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46 (개정판)
“终于去春游了!”(드디어 봄소풍이닷!)
"哇!好开心啊"(와~ 신난다!)
"谁还没到?"(누가 아직 안 온 거야?)
"孙梅还没到"(쑨메이가 아직 안 왔어요)
오늘은 노동절(五一劳动节) 연휴의 첫날이다.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쑨메이의 야유회 제안에 성사된 소주(苏州)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다. 잇따른 직원들 퇴사로 사무실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던 터라 공개 석상에서 나온 직원의 제안을 장총경리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회사 차량 이용과 당일 여행 경비를 회사에서 지원하는 조건으로 직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단 총경리와 부총경리 그리고 류과장은 불참이다. 총경리는 주말까지 이어지는 연휴를 사모님과 홍콩, 마카오 여행 계획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회사를 정리하로 온 건지 부부 황혼 여행을 온 건지 구분이 안된다. 부총경리와 류과장은 별다른 이유 없는 불참을 선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희망이 없는 회사에 굳이 시간과 애정을 쏟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对不起~我来晚了"(늦어서 죄송합니다.)
뒤늦게 회사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는 쑨메이(리셉션 담당)는 얼룩말 무늬의 가슴 골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타이트한 원피스에 선글라스를 얹은 창이 넓은 원형 모자 그리고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날렵한 하이힐까지 신고 있다. 누가 보면 패션모델 화보 촬영이라도 하러 가는 행색이다.
쑨메이는 양주 토막이다. 부유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자신이 공부와는 인연이 없다는 걸 일찍 깨달은 그녀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돈을 벌어 상해로 가서 연예인이 될 거라는 자신 만의 꿈을 안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은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평소 옷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다. 그럼 오늘 우리는 그녀의 촬영 스탭인가? 다들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人都齐了吧?出发吧"(다 모였으니 출발합시다.)
왕기사가 운전을 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다들 들뜬 표정이 역역하다. 여직원들이 가져온 간식을 먹으며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 수다의 타깃은 나로 옮겨왔다. 주제는 한국 드라마, 한류 얘기다. 나도 잘 모르는 연예인들의 이름들을 둘러대며 나에게 쉴 새 없는 질문 공세다. 특히 쑨메이는 내 뒤에 앉아 쉴 새 없이 뭔가를 물어본다. 가져온 과자를 나에게 끊임없이 건네주며 그때마다 뭔가를 하나씩 물어본다.
"部长~您喜欢什么样的女孩儿?"(부장님은 어떤 여자 좋아해요?)
"恩...都喜欢"(음... 다 좋아해)
"哈哈哈 别开玩笑嘛"(하하하 농담 마시고요)
"这很难说的呀"(설명하기 힘든데…)
"其实我跟男朋友分手了不久 呜呜"(저 얼마 전에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흑흑)
"真的?怎么会..."(정말? 어쩌다...)
"可没关系啦。部长您有在嘛 哈哈"(괜찮아요 전 부장님이 있으니까 호호)
"这..."(그게…)
다들 쑨메이의 부장 독대 (獨對) 타임에 대한 불만 어린 시선들이 느껴진다. 일개 사원들에게 부장이라하면 쉽게 다가가서 대화라고 할 상대가 아니지만 비슷한 또래의 젊은 부장은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런 여직원들을 컨트롤하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구 하나도 편애해서는 안 된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의 길만이 살길이다. 여자들의 질투에 휘말리면 좋을 것이 없다. 자나깨나 여자 조심, 특히 직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참을 떠들던 차 안이 1시간쯤 흐르고 취침모드로 변했다. 양주에서 소주까지 차로 약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나도 그녀들의 수다를 경청하는 척하느라 피곤했는지 졸음이 밀려온다.
"部长~ 您睡一会儿吧"(부장님~ 좀 주무세요)
“没事没事,王师傅,开车很辛苦吧,如果我也有中国驾驶证的话,我能够帮你开车,真可惜" (괜찮아요 왕스푸님 운전하기 힘드시죠, 중국 면허증만 있으면 저도 같이 운전하면 되는데 안타깝네요)
“不用了, 这我该做的事情嘛”(괜찮아요, 이건 당연히 제가 해야할 일인데요)
왕스푸는 양주에서 좀 떨어진 작은 시골마을에서 벼농사를 짓다가 가족과 함께 양주로 상경해 운전기사를 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고 한다. 30대 중반인데 벌써 애가 내년에 중학생이 된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40대 중반으로 봐도 모를 정도다. 이제 서른의 문턱을 밟은 나에게 왜 아직 결혼을 안 하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그는 매일 장총경리의 발이 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가 회사에서 총경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는 정말 좋은 총경리를 모시게 되어 자신은 운이 좋은 기사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총경리의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총경리가 뭐가 그리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말없이 웃음 지으며 왕기사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매번 그에게 우렁차게 "씨에씨에" 외쳐대는 한 결 같은 모습이 그에게는 이전에 모셨던 다른 거만한 중국 사장이나 승객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와 닿지 않았을까? 말없이 전달되는 마음이 더 오래 남는 법이다. 말 많은 사람치고 속 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건 대화가 아니다. 짧은 시간 말로 사람을 홀릴 수는 있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말의 위력은 점차 줄어든다. 뱉은 말만큼 그 사람에 대한 실망도 커져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기꾼이 말이 많은 것이다.
