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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사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by 글짓는 목수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을 사랑인 줄 믿고 인내할 수 있을까"

-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17p -


사랑하는데 바라볼 수 없다. 사랑하면 보고 싶다. 그런데 볼 수 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그 이유를 말할 수도 없다. 지난한 인내와 침묵의 시간을 견뎌야만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인내하고 침묵한 시간만큼 사랑은 간절해진다. 진심은 표현되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랑이 있다. 표현되지 못한 사랑은 세월 속에 익어가고 때가 되어야만 결실을 맺는다. 시간을 견디지 않고 얻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왜 사랑하는데 날 보지 않는 거예요?"


에우리디케는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오르페우스를 원망하듯 말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의심했다. 에우리디케의 의심은 오르페우스의 침묵으로 더욱더 깊어졌다. 오르페우스는 불안했다.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진심을 알리기 위해선 빨리 저승을 벗어나야 했다. 그녀는 점점 더 빨리 자신에게서 멀어져 달아나는 오르페우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서로를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은 의심과 불안을 키워가며 사랑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


"날 사랑하지 않는 거죠?"


에우리디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오르페우스를 따라서 다시 이승으로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에우리디케의 말을 들으며 오르페우스의 불안은 더욱더 깊어졌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이승까지 가야만 했다. 그녀도 오르페우스의 침묵에 침묵해 버렸다. 저승의 통치자 하데스와의 약속을 이승의 문턱에서 어겨버렸다. 에우리디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극도의 불안에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아직 저승의 문턱을 벗어나진 못한 에우리디케...


"안돼!"


그렇게 오르페우스는 눈앞에 에우리디케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순간 이승과 저승 사이의 문이 닫혀버렸다. 그렇게 이별했다. 사랑이 믿음을 지키지 못해 다시 죽음이 되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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