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Aug 08. 2020

읽고 쓰며 나를 찾다

나도 작가다 3차 공모전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너 자신을 알라!]


  학창 시절 소크라테스가 남긴 이 말을  "니 꼬라지를 좀 알아라"며 비하하는 농담처럼 친구들에게 썼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중년이 된 나에게 그가 남긴 그 한 마디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평생을 인간을 탐구했던 그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유아기 때는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나의 존재를 인지하고 10대 때가 되어서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고 20~30대에는 직장과 사회에서 나의 존재를 찾아왔다. 나의 존재는 시기와 환경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시기와 환경에 상관없이 변함없던 한 가지는 내 자신이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왔던 것이다. 부모과 교사 그리고 기업과 사회의 시선에 나를 맞추어 가고 있었다.


  30대 마지막 해 회사를 떠나고 한국 사회를 떠나 지구 반대편의 새로운 세상(호주)에 홀로 떨어지자 그 많은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시선과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외로움과 공허함이 찾아왔다.


  책을 읽고 사색하며 글을 쓰다


  외로운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유는 사라졌지만 일과 관계 속에 사라졌던 시간적 여유가 찾아왔다. 책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나를 찾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책 속에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과거 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관계 속에서의 나의 위치와 역할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것에 100% 부합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가는 과정이었다. 이미 세상이 정해놓은 "나"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 속에서 얘기하는 수많은 인물과 상황 그리고 저자의 말과 행동 속에도 과거의 나의 모습이 존재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놀라고 공감하며 때론 감동받으며 발현되지 못했던 나의 무의식 속에 또 다른 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은 한 인간이 살아온 역사의 집약체이다. 오랜 역사 속에 분명 나와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한 인간들도 존재했으리라, 우리가 책을 보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에 누군가가 거쳐온 시간을 미리 경험함으로써 깨달음과 지혜를 얻고자 함일 것이다. 나 또한 그 속에서 과거 내가 왜 일과 관계 그리고 돈이라는 것에서 힘들어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중간하게 가진 자들이 제일 불행한 거야"


  얼마 전 같은 집에 새로운 셰어(Share) 생이 들어왔다. 나이가 팔순이 넘으신 할아버지였다. 나이에 비해 어찌나 정정하신지 나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이다. 자식들은 모두 해외로 나가고 아내를 먼저 보내시고 홀로 적적하셨는지 태즈메이니아에 있던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이 곳 시드니로 오셨단다.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호주는 연금제도가 잘 되어있어 수입 없이 노후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하다)으로 주거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신다고 하신다.


  그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진짜 부자(절대 망할 수 없는 부호들 예를 들어 빌 게이츠나 제프 베조스 같은)들과 거지들은 걱정과 불안이 없기 때문에 쉽게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도 과거 어린 시절 전쟁 통에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에도 부모가 깡통을 들고 얻어온 음식으로 온 가족이 행복했었다고 한다. 세상의 대부분인 어중간하게 가진 자들은 항상 자신의 것을 지키고 더 가지기 위해 불행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욕망은 줄인 만큼 행복해진다.


   욕망을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그것이 가장 빨리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세상은 인간의 욕망을 먹고 발전한다. 자본주의 경제가 돌아가는 가장 기본 전제이다. 그렇기에 세상은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비교하고 경쟁시키며 더 가지려는 욕망이 부추긴다. 그 과정 속에서 부가 창출되고 경제는 성장한다. 우리는 그 시스템 속에서 욕망을 줄이는 방법보다 욕망을 어떻게 채울 지에만 몰두해 왔다. 하지만 욕망이라는 그릇은 채우면 채울수록 커진다는 것을 몰랐다.


   물질로 채우는 나


  나는 나도 모르게 찬장과 냉장고를 음식들로 가득 채우는 버릇이 있다. 마트에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채워 넣을 때면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곤 한다. 어린 시절 궁핍함 때문일까? 먹을 것들로 채워진 곡간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 혼자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들은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게 된다. 누군가는 그것이 집이나 자동차, 명품 같은 물질들일 수도 있다. 자신을 물질에 투영시키며 존재감을 찾아간다. 물질의 양이 존재감 크기가 되어버린다. 그럼... 그것이 사라지면...


   모든 이들이 물질을 채워가는 삶은 비슷한 사람들만 만들어 낸다. 직장인들이 비슷한 생각과 말을 하며 공감하는 것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그들과 다른 생각과 행동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자들과 어울리기 마련이다. 마치 새로운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를 받아들이고 면역이 생기면 더 강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모른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 봉준호 감독 -


  나는 무엇으로 나를 표현할까? 요즘은 유튜브에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가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한 듯 보인다.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나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직장과 개인의 삶은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지금은 일과 삶이 일치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책을 읽고 일상에서 경험한 것들로 인해 생겨난 많은 생각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기록하는 삶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글쓰기는 이제 쓰지 않으면 어색한 삶이 되어가고 있다.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그 과정 속에서 기억하는 내용, 그리고 그것을 기억해서 이야기하는 방식, 그것이 바로 삶이다."

                 

                                                        - 수전 티베르기앵 <글 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중에서 -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하고 몰입하는 순간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책 속에서 나도 잘 몰랐던 내 속의 나를 만났다.  녀석을 밖으로 끄집어내여 보이게 하는 과정이 진정으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책과 노트북 그리고 커피 한잔이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

이전 08화 승리의 세로토닌이 필요할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