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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발과 개발 사이

[오늘 난, 커피를 마시러 간다] 박민예

by 글짓는 목수

“다양한 지역을 탐방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는 옛이야기를 간직하며 계발과 개발 사이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 박민예 [오늘 난, 커피를 마시러 간다] 중에서 -


누군가는 개발을 소망하는 글을 쓰다가 자기 계발을 꿈꾸기도 한다. 한 무명작가의 카페 탐방기의 시작은 낙후되어 가는 지역을 새롭게 재조명하고 알리려는 시도였다. 지역 개발 및 활성화를 위한 시민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출판 프로젝트가 탐방 에세이가 되었다. 작가의 지역 개발의 바람을 담은 탐방일지를 쓰는 시간은 또한 자신이 계발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간은 세상을 개발하려는 과정 속에서 자기 계발을 이루기도 한다.

[오늘 난, 커피를 마시러 간다] 박민예 in 부산 북앤콘텐츠페어

도서전시회에서 만난 무명작가의 책이었다. 도서전은 많은 무명작가들이 자신을 알리는 곳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많은 무명작가와 독립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직접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무려 10권의 책을 샀다. 작은 독립작가들 부스에 서서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책을 읽고 보고 싶은 생각이 샘솟았다. 북큐레이션의 효과이다. 작가가 직접 하니 1:1 북토크와 다름없다.


사람은 책을 통해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관계를 통해 책을 알게 되기도 한다. 책은 관계를 연결해 주는 아주 좋은 매개체이다. 그렇게 우리는 책 속에 또 다른 새로운 사람과 세상을 알아간다. 삶 속에 머무는 자와 글 속에 머무는 자는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방인으로 시선으로 부산을 바라본다. 그중에서 부산의 영도를 소개하고 있다.


영도, 부산의 오랜 역사가 담긴 섬이다. 나의 유년 시절 영도 뒤 주변은 부산에서 가장 번화하고 번잡한 곳(구도심: 동구, 중구)이었다. 수많은 상선들이 입항하고 그 상선들이 싣고 온 수많은 외래 문물이 처음으로 뭍으로 쏟아져 나오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이 가장 먼저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곳이었다.

영도 (Young island)

주말이면 그곳은 새로 유입된 일제 가전제품과 각종 외래 잡화를 사기 위해 부산 시민들 뿐 만 아니라 타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나는 학기 초가 되면 항상 친구들과 보수동 서점을 찾아서 참고서를 사고 남포동에서 영화를 보고 국제 시장에서 새 학기 맞이 새 옷을 사 입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도 앞바다에는 외항선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영도 뒤 뭍에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제 [노인과 바다]라는 문학적인 수식어가 부산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지금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영도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소설의 내용은 지금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으리라.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인구감소, 노년의 죽음이 탄생의 울음보다 많아짐은 고밀도 도시의 모습을 상실해 감을 의미한다. 이제 도시는 다른 형태로의 활기를 찾아가야 한다. 작가의 글은 영도에 새로운 테마와 스토리를 입히려는 시도이다.

무 명 일 기 in Young island

작가는 영도의 카페를 탐방하면서 글을 쓴다. 커피 향 가득한 운치 있는 카페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듯하다. 카페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카페가 지니고 있는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다. 그렇게 공간과 시간이 뒤섞인다. 공간이 시간을 불러내고 시간은 공간을 채워간다. 우리가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그런 다른 시간으로의 이동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는 이야기의 역사이다. 스토리를 품고 있는 장소는 사람들이 계속 찾게 된다. 잘 만들어진 소설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는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그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장소는 항상 명소가 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주하는 도시가 아닌 유동하는 도시로의 변모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곳에 사람들의 발길을 옮길 수 있는 스토리를 담으려 했다.

헤르만 헤세 (1877~1962)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의 기쁨을 방해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다.”

-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중에서 -


분주함은 많은 것을 놓쳐버렸다. 역동의 산업 발전 시기가 지나고 이제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이 균형을 찾는 방법 중에 하나는 휴식이다.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가는 자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잠시 멈춰 여유와 휴식 속에서 그것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항상 머물고 있는 익숙함이 아닌 낯선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을 필요로 한다. 카페는 도시에서 그런 공간을 대신하는 곳이다. 커피 향과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그 기분을 증폭시킨다.


과거 한국은 숨 가쁘게 발전해 왔다. 이젠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분주함 속에서 놓쳤던 것들을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쪽으로 치우쳤던 밸런스의 균형을 찾으려 한다. 일터와 삶터가 전부였던 시절에서 이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공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고 매주 해외로 타지로 여행을 떠날 수도 없다. 일상에서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아마 그 공간이 카페가 아닐까?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나라가 한국이다. 세계 커피 소비량 2위 국가이다. 곳곳에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프랜차이즈나 무인카페는 고유한 스토리가 없다. 스토리가 없는 곳은 바쁜 현대인들이 빠르고 손쉽게 카페인을 수혈하는 공간이다. 마치 도시 곳곳에 위치한 주유소처럼 에너지를 공급하는 공간이다. 그건 육체적인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이다.


인간은 정신적인 에너지도 필요하다. 각자의 스토리와 커뮤니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진 공간이 필요하다. 카페는 그런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곳이 되지 않을까? 지역 사람들의 정신적 휴식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의 스토리는 SNS와 온라인을 통해 알려지며 외부인의 발길을 계속 끌어당기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과거의 경제 개발처럼 새롭게 건물을 세우고 도로를 놓는 개발이 아닌 기존의 공간을 새롭게 레노베이션하는 개발이다. 이건 각자의 스토리가 오프라인의 공간에 재현되는 개발과정과도 같다. 인간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친화적인 개발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공간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계발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작가가 영도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글을 쓰며 새로운 자기 계발을 시작한 것처럼...


오늘 나 또한, 커피를 마시러 간다. 나의 새로운 계발을 기대하며….


[오늘 난, 커피를 마시러 간다] 박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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