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250만 부)의 주제는 외로움이다. 일흔이 넘는 나이의 야생동물 연구자인 무명작가(델리아 오언스)가 세상을 울리고 감동시켰다. 아프리카를 떠돌며 평생 야생동물을 벗 삼아 살아온 그녀의 기나긴 외로움이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얼마 전까지 쓰고 있던 소설을 멈췄다. 소설 속에 담으려던 주제도 모호해지고 내용 전개도 생각과 달라지고 밀려오는 답답함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더 이상 글을 써 내려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집어 든 소설책이었다. 며칠에 걸쳐 읽은 적지 않는 분량의 소설 속에서 여러 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설은 건조해진 심장에 가습기가 되어주었다. 비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겐 가끔씩 이성이 아닌 감성이 필요하다.
한 여자의 처절한 외로움을 자연(습지)이라는 공간 속에서 아름답고 애절하게 묘사된 소설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어머니를 비롯해서 형제들은 막내인 카야를 버려두고 집을 떠나면서 그녀는 습지 속에서 홀로 남겨져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 과정 속에서 세상으로부터 고립과 격리 그리고 남자의 배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던 한 여자의 인생이 습지 생태계를 배경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소설은 외로움이라는 큰 주제를 자연(습지)이라는 배경 속에서 성장, 사랑, 살인, 법정 공방 등의 여러 요소들이 잘 융합시켜 독자로 하여금 그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가졌다.
외로움은 상상력을 부른다.
외롭다는 것은 혼자라는 느낌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많은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저자와 주인공(카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외로움 속에서 샘솟는 상상력을 글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나 또한 느끼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기쁘거나 흥분된 상태에선 좀처럼 글이 써 내려가지 질 않는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잔잔하고 슬픈 선율의 피아노 연주곡을 재생하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나의 오랜 글쓰기의 루틴(routine)이 되어버렸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앉아 눈앞에 펼쳐진 많은 사람들의 분주함과 대화하는 모습들이 무성영화처럼 상영되고 귓속으로 울려 퍼지는 슬픈 선율이 공간과 생각의 괴리를 만들어 내면 외로움이 차오르고 글도 차오른다. 외로움이 글을 써 내려간다.
이 책이 수백만 명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배경만 달랐을 뿐 현대인들이 도시 빌딩 숲 속에서 느끼고 있는 고립과 외로움을 끌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초연결 사회에서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지만외로움은 깊어 간다. 이해관계에 얽히고 신뢰가 사라진 관계는 가족과 이웃에게 버림받은 카야가 느꼈던 외로움과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닐까?
소설은 세상의 많은 얘기들을 품고 있다.
습지의 소녀는 이 시대의 소외받은 자를 상징하고 있다. 어린 카야가 선택한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의도한 것 없이 주어진 환경이다. 가족으로부터의 버림을 시작으로 이웃의 외면, 남자의 배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행이 찾아온다. 한 번 찍힌 낙인은 계속 낙인을 더해 줄 뿐 구제란 없다.
세상도 그렇지 않은가? 가난은 더 큰 가난을 차별을 더 큰 차별을 시련은 더 큰 시련을 가져다준다. 불행의 연속이다.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부조리와 편법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 노력하면 바뀔 거라는 거짓말에 속아 여러 번 상처 받은 영혼은 외로움 속으로 숨어버린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면서... 그렇게 카야는 부모와 학교가 아닌 습지 생태계의 동식물들로부터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간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사람이 아닌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이... 사람의 온기보단 데이터의 전자파가 더 익숙하다. 너의 말은 믿지 않아도 유튜버의 말은 왠지 진실처럼 들린다. 사실 둘 다 못 믿는 건 매한가지다.
가족과 이웃에게서 받지 못한 관심과 사랑(테이트)은 이성에게서 찾게 되고 그 사랑은 뿌리 깊게 스며든다. 가족들로부터 받지 못했던 모든 사랑을 그곳에서 보상받으려 한다. 어린 사랑의 호기심이 육체에 닿았을 때 고민에 빠진다. 지켜줘야 할 것인가 가져야 할 것인가. 사춘기의 사랑은 정신과 육체가 혼란스럽다. 이성(異性)을 통해 몸을 탐구하려는 욕망과 도덕적 가치관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때는 정신이 앞선 사랑이 승리하는 법이다. 카야와 테이트의 순수한 사랑이 습지의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이어서 닥칠 시련을 모른 채...
사랑할 때 더 외롭다.
카야에게 다가온 사랑은 더 큰 외로움을 가져왔다. 우리는 사랑할 때 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랑하지만 같이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그리움이 외로움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사실 그리움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이 아니다. 과거 사랑의 그리움이 지금의 외로움을 가져왔고 지금 외로움은 과거 사랑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기약 없는 사랑의 기다림이 배신이 아니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서 사랑이 미움과 증오로 변해간다. 카야의 가슴 깊이 자리 잡은 사랑이 결국 가슴 깊은 상처로 바뀌어 간다. 그래서일까 가슴 아픈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외로움과 더 친밀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이 떠난 자리는 다시 채워야 한다.
공허함을 채우려 찾은 사랑은 더 큰 상처를 가져온다.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사랑(체이스)으로 치유하려 한다. 아니 치유라기 보단 아픔을 잊기 위한 진통제 를 찾는 행위일지 모른다. 천천히 뿌리 깊게 내린 사랑은 순간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없는 법이다. 첫사랑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모든 순간이 소중했고 진실했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그 과정은 다시 재현되지 않는다. 더 나은 사랑이 있을 거라 찾아 나섰지만 처음이 가장 진실했다는 것을 깨닫고 평생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녀의 생애 가장 슬프고 행복한 날 오빠와 재회하고 엄마를 잃었다. 가장 슬픈 소식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듣는 것이 낫다. 그래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늘은 그녀에게 모든 걸 뺏어가진 않았다. 나를 버린 가족을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녀가 평생을 그 아픔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용서한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하필 왜 내가 희생되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분노는 용서를 통해 사라진다.
Don't understate your heart
"심장이 거짓말을 못해"
- 영화 [기생충] 중에서 -
영화 '기생충'에서 아들(기우)이 첫 과외 수업을 하며 제자의 맥박을 짚으며 하는 대사이다. 우리 삶 속에서 심장이 원하는 것을 정신이 저지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곧 후회하고 만다. 심장을 속이는 삶 속에서 우리는 힘들어한다. 심장을 계속 속이면 나중엔 심장이 뛰지 않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가슴 뛰는 순간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세상과 타협하고 순응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전하고 개척하는 삶은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성인이 된 카야는 이제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위험을 순응하고 피하는 삶을 끝내려 한다. 심장이 시키는 데로...
"Whatever does not destroy me makes me stronger"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
시련(외로움)을 통해 처절하게 강해질 수밖에 없는 한 여자의 인생이 가슴 깊이 아려오는 소설이다. 소설은 또 한 번 니체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소설의 결말은 직접 읽어보길 추천한다. 숨은 반전의 스토리가 한 층 소설의 완성도와 스릴을 높여주는 것 같다. 모처럼 감동과 스릴 그리고 깨달음 3종 세트를 모두 충족시켜 주는 책을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