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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22. 2019

난 사람인가? 아바타인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삶

  하루 중 당신은 어디에서 더 오래 살고 있는가?

   온라인인가? 아님 오프라인인가? 날 한석규와 전도연 주연의 '접속'(97년) 영화가 생각난다. 오랜 대기 시간을 거쳐 PC통신에 접속해 컴퓨터 화면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타자를 주고받던 것이 생소하고 신기했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각자 손 안에 컴퓨터를 하나씩 들고 다닌다. 우리는 현재 24시간 접속 중이다. 태블릿 PC,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 아니 한 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모든 일이 온라인에서 가능해 졌다. 집 안에 앉아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조만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될 것 같아 보인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랜선과 와이파이를 타고 전달된다. 심지어 인간관계까지도...대화와 표정이 아닌 팅과 이모티콘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체취와 온기는 와이파이와 데이터로 대체되었다. 화통화가 톡이나 메시지보다 어색하다. 스마트폰 없는 관계가 어색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뒤에 가려진 알 수 없는 표정은 아바타(이모티콘, 캐릭터)가 대신 웃고 울고 기뻐하고 있다. 또 다른 내가 온라인에 존재한다. 우린 손가락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하다. 나의 기분에 맞는 아바타와 이모티콘을 찾으려 아래위로 스크롤을 휘젓는데 열중이다. 그런 고객들의 니즈에 맞춰 많은 아바타 캐릭터들이 쏟아진다. 그들 중의 하나가 내가 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레디 플레이어 원

    현실회피가 아닌 가상회피


  이전에 봤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떠오른다. 미래 가상현실 게임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미래의 사람들이 모두 VR 안경과 장비를 차고 집안에서 혼자 달리고 말하고 행동한다. 가상의 공간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현실의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온라인에서 살아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그 속에서 머물려 한다. 현실의 자신은 더욱 초라해져만 간다. 그럴수록 더 가상세계로 빠져든다. 일종의 현실도피이다.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결국 내가 보고 듣고 말하는 곳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24시간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 관건이다.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에 머문다면 오프라인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오프라인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인간(人間)은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 속에 머물러야 하는데 다들 온라인이라는 가상 사회로 옮겨갔다. 오프라인에는 허공에 손발을 휘젓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온라인을 벗어나려는 사람이 가상(현실) 회피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프라인은 생물학적인 존속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곳이 될 것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먹어야 하고 잠을 자고 번식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밥 먹을 때조차도 눈과 귀는 스마트 폰 속의 세계에 빠져있지 않은가? 기업들은 이미 눈치챈 듯하다. 미래의 변화를 가장 빨리 예측하는 것이 기업이다.  글로벌 IT기업(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들은 앞다투어 이 실시간 게임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사람들을 게임 콘텐츠 시장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Cash cow)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누가 미래 가상세계의 승자가 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가지 ID


   미래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두 가지를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 비중은 계속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이제는 현실의 내가 나인지, 온라인 속의 아바타가 나인지 헷갈리기까지 시작한다. 온라인 속 아바타의 탈을 쓴 그녀를 사랑하는 건지 그 아바타를 사랑하는 건지 헷갈린다.

  
  현실 속의 내 모습이 초라할수록 온라인 속 나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고 싶다. SNS와 온라인 게임과 현실 내 모습이 비교해 보라. 보정된 사진과 아름다운 순간들만 담아낸 동영상이 현실의 일그러진 나를 대신하고 게임 속 천하무적 캐릭터가 무기력한 현실의 내 모습을 잊게 해 준다. 현실에 지친 영혼들이 이루지 못한(이룰 수 없는?!) 꿈을 온라인 속에서라도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우리를 스몸비(Smombie)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그 기다림과 느림이 일상이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스몸비 (스마트 좀비)

   이제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당신은 어디서 더 오래 살 것인가?

 온라인인가? 아님 오프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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