지금 나도 이곳에서 말로 그들을 홀리고 달래어 그들의 퇴사를 종용해야 한다.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이들을 홀리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가야 하는 숙명이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에게 불리하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 구석이 항상 찜찜한 기분이다.
"嘿~到了 起床啊"(자~ 도착했어요. 다들 일어나세요)
한 명씩 하품과 기지개를 켜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창밖에 펼쳐진 아기자기한 호수들과 고풍스러운 호화 저택들이 눈을 눈 안에 넣고는 얼굴에 화색이 돈다. 소주는 동방의 베니스라는 별칭답게 곳곳에 호수와 작은 수로(水路)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可真漂亮啊”(정말 예쁘네요)
”江南园林甲天下,苏州园林甲江南“ (강남의 정원은 천하의 으뜸이요, 소주의 정원은 강남의 으뜸이라)
"什么意思?“(무슨 말이예요?)
왕스푸는 정원의 경치를 보며 감탄하는 나에게 한마디 던진다. 그의 말대로 여태껏 보지 못한 그런 화려한 정원이다.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도 등재될 정도로 유명한 졸정원(拙政園)이다. 소주에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수많은 호화저택과 정원들이 있다. 그런 저택과 정원만 구경해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이다.
따스한 봄날 꽃이 만발한 고급 저택의 정원에서 네 송이 아니 4명의 꽃들에 둘러싸여 황홀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여기선 현실이 된다.
"哇 真漂亮"(와~ 이쁘다.)
"部长~我们快进去拍照吧"(부장님~ 빨리 들어가서 사진 찍어요)
그녀들은 차에서 내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오랜 운전으로 지쳐 보이는 왕기사는 담배 한 대를 나에게 권한다. 과거 나의 다리를 풀리게 했던 그 담배와 유사해 보인다. 빨아드린 담배연기가 기도를 타고 넘어가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알아챈다. 폐 속으로 들어가면 또 다리가 풀릴지도 모른다. 입에만 잠시 머금고 뱉어낸다. 갑자기 쑨메이가 나의 팔을 낚아채며 끌고 간다. 왕기사는 한 손엔 담배를 물고 끌려가는 나를 보며 웃음 짓는다.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도 여성 직원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중국은 업무에 있어서는 남녀 구분이 한국과 일본에 비해 덜하다. 그만큼 여자들이 일을 해내고 결혼 후에도 출산은 어쩔 수 없지만 육아로 인한 폐업은 잘 없다. 육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몫이다. 그것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 정착된 듯하다. 공산주의 노동혁명노선에 남녀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 대낮에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누비고, 손자 손녀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노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쨌든 한국에 있을 땐 음양의 조화가 깨진 삭막하고 칙칙한 남직원들 틈바구니에서 매일 야근과 과중한 업무에 짓눌려 월급의 노예로 살았다. 주말에도 칙칙한 동성 친구들과 섞여 신세한탄만 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 여가활동이라 여겼다. 여기선 야근과 주말 근무는 커녕 주중에도 조기퇴근에 여직원들의 환대 속에서 무슨 의자왕이라도 된듯한 기분이다. 어린 나이에 부장이라는 타이틀과 한류 열풍이라는 시국의 덕 또한 적지 않게 보고 있다. 물론 삼천궁녀 아니 여직원들을 다 잘라내야 하는 안타까운 임무를 띠고 있긴 하지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
[현대 여성과 전통가옥] 화보 촬영이라도 하는 걸까? 쑨메이는 고풍스러운 저택을 배경으로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다른 여직원들을 귀찮게 한다. 그녀의 화보 촬영에 남자 모델이 필요했는지 나를 끌어들인다. 앞에 서서 사진을 찍어주기 바쁜 차오찡과 그 옆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장주임 그리고 혼자 주변의 다른 풍경을 담고 있는 재무담당 샤오웬의 모습이 사뭇 화보 촬영 현장의 카메라 기사와 감독 그리고 섭외 스텝 같아 보인다. 나는 여자 모델인 쑨메이의 요구에 따라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원치 않은 화보 촬영의 희생양이 되어간다.
"部长~我们吃什么呢?"(부장님 우리 뭐 먹어요?)
"苏州有什么好吃的?"(소주에 뭐가 맛있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4인조 걸 그룹은 화보 촬영에 조금씩 지쳐가는 모양이다. 총경리의 법인 카드는 내 손안에 있다.
소주가 고향인 샤오웬이 오늘의 식당 섭외를 맡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소주에서 자랐다고 한다. 소주는 그녀의 손바닥 안처럼 친근한 곳이지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녀가 초등학교 시절 길가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던 부모는 갑자기 들이 덮친 덤프트럭에 치여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때 그녀는 하굣길 건널목 맞은편에 서서 엄마와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이후 그녀는 양주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때 충격 때문인지 그녀는 항상 작은 목소리와 움츠린 듯한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쓰러운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녀는 성인이 되어 조부모의 품을 떠나 양주로 넘어왔다고 한다. 소주의 곳곳에 서려있는 돌아가신 부모와의 추억이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기억을 더듬어 추억의 맛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산해진미들로 식탁이 채워지고 촬영으로 늦어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지친 얼굴에 생기가 돌며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무엇 하나 맛있지 않은 것이 없다. 샤오웬의 탁월한 식당 섭외에 다들 만족한 기색이다. 포만감이 밀려온다. 노곤한 졸음도 같이 밀려온다.
오월의 첫날, 따스한 햇살 아래 걸 그룹과 어울려 좋은 경치와 음식을 즐기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따스한 봄날의 피크닉이 끝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