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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02. 2020

도광양회(韜光養晦)

팔공 남자 시즌 2-47


"전대리님! 얘기 들었어요?"

"뭘 말이에요?"

"SW오토텍 완성차한테 강제 CR(Cost Reduction:원가 절감) 100억 때려 맞았다던데요"

"헐! 정말요?"


    출근길에 만난 국내영업팀 여중고 사원에게서 또 핫한 뉴스를 전해 들었다. 여중고 사원은 신인 공채 연수기간 때 사원 대표로 활동하면서 전 부서에 수많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놨다. 그의 인맥들로부터 들어오는 고급 정보들이 많다. 그래서 선임들로부터 적지 않은 귀여움을 받고 있다.


  한국 자동차에 차체 프레임을 납품하는 SW오토텍 사건이 자동차 업계에 큰 이슈로 떠올랐다. SW오토텍은 차체 프레임을 제작하는 협력사로 한국 자동차와는 오랜 세월을 같이 해온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한국 자동차의 성장과 더불어 회사의 인지도가 상당히 올라갔다.


  자동차의 품질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성이다. 아무리 멋있고 성능 좋은 차라도 안전성이 떨어진다면 고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자동차는 고객의 생명과 직결되는 제품이기에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은 차량 안정성에 많은 심혈을 기울인다.


  차량의 안정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차체 프레임이다. 차체 프레임을 어떻게 설계하고 제작하느냐에 따라 운전자와 승객들의 생명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차체는 자동차 중량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하기에 연비와 직결된다. 프레임을 강하면서 가볍게 하는 것이 자체 설계의 관건이다.


  당시 세계 유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었고 완성차 업계는 차량 경량화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럭셔리 자동차를 타는 부자들이야 기름값을 신경 쓸리 없겠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유류비의 상승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연비가 떨어지는 차는 소비자들에게 냉정하게 외면받는다. 당시 일본의 자동차 회사는 우수한 연비와 안정성으로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던 반면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의 자동차 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SW오토텍의 자체 설계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러브콜이 오면서 고객 다각화를 통한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로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SW오토텍도 DG오토모티브처럼 한국 자동차와는 어떠한 지분관계나 혈연관계가 섞이지 않은 회사였다는 것이다. 한국 자동차는 그런 협력사의 성장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SW오토텍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성장하자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SW오토텍 원가 영업 담당자가 계산서에 장난을 쳤다네요"

"진짜?"

"차체 제작에 없는 공정 비용을 몇 년 동안 계산서에 청구했다는데요"

"그럴 리가? 자체(프레스) 공정 원가 표준이 있는데 어떻게 속여요?"

"듣기로는 매년 자체 원가 표준을 개정하는데, 표준 개정 시행사가 SW오토텍이었데요 그런데 공정 감사 때마다 없는 공정을 시현(示現)해서 원가 표준에 계속 반영했다는 거예요"

"헐... 우리 베이스 코팅(Base Coating)이랑 좀 비슷한 케이스 같은데... 뭐 지네들이 자체 공정개선이나 기술개발로 공정을 줄였겠죠"

"그니까요... 괜한 불똥이 우리한테도 튀는 거 아닌가 걱정이네요"


  이해하기 힘들지만 완성차 만드는 원가 표준은 자동차 업계의 기술개발과 공정 개선을 반영해서 해마다 개정되고 개정된 원가 표준으로 제품 가격이 책정된다. 문제는 이 원가 표준은 몇 개의 대표 협력사에서 공정 실사(實査)와 제공된 각종 기술 자료 등을 토대로 완성차 설계원가팀에서 개정하고 배포한다는 것이다.


  완성차도 수만 가지 부품 협력사의 공정을 세세히 들여다보기 힘들다. 주요 공정별로 구분하고 대표 회사를 선정해 그 회사를 기준으로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표준 개정의 토대가 되는 회사가 실사와 자료 제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가 표준 개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SW오토텍은 그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것이 악의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양사 간 무언의 약속이었는지는 속사정을 들여다봐야겠지만 완성차와 협력사 간에는 알 수 없는 비밀들이 많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괘씸한 노릇인 줄 모르지만 뜯어보며 실상은 그 반대이다. 협력사에서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이나 자체 공정 개선 등의 노력을 통해 절감된 비용을 고객사가 가져가 버리려 하니 협력사는 공정 개선이나 기술개발에 대해 함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자동차 협력사들은 완성차의 원가 관련 담당자들이 공장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그들이 개선된 공정들을 확인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개정된 원가 표준에 반영되어 관련된 부품을 만드는 모든 협력사는 절감된 비용을 단가에서 인하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협력사들은 해마다 완성차 원가 담당자들의 방문때마다 공정 개선 전 상황으로 돌려놓는 생쇼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단가 인하를 시기를 늦춰야만 직원들 월급도 올려주고 보너스라도 줄 수 있는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성과급 잔치를 하는 대기업을 볼 때면 중소기업에 일하는 직원들은 위화감(違和感)을 느낄 수밖에 없다.


"SW오토텍도 참 완성차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 크게 된통 당하는 구만"

"뭐 그래도 SW 오토텍니까 버티지, 다른데 였음 이미 못 버티고 나가떨어졌을걸..."

"그렇죠... 그나저나 그 사건으로 아마 또 전 협력사 제품 원가 검열이 뜰 거 같은 분위긴데요"

"아놔! 램프도 걸려면 걸릴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쩝..."


  빌미나 죄명은 씌우기 나름이다. 사실 한국의 자동차 부품 업계는 단일 고객의 파워가 너무 강하다. 눈 밖에 나면 살아남기 쉽지 않다. 하지만 외국계(글로벌) 부품 협력사들의 상황은 좀 다르다. 그들은 내부 원가자료를 왜 고객에게 제공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 자동차도 국산화되지 않은 혹은 기술력이 떨어지는 부품에 한해서는 외국계 회사의 부품을 쓰고 있지만 그런 글로벌 부품사들에게는 국내 협력사에게 하는 원가 표준이나 강제 CR이니 하는 것들은 말도 꺼내지 못한다. 물론 한국 자동차의 글로벌 점유율이 올라가면서 그들도 조금씩 눈치를 보긴 하지만 국내 협력사에 비하면 파라다이스다.


  고객은 협력사를 키워주기도 하지만 너무 크면 밟는 법이다.


  중국의 급부상을 진두지휘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가 떠오른다. 커도 티 내면 안 된다. 홀로 설 수 있는 그날까지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길러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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