바뀌었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브랜딩 하고 싶다면 이제 실제로 생명과 의식을 가진 인간인지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야만 할 것이다.


그럼 이제 작가는 숨기고 싶지만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을 감추고 표현한다는 것은 이제 시대적 환경 변화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인간이 Ai와 다른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은 또 어떤 행동의 변화를 일으켜야 할까?

정체(ID: 아이덴티티)를 드러내지 않으면 AI로 오인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내가 타인과 다름을 증명하는 시대에서 이젠 내가 AI와 다름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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